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재능을 따라가지 못한 신체' 레들리 킹

이형주 인턴기자 입력 2017. 3. 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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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캡처

[STN스포츠=이형주 인턴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재능을 따라가지 못한 신체' 레들리 킹 <18>

최근 토트넘 핫스퍼의 기세가 대단하다. 27라운드까지 치러진 프리미어리그에서 2위에 올라있다. 또한 손흥민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FA컵 4강에도 올라있는 상태다. 구단 레전드이자, 현재 토트넘의 앰버서더인 이 인물이 미소를 지을 듯 싶다.

런던 태생의 킹은 1996년부터 토트넘 생활을 시작했다. 유스에서 잠재력을 보인 킹은 곧 1군 무대에 데뷔하게 됐다. 킹의 1군 데뷔전은 1998/99시즌 프리미어리그 35R 리버풀 FC전이었다. 킹은 그 경기에서 스테판 클레멘스와 교체되어 경기장에 들어섰다.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히게 될 사건이 찾아왔다. 1999/00시즌 킹은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더비 카운티전에서 첫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경기 시작 30초 만에 로리 델랍에게 태클을 당했다. 그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하게 됐다. 부상 악령의 시작이었다.

킹은 부상 복귀 후 점차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커리어 초기 킹은 센터백보단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을 주로 소화했다. 어린 나이에도 훌륭한 실력을 보였다. 2000/01시즌 프리미어리그 14R 리버풀전에서 2-1 승리를 이끄는 등 존재감을 보이며 조지 그래엄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 시즌 킹이 또 하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바로 현재까지도 프리미어리그 최단 시간 골로 남아있는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킹은 프리미어리그 17R 브래드포드와의 경기에서 9.7초 만에 득점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킹은 중앙 수비수로 천천히 성장해갔다. 정확한 태클과 신중한 수비로 토트넘의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수비수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퇴장도 전무했고, 이는 은퇴 할 때까지 이어졌다. 이렇듯 수비수로서 갖춰야할 역량을 모두 지닌 킹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우승권 팀인 첼시 FC가 가장 적극적이었으나 킹은 팀과의 의리를 지키며 남았다.

하지만 2006/07시즌 이후부터 그의 커리어가 부상으로 점철됐다. 킹은 시즌 전 무릎 부상으로 인해 9월 중순까지 출장을 하지 못 했다. 이후에는 중족골 부상을 또 겪으며 토트넘이 그 시즌 치른 59경기 중 반도 안 되는 26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 11R 첼시전에서 아르옌 로벤을 향한 멋진 태클로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을 각인시킨다. 클로드 마케렐레에게 1실점을 허용하긴 했으나, 킹의 활약을 바탕으로 토트넘은 1990년 이래 처음으로 리그에서 첼시를 꺾었다. 2-1 승리. 천적 관계를 청산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술만은 피할 수 없었다. 킹은 시즌을 마친 뒤 수술대에 올랐고, 또 다시 시즌 초반을 놓치게 됐다. 킹이 부재한 사이 토트넘도 마틴 욜 감독이 떠나고 후안 데 라모스 감독이 오는 변혁을 겪었다.

킹은 2007년 박싱데이에 펼쳐졌던 프리미어리그 19R 풀럼 FC전에서 깜짝 복귀전을 치렀지만, 이후 또 다시 부상에 시달리며 2007/08시즌 리그 4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러나 그 시즌 주장으로서 리그 컵 트로피를 들며 아쉬움을 씻었다.

2008/09시즌 초반에 이르러 킹이 부상으로 매경기를 소화할 수 없게 됐음이 밝혀졌다. 이에 라모스는 컵 대회 경기 위주로 킹을 출전시켰다. 이후 라모스가 경질되고 후임으로 온 해리 레드납은 이와 반대로 킹을 리그 경기 위주로 나서게 했다.

이 시기 레드납이 킹의 무릎 상태에 대해 남긴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레드납은 "그는 무릎 연골이 없다. 수술도 불가능하고 치료도 할 수 없다. 한 경기를 치르면 무릎이 부어오르기 때문에 일주일 이상 쉬어야한다.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나올 때마다 활약한다. 그는 대단하고 가치있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레드납의 말 그대로였다. 킹은 많은 경기를 소화할 수 없었지만 나올 때마다 활약해줬다. 2009/10시즌 북던런 더비로 치러진 프리미어리그 33R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고, 프리미어리그 37R 맨시티전에서 승리를 만들어내며 팀을 UEFA 챔피언스리그로 견인했다.

2009/10시즌 토트넘의 4위 안착에 기여, 5월 구단과의 연장 계약,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승선, 2010/11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등 2010년 킹이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이후에도 녹록치 않은 실력을 뽐냈으나, 2012년 무릎이 더 버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킹이 은퇴를 선언했다. 토트넘 원클럽맨의 마지막이었다.

◇EPL 최고의 순간

2010년 5월 5일 토트넘과 맨체스터 시티가 프리미어리그 37R에서 맞붙었다. 당시 두 팀 모두 2경기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4위 토트넘의 승점은 67점, 5위 맨시티의 승점은 66점이었다. 이 경기는 사실상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경기였다.

당시 맨시티는 셰이크 만수르 구단주의 자금력을 등에 입고 카를로스 테베즈, 가레스 배리 등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영입한 상태였다. 게다가 직전 경기에서 또 다른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경쟁자였던 아스톤 빌라를 패배시킨 상태였다.

이날 경기에서도 킹의 몸상태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킹은 주장으로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수비라인을 통솔했다. 후반 37분 피터 크라우치의 골로 토트넘이 앞서나갔고, 이후 실점을 막은 킹의 활약을 통해 토트넘이 1-0으로 승리했다. 토트넘이 EPL 출범 후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하는 순간이었다.

◇플레이 스타일

수비수가 갖춰야할 요소를 대부분 지닌 선수였다. 정확한 태클로 상대의 공을 뺏어냈으며, 수비 때 경거망동을 하지 않아 뚫리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제공권도 좋았고, 티에리 앙리를 곤혹스럽게 할 만큼 힘과 스피드도 겸비했었다.

◇프로필

이름 - 레들리 킹

국적 - 잉글랜드

생년월일 - 1980년 10월 12일

신장 및 체중 - 188cm, 86kg

포지션 - 중앙 수비수

국가대표 경력 - 21경기 2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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