[Why] 청와대 근무한 죄.. '어공'은 실직 걱정, '늘공'은 부처 복귀 찜찜

강훈 기자 2017. 3. 1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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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으로 새 직장 구하기 어려워.. 무더기로 '순장조' 될 판
예전엔 귀하신 몸
청와대 근무 경력 우대 기업 등서 특채로 모셔가
파견 공무원들 복귀 땐 차관·실장 등 영전 코스
이번엔 갈 곳 없어
총선 패배·분당 사태로 여당 보좌진 자리 드물고
유력 대선 후보 안 보여 갈 만한 선거 캠프 없어
최순실과 무관한데
박 전 대통령 탄핵되며 따가운 시선에 마음 고생
이영선 행정관만 나홀로 경호실로 자리옮겨 건재

대기업 고위 간부 최모씨는 지난 14일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고교 후배를 만났다. 최순실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후배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후배는 청와대를 나가야 하는데 새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당당했던 후배가 생계 걱정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면서 "예전 같았으면 유능한 청와대 출신이니 특별 채용하자고 건의했을 테지만 요즘 회사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최씨가 몸담고 있는 기업도 최순실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터라 청와대 출신 뽑자는 말은 아예 꺼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씨는 "먼저 나간 대통령보다 남은 직원들이 더 딱해 보였다"고 했다.

갈 곳 없는 청와대 '어공'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청와대에 근무했던 비서관과 행정관 등 직원들이 대거 실업자가 될 운명에 놓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와대 인사 교체는 당연한 것이지만, 과거 정부 청와대 직원들은 대부분 번듯한 직장을 구해 청와대를 떠났으나 박근혜 정부 직원들은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현재 청와대 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원은 400여명이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 온 관료 출신 '늘공(늘 공무원)'이 300여명, 정치권 등 외부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110명가량이다. 별정직 공무원으로 불리는 어공은 1~9급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어공 중에선 대선 캠프 등 박 전 대통령과 정치 궤적을 함께 한 친박(親朴) 보좌진이 60명쯤 된다고 한다.

정권 출범기에는 청와대 정원의 절반 가까운 인력이 어공들로 채워지지만, 임기 중반을 넘어가면 그 숫자가 줄어든다. 선거 출마 등 정치권으로 돌아가거나 기업·단체에 좋은 자리를 잡아 청와대를 떠나는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기 끝까지 대통령과 함께하는 보좌진을 '순장조'라 하며 통상 20명 이내에 그친다고 한다.

이번 정부에선 그런 인사(人事) 공식이 깨지게 됐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결의하면서 대통령 임기가 사실상 끝나버린 것.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가 갑자기 1년 3개월이 단축돼 작년 말부터 올해 초 다른 곳으로 가려 했던 직원들까지 꼼짝 못 하고 순장조가 돼 버렸다"면서 "새 정권 인사들이 입성하는 5월 초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모두 실업자 신세로 쫓겨날 판"이라고 했다.

하지만 구직(求職) 환경은 녹록지 않다.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기업·단체 등에 자리를 수소문하고 있지만 대부분 곤란하다는 답변만 듣는다고 한다. 우선 기업들이 청와대 출신을 보는 시선부터 싸늘해졌다. 청와대 요청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돈을 댔던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검찰과 특검 수사로 곤욕을 치른 데다 일부 기업은 총수가 구속까지 됐기 때문이다.

S그룹 관계자는 "청와대 근무 경험이 기업에 도움 될 수 있고, 유능한 인사들도 제법 많아 과거 1~2명은 늘 채용해왔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청'자도 꺼내면 안 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도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출신을 기꺼이 채용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L그룹 임원도 "요즘 청와대 출신을 채용한다면 사람들이 '최순실과 가까운 기업이냐'고 묻지 않겠느냐"면서 "오해를 받기 싫어서라도 당분간 채용은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통상 청와대 출신이 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동년배 공채 출신보다 한두 직급 높인 대우를 받았으나 요즘은 예우는커녕 동급 채용이나 임시직 자리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K기업 고위 간부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청와대 직원을 비상임직에 뽑아 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반감이 워낙 크다 보니 그의 보좌진을 뽑는 것도 부담이 된다"고 했다. 최고 통치권자의 보좌 경험이 경력에 도움은커녕 불이익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 복귀 어렵고 캠프에도 자리 없어

지난 총선에서 보수 정당 의석수가 대폭 줄어든 것도 청와대 직원들의 퇴임 이후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국회 보좌관 등 정치권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작년 4월 총선 패배로 새누리당 의석수는 157석에서 129석으로 줄었다. 여기에 작년 말 바른정당이 갈라져 나가면서 30여석이 다시 줄어 새누리당 계보를 이은 지금의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94석에 불과하다. 지난해 많은 새누리당 당직자와 보좌진이 일자리를 잃었고, 이 중 상당수가 아직도 '백수' 신세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보좌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운 데다 막상 자리가 난다고 해도 '너희가 잘못 모셔서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시선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에게 대통령 선거는 장날이다. 그런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나 청와대 어공들은 이마저 반갑지 않다. 정권 말기가 되면 많은 청와대 직원이 사표를 내고 대선 후보 캠프로 이동했으나 이번 선거에선 갈 만한 보수 진영 선거 캠프가 없는 것이다. 한국당이나 바른정당에 많은 정치인을 수용할 캠프를 꾸릴 만한 대선 주자가 아직까지 없는 데다 남은 기간 친박을 표방한 정치인이 출마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들에게 지지율이 큰 차로 밀리다 보니 대선 캠프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 기존에 도왔던 사람들만으로 인원이 넘친다"고 했다.

일부에선 청와대 어공뿐 아니라 부처로 복귀해야 할 늘공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청와대 파견 온 고위 공무원들은 지금쯤 차관이나 실장으로 영전해 부서로 복귀할 시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사이동 없이 5월 대선까지 청와대에 남아야 하기 때문에 차기 정부 인사들에겐 이들이 전직 대통령 순장조로 낙인찍힐지 모른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권 바뀌고 원래 부처에 고위직 자리가 남아 있을지 인사상 불이익을 걱정하는 관료 출신이 많다"고 전했다.

朴 최측근 중 이영선만 '늘공'으로

지난 4년간 박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직원은 5명으로 압축된다.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 사건을 통해 대통령 수족 역할을 한 사실이 알려진 윤전추·이영선 행정관이 바로 그들이다. 이 5명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면서 다른 청와대 직원들은 최순실의 역할을 대부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이영선 행정관은 일자리를 확보한 유일한 인사다. 비서실 소속이었던 그는 재작년 경호실로 소속을 옮겨, 별정직에서 일반직 공무원이 됐다. 어공에서 늘공이 된 것이다. 비서실과 달리 경호실 직원은 정권이 바뀌어도 퇴진 압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면된 대통령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호 서비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 행정관은 박 전 대통령 경호팀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가 2년 전 경호실로 소속을 옮긴 것은 박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자신의 경호 문제를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도 선수 출신인 그는 박 대통령 후보 경호원을 하다 2013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특급 호텔 트레이너 출신인 윤 행정관은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청와대에 오래 머물 수 없다. 그가 본업으로 돌아갈지 민간인 신분으로 계속 박 전 대통령 곁에 머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동 자택에 모습을 보인 윤 행정관은 최근 휴가를 내고 박 전 대통령 이사를 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 등 3인방은 대통령이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면 고위 공무원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 따라 퇴임한 대통령은 1급 비서관 1명과 2급 비서관 2명을 둘 수 있다. 이들 급여는 모두 국가가 부담한다. 하지만 탄핵된 대통령은 이 같은 비서관을 둘 수 없다. 3인방은 오히려 검찰·특검 수사에 이어 다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구속 수감 중인 정 전 비서관 외에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의 향후 거취도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한 행정관은 "많은 청와대 직원이 최순실 사건과 무관한 영역에서 직분에 충실했는데도 한꺼번에 폐족(廢族)을 넘어 멸족(滅族) 대상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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