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반납하고 구내식당 이용.. 3개월간 수도승 같은 삶

박지연 2017. 3. 11.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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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까지 재판관들 뒷이야기

재판관 집무실 비상계단 봉쇄

불필요한 일반인 접촉 피해

육체 피로ㆍ시위대 구호 시달려

헌법재판관 8인. 헌법재판소 제공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기까지 헌법재판관들은 심리 내용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수도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외부 접촉을 극도로 줄이는 한편 국정 공백 사태를 단기화하기 위한 시간 압박 탓에 휴일과 주말도 반납한 채 매일 사건 서류에 파묻혀 보냈다는 후문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의 변론을 대부분 허용했고 재판부를 향한 막말과 법정 소동에도 인내하며 재판을 이끌었다.

재판부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한 것은 단연 보안문제다. 법률에 따라 서면심리와 평의(評議)가 비공개(헌재법 제34조)되는 것은 물론, 자칫 일부 재판관의 견해라도 외부에 알려지면 국가적 운명이 달린 중대 사건에서 재판부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월 31일 임기 만료로 퇴임한 박한철 전 소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나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 뒤 모처에서 스님처럼 동안거(冬安居)를 택한 것도 자신의 재임기간 중 논의된 평의 내용과 재판관들의 심증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헌재에 남은 8인의 재판관 역시 개인 접촉을 최소화하는 등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했다. 헌재 인근에서 기자들과 마주치더라도 인사말조차 아낀 채 미소로 대신했다. 식사조차 편치 않았다. 단골 식당에 가도 여러 차례 질문이 쏟아지자 결국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는 후문이다.

헌재는 재판관과 연구관들에 대한 접촉을 차단하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헌법재판관들의 집무실과 연결된 모든 비상계단이 봉쇄됐고, 헌재 도서관도 집무실로 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3개월 간 일반인 출입을 제한했다. 정문에서 신원을 확인하고 청사에 들어서도 헌재 관계자들이 소지한 출입 카드 없이는 청사 1층 대강당과 2층 브리핑실 방문만 허용됐다.

국가적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따른 심리적 압박도 적지 않았다.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지 일주일 만에 ‘탄핵심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60여명의 연구관을 투입해 연구를 계속했다. 헌재 청사는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헌재 관계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온갖 풍문과 국정원 사찰 의혹 등으로 더욱 예민해졌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은 변론기일을 시작하기 앞서 “국정 중단을 초래하는 매우 위중한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 헌재는 어떤 편견과 예단 없이 밤낮, 주말 없이 매진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심적 압박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결정일이 다가오면서 재판관 성향 분석과 ‘가짜뉴스’까지 쏟아지면서 재판관들은 마음고생도 컸다. 기각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고 여러 차례 지목된 한 재판관은 사석에서 “언론 의혹 기사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푸념했다는 전언이다. 헌재 인근은 연일 탄핵 찬반 집회로 몸살을 앓아 출퇴근도 쉽지 않았다. 헌재 정문 방향의 연구실을 사용하는 헌법연구관들은 “이어지는 함성과 구호소리에 연구를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육체적 피로도 이겨내야 했다. 일주일에 2, 3차례씩 변론기일을 열자 양측 대리인단에서 “서면을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재판부는 “저희도 모든 기록을 파악하고 있다. 대리인단은 숫자가 좀 되시니 나눠서 파악해달라”며 국정 공백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심리를 재촉했다. 얼마나 긴장과 압박이 연속됐는지는 이정미 권한대행만큼 잘 보여주는 이가 없다. 운명의 날인 10일 미용도구(헤어롤)를 머리에 그대로 달고 출근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헌재 관계자는 “이정미 재판관이 어제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에 너무 정신 없이 나오다 보니 머리가 헝클어졌던 모양이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mailto:jyp@hankookilbo.com)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가운데)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리고 있다. 왕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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