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사리는 대기업, 온누리상품권도 안 산다

성호철 기자 2017. 3. 1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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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사태·미르재단 파문으로 反기업 정서 사회적으로 퍼지자
사회 공헌 성격의 지원마저 꺼려
주요 7개 그룹 올 1~2월 구매액, 작년 같은 기간의 5분의 1로 뚝
정부도 뾰족한 대책 없어 비상

올해 들어 대기업의 '온누리 상품권(전통시장 상품권)' 구매액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모금으로 반(反)기업 정서가 전 사회로 퍼지면서 대기업들이 온누리 상품권 구매와 같은 사회 공헌 성격의 지원마저 "돈으로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며 대폭 축소한 것이다.

15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올 1~2월 삼성·현대차·CJ·롯데·LG·포스코·SK그룹 등 주요 7개 그룹이 사들인 온누리 상품권 구매액은 136억100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13억3000만원)보다 약 8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5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이 7개 그룹은 작년에 연간 100억원 이상의 상품권을 각각 구매한 큰손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소기업청은 각 기업에 공문을 보내면서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온누리 상품권은 정부가 2009년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전통시장과 지역 상점에서만 쓸 수 있도록 만든 상품권이다. 온누리 상품권 구매액은 고스란히 전국 1200여 전통시장의 상인들에게 흘러가는 구조다. 대기업들이 상품권 수백억원어치를 직원들에게 나눠주면 전통시장의 방문객이 늘어나는 효과도 크다.

◇대기업그룹 컨트롤타워 해체… "미르재단 학습 효과"

삼성그룹은 올 1월 200억원어치의 상품권을 구매하려다가 돌연 계획을 취소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가 기정사실화되면서다. 그동안 미래전략실이 각 계열사의 구매 수요를 확인해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해왔지만 이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관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CJ그룹은 올해 구매액이 '제로'다. SK그룹(올 1~2월 구매액 3억7000만원), 롯데그룹(8000만원), LG그룹(2000만원), 포스코그룹(1000만원) 등도 구매액이 크게 줄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124억원어치를 샀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이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미르재단 사례를 겪은 학습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지원했다가 '나쁜 기업'으로 낙인 찍힐 위험성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대부분 계열사 CEO들은 온누리 상품권 구매 같은 공익사업을 생돈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각 그룹의 컨트롤타워에서 반강제로 독려해왔지만 지금처럼 컨트롤타워를 없애거나 권한을 축소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동력도 약해진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에 흘러가는 1조원 돈줄이 막힐까… 노심초사하는 정부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주무 부처인 중소기업청은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 갔다간 온누리상품권 사업 자체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온누리 상품권은 작년에 판매액 1조원을 돌파했다. 8년 전보다 100배 이상 급팽창한 것이다. 여기에는 매년 상품권 구매액을 늘리면서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준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예컨대 일반 소비자는 온누리상품권을 살 때 5% 할인받는다. 명절 때는 10%까지 깎아주고 차액은 정부 예산에서 보전한다. 이러다 보니 일반인 구매액은 할인율에 따라 변동 폭이 상당히 크다. 또 일반인들의 구매가 늘어날수록 국가 예산을 더 써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할인 없이 상품권 액면가(額面價)로 구매할 뿐만 아니라 꾸준한 수요로 상품권의 유통 안정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정부로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공문을 보내는 게 전부다. 중기청 관계자는 "올 초에 이어 다음 달에도 주요 100개 기업에 상품권 구매를 검토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반기업 정서를 핑계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4대 그룹의 한 사회공헌담당 임원은 이에 대해 "현재는 대기업이 어떤 일을 하든지 욕먹는 분위기"라면서 "새 정부가 기업들에 명확한 사인을 주기 전까지는 기업들이 꼼짝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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