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박근혜씨 '세월호 비극' 속죄하십시오

이충재 2017. 3. 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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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결문에 낱낱이 적시된 무능ㆍ무책임

자식 잃은 부모에게 던진 모멸 기억하는지

불복과 오기 버리고 속죄하는 삶 살기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설치된 세월호 상징물. 헌재 탄핵 선고가 난 지난 10일 조형물 뒤로 붉은 해가 지고 있다. 연합뉴스

예기치 않게 사저로 돌아온 소회가 어떠십니까. 가슴 벅찬 기대를 안고 떠났던 4년 전과는 달리 무척이나 착잡하고 혼란스러운 심정이었겠지요. 대다수 국민이 짐작했던 탄핵 결정을 정작 본인은 예상하지 못했다니 충격이 꽤 컸으리라 봅니다.

자리에 누우면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갈 겁니다. 대통령 취임식 때의 감격, 외국순방 때 느꼈던 국가원수로서의 뿌듯함,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이 보낸 열광과 환호. 하지만 지금은 그런 좋은 기억보다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되짚는 시간이 돼야 합니다. 권력이 사라지고 왜소해지면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세월호 참사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미망에 빠진 탓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세월호는 본인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많은 생명을 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돼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이 숨졌습니다.

당신은 그날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있었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은 위치를 알지 못해 서면보고를 두 곳에 했고, 직원은 자전거를 타고 보고서를 배달했습니다. 청와대가 미궁도 아닌데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될 법한 얘깁니까. 관저에 머물면서 보고받고 지시하고 할 것은 다했다는 게 당신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설사 집무실에 있었더라도 배가 기울어 살리지 못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헌재 재판관들이 밝혔듯이 그때 집무실에 있었더라면 훨씬 일찍 상황을 인지하고, 대처도 빨랐을 것입니다. 당신이 보고받은 시간은 오전 10시지만 이미 오전 9시24분에 국가안보실이 해경에 침몰 사실을 확인한 후 청와대 주요 부서에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보고를 받았더라도 즉시 청와대 상황실에 달려갔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겁니다. 당시 상황실에는 해경 경비정이 현지에서 보낸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습니다. 탑승객 대부분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을 터이니 언론사 오보로 오후 3시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다는 핑계는 대지 못했을 겁니다.

김이수ㆍ이진성 두 재판관이 A4용지 20장 분량으로 작성한 보충의견에는 당신의 잘못이 낱낱이 지적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으면 심각성을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지시는 지극히 원론적인 내용이었으며, 그나마도 기록이 없어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내용이 꼼꼼히 적시돼 있습니다. 장문의 기록을 보면 당신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것인지 여실히 드러납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헌재가 면책을 했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헌재는 명백히 “대통령의 대응조치가 미흡하고 부적절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탄핵 사유에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미용시술 여부는 부차적 문제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핵심은 인명구조 지휘ㆍ감독이 시급한 대형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신이 휴식과 개인 생활을 위한 사적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당신의 잘못은 사고 당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너무나 심한 모멸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해 가을 국회 시정연설 방문 때 세월호 유가족들이 당신을 만나려고 밤새 기다렸는데 눈길 한 번 안 주고 지나갔던 순간 말입니다. 당신이 외면하는 사이 세월호는 ‘교통사고’가 됐고, 유가족은 “시체장사꾼”으로 매도됐습니다. 세월호 특조위를 ‘세금도둑’으로 몰고 우병우를 시켜 수사 압력을 넣도록 한 사람이 누굽니까. 당신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의 존재 이유에 회의를 갖게 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최소한의 인륜조차 무너지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당신이 지금 할 것은 불복과 오기가 아닙니다. 참회와 속죄입니다. 광화문 농성장과 팽목항을 찾아 유가족을 부여안고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늘의 별이 된 어린 생명들을 떠올리며 속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인용이 발표된 10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 모인 세월호 유가족들이 방송을 보며 눈물을 닦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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