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공부 안 시켜요" 엄마가 달라졌다
한글·영어 조기교육 않고
제때 기다리는 '적기맘' 늘어
"지식보다 창의력 갖춘 인재
4차 산업혁명시대 어울려"
이씨는 딸이 여섯 살이 되도록 한글·영어 학습지 공부를 시킨 적이 없다. 유치원도 한글·숫자 교육보다는 놀이와 체험학습 중심인 곳을 찾아 보냈다. 주말에는 체험활동이나 가족여행을 다니곤 한다.
그는 “두세 살 때부터 한글과 영어를 외우게 하는 부모를 많이 봤지만 대부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공부에 흥미를 잃더라”며 “억지로 가르쳐봤자 효과는 낮고 스트레스만 줄 것 같아 놀이와 체험, 여행 중심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유아 시절부터 한글은 물론 영어·수학까지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조기교육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적기(適期) 교육’을 실천하는 엄마(적기맘)가 늘고 있다. 조기 교육은 ‘반짝 효과’일 뿐 아이 의 성장 단계와 관심에 맞춰 제때, 제대로 가르치는 게 더 낫다는 신념에서다.
과거에도 적기교육을 시도하는 부모가 일부 있었지만 요즘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활용해 보다 조직화·정보화되고 있는 게 특징이다. 2010년을 전후해 등장한 다음·네이버의 ‘칼다방(멀리 보는 육아와 적기교육)’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 등엔 각각 수천, 수백 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서울 목동 등 이른바 ‘교육특구’에 위치한 유치원엔 적기교육에 찬성하는 엄마들의 소모임도 생기고 있다. 여섯 살 딸을 둔 전업주부 진아영(34)씨는 “학원을 안 보내는 대신 놀이터에서 함께 놀 또래를 찾다보니 자연스레 적기교육을 실천하는 엄마들끼리 자주 만나고 정보를 공유한다”고 전했다.
━ “정서 발달 방해” 독일 등 7세 전 문자교육 금지
서울 양천구의 한 유치원 원장도 “우리뿐 아니라 다른 유치원에도 ‘한글·숫자 교육은 줄이고 놀이·체험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엄마 모임이 생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적기맘’들은 핀란드·독일·이스라엘처럼 7세 이전 문자교육을 일절 금지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많이 참고한다. 이기숙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이들 나라에선 유아기에 문자를 가르치는 게 정서, 상상력 발달에 오히려 해가 된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또 조기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들에 비해 이해력·문장력 등 언어 능력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이 명예교수의 연구 결과(2011년)도 힘을 보탠다.
게다가 적기교육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과도 부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지식보다 창의력, 홀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쟁형 인간보다 타인과의 협력에 능숙한 소통형 인재가 각광 받게 될 것”이라며 “이런 인재를 기르는 데엔 ‘남보다 빨리’를 강조하는 주입식 조기교육보다 적기교육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최근 공교육에도 일부 변화가 생기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초등학교 1학년의 한글 교육을 기존 27시간에서 60여 시간으로 늘렸다. 암기를 전제로 하는 받아쓰기는 없애고, 겹받침은 2학년까지 배우게 했다. 조기교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송인섭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청년층의 취업난이 심각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노령화가 계속되면 10~20년 뒤에는 오히려 구인난이 생길 것”이라며 “앞으로 연령대에 맞춰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는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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