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고 판결문 보니, 사실상 국정교과서 '탄핵'

이대희 기자 입력 2017. 3. 17. 11: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국정교과서 강요는 헌법상 '학습권' 침해 가능성

[이대희 기자]

 
경북 경산 문명고등학교 측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강행으로 인해 일어난 학생·학부모와 학교 간 갈등에서 법원은 학생·학부모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이 같은 결정 이유는 학교가 헌법이 보장한 학생의 학습권과 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교과서 국정화'의 근거 자체가 흔들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프레시안>이 17일 입수한 법안 판결문을 보면,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교재 활용 강행은 사실상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일 박모 씨(45)와 조모 씨(41) 등 문명고 학부모 5명은 문명고의 연구학교 지정 절차에 중대한 위법 사유가 있다며 연구학교 지정처분 취소 소송을 내고, 이 소송 확정판결까지는 국정교과서 사용을 중지토록 해달라는 효력정지 신청도 냈다. 

이와 관련해 이날 대구지법 제1행정부(손현찬 부장판사)는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해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나홀로 강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문명고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국정교과서로 역사 교육을 할 수 없다. 비록 이번 판결은 '연구학교 지정처분 취소소송 전까지는 국정교과서 사용을 해선 안 된다'는 의미이지만, 이 결과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 입장을 무시한 문명고의 독주가 위법하다는 법리적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국정교과서 강행 움직임은 결정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본안 소송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과, 현재 정권 교체기인 것, 국회가 국정 교과서 폐지 여부를 다루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사실상 국정교과서는 폐기 수순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결정문을 보면, 법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문명고의 교과 운용 강행이 우리 헌법 정신과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원은 "학습권 보장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문화국가, 민주복지국가 이념 구현을 위한 기본적 토대"이고 부모의 자녀 교육권도 "비록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지 않았지만, 모든 인간이 누리는 불가침의 인권"이라며 "학교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학습자인 학생의 인격발현과 학부모 자녀교육권이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학교의 3주체에 포함되는 학생·학부모의 헌법적 권리를 문명고가 무시한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법원은 학부모의 국정교과서 반대 움직임도 부모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고, 학부모 등은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며 학부모 의견을 학교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이 같은 근거에 따라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교육 강행이 이뤄질 경우 행정소송법상 효력정지 요건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는 결과가 초래되리라고 판단했다.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으로 보상할 수 없는 손해를 뜻한다. 

법원은 "이 사건 처분(국정교과서 사용)에 따라 이 사건 학교 1학년 재학생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 사건 국정교과서를 주교재로 역사 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국정교과서는 적용시기가 2018년경으로 늦춰졌고, 국회에서 폐기 여부가 논의되는 등 앞으로 적용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며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학생과 학부모가 받게 될 불이익은 금전보상이 불가능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원은 학부모 측의 연구학교 취소소송도 공익을 위해 충분히 법적으로 다룰 의미가 있다고 봤다. 

법원은 문명고의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강행이 취소된다손 치더라도 공공 복리에 "중대한 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국정교과서 교육의 위헌·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잘못된 국정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운 학생 및 학부모가 침해당할 학습권, 자녀교육권과 비교형량해 보더라도 문명고가 내세우는 공공복리가 중대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강행이 위법하다는 법리적·역사 교육 논리적 판결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관해서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법원이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교육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낸 중요한 계기는 학교의 독주에 직접 제동을 건 학생의 자발적 움직임이다. 학생이 학교에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존재가 아니라 학습권을 지닌 학교의 주체임을 이번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앞으로 학교 교육 현장에도 간접적으로 미칠 영향이 적잖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 2일 열린 문명고 입학식에서 피켓시위를 한 신입생. ⓒ평화뉴스(김영화)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