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시작일 뿐'..시민혁명, 이젠 일상 속으로 간다

백철·정용인 기자 2017. 3. 1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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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근혜 퇴진운동 참여한 활동가·학자들의 “시민혁명 이렇게 완성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시민혁명은 완수된 것일까. 1987년 6월항쟁 등 과거 한국의 시민혁명의 과실은 시민들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에게 넘어갔다. 2017년 시민혁명이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박근혜 퇴진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과 학자들의 생각을 모아봤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헌재 선고를 기다리던 시민들이 탄핵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번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에 성공적으로 집중한 집회였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몇 달간 여론을 형성해 탄핵까지 이르게 한 것은 교과서에 나올 만한 이상적인 명예혁명이다. 보수정권 10년을 겪으면서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깊어지고 예리해졌다. 대통령 탄핵으로 자기 행동에 대한 정치적 효능감이 매우 높아진 상태다. 시민 행동을 통해 잘못된 정치권력을 징벌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졌다. 하지만 촛불집회 같은 대규모 대중행동이 계속 반복될 순 없다. 지속가능하고 제도화된 형태로 시민들의 강렬한 정치적 에너지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느냐가 초점이다. 거대 자본이나 언론권력, 학교 등 법 위에 존재하는 과도권력이 한국 사회 도처에 있다.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서도 무능하고 정당하지 않은 권력이 법을 넘어서는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극도의 갑을관계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 차기 정권은 시민들이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상 공간에 존재하는 극도의 힘의 불균형을 시정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비롯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관련자들이 처벌당하고 책임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도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시민 정치세력으로 결집이 되면 어느 정도 촛불혁명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이 선거정치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 하나가 바뀐다고 해서 사람들까지 바뀌진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대통령 후보들에게 그들이 내건 법 개정을 관철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나 싱크탱크에서 사회적인 압력집단을 형성해야 한다. 일단 대통령 탄핵으로 수구적인 냉전 보수세력이 많이 약화되고 성장주의 개발독재세력의 설득력도 떨어질 것으로 본다. 냉전 보수세력이 청산되고 합리적 보수가 보수세력을 주도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능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한 여론이 굉장히 오랫동안 80% 가까이 유지돼 왔다. 대통령 탄핵은 평화적으로 이뤄낸 시민들의 1차적 승리다. 1987년 6월항쟁처럼 보수세력이 집결해서 재집권을 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이제 정권교체는 상수가 됐다. 다만 그동안 의회가 시민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받아 안지 못했다. 2월 임시국회에서 여러 가지 개혁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있었다고는 하나 야당의 의지가 강했다고 할 수도 없다. 시민사회 쪽에서는 대선후보들에게 광장의 요구를 제도화하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처럼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지고 대선후보들을 압박해야 한다.”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세월호 유가족이 보기에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당연한 결과다. 이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본격적 수사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가장 강하게 감춰온 것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구속수사가 필요하다. 그동안 청와대는 무조건 조사를 거부하고 사실을 숨겨왔다. 강제적인 수사를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모든 시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바람이 이뤄져야 한다. 탄핵을 선고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이것이 적폐 청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시민혁명의 성과는 광장의 촛불이 얼마나 일상으로 확산되느냐에 달려 있다. 촛불에서 에너지를 느끼고 행복을 느낀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삶을 초라하게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막연한 구상이지만 삶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독서클럽이나 여행클럽이 될 수 있다. 정권을 끌어내릴 정도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시민들이 일상의 정치를 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어떻게 탄생했나. 수많은 정치 공동체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를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시민혁명은 일상의 정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김지윤 노동자연대 활동가

“대통령 탄핵 인용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만들어낸 성과다. 박 전 대통령이 물러났다고 시민혁명이 끝난 게 아니다. 사드 배치 문제나 세월호 인양 문제, 한·일 위안부 협정 등 여러 가지 중요한 과제들이 남아있다. 촛불시위는 부패한 권력자를 끌어내리자는 요구만 한 게 아니라, 그가 망쳐놓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행위였다. 정권만 교체되면 세상이 저절로 좋아진다고 낙관할 순 없다.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고 해도 촛불시민들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촛불민심, 시민혁명이란 단어는 말했지만 사드 문제 등에 대해서는 분명하기보다 모호한 입장만 내왔다. 이미 퇴진행동은 30가지 적폐청산 긴급과제를 제시했다. 이 과제를 실천에 옮기라고 광장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재화 민변 전 사법위원장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는 시민혁명의 주체세력이 흩어져 버렸고 시민혁명의 구심점이 사라져 버렸다. 대통령 탄핵 후에도 퇴진행동이 제도개선을 통한 적폐청산을 이뤄내는 형태로 전환을 해서 시민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구심점을 통해 정치권을 꾸준히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일단 퇴진행동의 30가지 적폐청산 과제 중에서 재벌개혁을 통해 정경유착을 확실히 끊어야 한다. 또한 국정농단 사태에서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못했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와 같은 기구가 시급하게 신설돼 박영수 특검과 같은 역할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과거 민주화 운동 이후에는 시민들이 손을 놓고 야당 정치인들에게 뒤를 맡겼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완수해야 할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모든 이슈가 대통령 직선제에 묻혔고, 이런 한계점이 지금까지 누적되고 심화돼 왔다. 이번 시민혁명은 87체제에서 포스트 87체제로 넘어가는 고비다. 이번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정성 문제라고 생각한다. 4·19혁명 때부터 독재의 유산인 부정부패 문제를 처리하지 못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헌법 개정도 필요하고 새로운 과제를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권에 요구해서 정치권이 이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공현 인권운동가

“지난 겨울부터 많은 청소년들이 광장에 나와 시국선언도 하고 목소리를 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만 18세까지 선거권을 주는 문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선거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교칙으로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야당도 돈 받고 집회 나오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은 내고 있지만, 학교 등 공공기관에서 학생들의 집회 참석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법안은 내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광장에 나와서 탄핵을 이뤄냈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평소에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박근혜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 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의 공범과 이를 묵인, 방조했던 정치세력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세력의 대표적인 적폐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국정교과서다. 예를 들어 바른정당의 경우 탄핵국면에서는 돌아섰지만 여전히 국정교과서를 지지한다. 교육부도 아직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시민들은 기득권 세력을 친일·독재의 후계세력으로 보고 있다. 국정교과서뿐만 아니라 건국절까지 이 후계세력의 역사 쿠데타는 바뀐 것이 없다. 탄핵은 물꼬를 튼 것이고 물을 퍼내는 적폐 청산까지 완료를 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도 이제는 촛불과 헌법재판으로 막을 수 있다. 이번 탄핵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까지 불가역적으로 전진했음을 보여주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백철·정용인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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