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양반이 盧정부때 잘 나갔었지".. 공무원끼리도 끈대기

손진석 기자 2017. 3.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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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바라기'가 된 관료사회]
- 양지가 음지 되고
창조경제 등 맡았던 관료들, 해외근무 자청 '피신'
- 공정위 표정관리
재벌개혁 예고에 "힘 세질 것"
기재부 세제실도 은근한 기대감 "文캠프에 선배가 둘 있으니.."
- 일을 안 한다
"좋은 정책 아이디어 있어도 다음 정부에서 내놔야 빛 본다"

고위 공무원 B씨는 요즘 '표정 관리' 중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를 하면서 촉망받는 자리를 연달아 꿰찬 B씨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핵심 보직을 받지 못했다. 요즘은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앞서가면서 "차기 정부에서 요직을 꿰찰 대표 주자"란 말을 듣고 있다. B씨는 "앞으로 잘나갈 사람이라는 말을 자꾸 듣게 돼 부담스럽다"며 "요즘 공무원들이 온통 대선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가면서 정부 관료들의 시선이 '문재인 캠프'로 쏠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파면된 이후,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는 관료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료들의 문재인 캠프 줄 대기 행보가 늘어나면서, 공직자들이 본업은 제쳐 두고 잿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기강 해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文바라기' 된 고위 관료들 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간부는 "요즘 문재인 캠프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느라 바쁜 선수들이 있다는 말이 세종청사에 널리 퍼졌다"고 했다. 일부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교수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눈도장을 찍으려 한다는 것이다. 학연(學緣), 지연(地緣)을 매개로 민주당 내 친노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 측에서 섀도캐비닛(예비 내각)과 정부 내 핵심 보직 리스트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름을 올려보려고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공무원을 가리켜 '문(文)바라기'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경제 부처의 한 30대 공무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간부 밑에서 일해야 앞길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은 문 후보와의 '연결 고리'를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기재부 세제실의 일부 공무원들은 문 후보 측에 세제실장(1급)을 지낸 선배가 둘(김진표 의원·이용섭 비상경제대책단장)이나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출신 지역별로 웃고 우는 기류도 있다. 문 후보가 앞서가면서 민주당의 주축인 호남이나 PK(부산·경남) 출신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TK(대구·경북) 출신들은 사석에서 "앞날이 깜깜하다"고 푸념한다. 창조경제 등 박근혜 정부 색채가 뚜렷한 업무를 맡았던 관료들은 해외 근무를 자청하는 등 피신을 시도하고 있다.

문 후보가 섀도캐비닛을 공개할 경우 줄 대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지금처럼 문 후보가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 섀도캐비닛이 발표되면 끈을 대야 할 대상이 명확해져 더 가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을 향해 줄 대기를 하지 않는 대다수 공무원들도 업무는 뒷전이다. 부처 고위 간부들이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차기 정부에서 내놓으려고 감춰두면서 현상 유지만 한다는 게 각 부처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세종청사의 한 1급 공무원은 "빗자루로 쓸어도 쓸려나가지 않도록 젖은 낙엽처럼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자는 말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공정위·해수부 웃고 미래·교육부 울고

문재인 대세론이 힘을 얻으면서 부처별로도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현실화될 경우 위상이 대폭 높아질 부처가 있는가 하면, 조직이 없어지거나 축소될 부처도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들은 표정이 밝다. 차기 정부가 재벌 개혁을 필두로 경제민주화를 강도 높게 추진하면 권한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간부는 "원래 야권이 집권해야 공정위가 힘을 받는다"고 했다. 해양수산부는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시달렸던 존폐(存廢) 논란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을 지냈고, 문재인 후보가 고향인 부산 민심을 고려해 해수부를 없애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요즘 해수부는 '세월호 3주기'가 되기 이전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며 열의를 보이고 있는데, 대선을 앞두고 문 후보 측에 점수를 따려는 '행보'라는 해석까지 등장하고 있다.

반면 문 후보 측에서 조직을 축소하거나 개편하겠다고 천명한 미래창조과학부나 교육부 공무원들은 얼굴이 흙빛이다. 미래부의 한 공무원은 "몇 달 후에 어디서 어떤 직위로 일하고 있을지 몰라 요즘 밤에 잠이 안 온다"며 "5년마다 정치 바람에 휩쓸리면서 곡예를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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