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같이 죽자"며 접근.. 사기 치고 성폭행하는 '자살 브로커'

강훈 기자 입력 2017. 3.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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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인터넷 사이트서 절박한 심리 이용.. 자살장비 보여주며 유인
"약품 구해준다면서 입금 요구하면 다 사기"

작년 11월 사업에 실패한 김모씨는 SNS를 통해 자살에 필요한 약품을 보내준다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김씨가 약품 10g을 보내달라고 하자, 상대방은 보너스로 5g을 더해 15g을 배송해주겠다면서 22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돈을 보내고 며칠 후 김씨 집으로 택배가 왔다. 그러나 내용물은 밀가루였다. 인터넷 자살 카페에 가입했던 한 30대 여성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스위스에서 안락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을 보내주겠다는 회원에게 130만원을 보냈다. 하지만 입금 직후 상대 회원은 카페에서 사라졌다.

SNS와 인터넷 자살 관련 사이트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부추기거나 금품을 가로채는 '자살 브로커'들이 활동하고 있다. 피해자의 절박한 심리를 이용한 이들은 동반 자살을 하자고 접근해 성추행범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이 같은 행각을 벌인 송모(55)씨 등 2명을 자살방조와 강제추행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주범 송씨는 작년 초 개인 사업을 하다 망했다. 그 후 두 차례 동반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나서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쉽게 죽는 법'을 공부했다. 자살 사이트의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을 찾아보며 질소가스를 이용한 자살을 집중적으로 익혔다고 한다.

송씨는 작년 9월 충남 태안에 허름한 펜션방 한 개를 얻어 직접 자살 장비를 설치했다. 질소가스와 호스, 신경안정제 등 이른바 '자살 세트'였다. 그리고 인터넷과 SNS에 "100% 확실. 고통 없는 자살 방법"이라는 광고 글을 올렸고, 자살 정보를 구하는 회원들을 상대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송씨는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고 속여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자살 시도자들은 대화 상대방이 경찰관이나 자살예방센터 직원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즉각 대화를 중단하기 때문이다.

송씨는 동반 자살을 하려는 젊은 여성들에게 집중적으로 접근했다. 펜션에 갖춰놓은 장비 등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며 여성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자신과 동반 자살을 하기로 했던 20·30대 여성 2명을 펜션으로 불러 질소가스로 햄스터가 죽는 실험을 보여주기도 했다. 송씨는 그렇게 만난 인천의 한 30대 여성에게 100만원을 받고 '자살 세트'를 팔고 집에 장비를 설치해줬다. 구입 원가 50만원짜리를 두 배 값에 넘기는 거래였다.

송씨는 한 여대생에겐 SNS에서 주부라고 속여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사이가 가까워지자 송씨는 펜션으로 여대생을 유인했다. 그리고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 한번 자고 가자"며 여대생을 강제 추행했다. 조사 결과 송씨와 자주 통화한 여성은 16명이었고 문자 대화를 주고받은 여성만 58명이었다. 송씨를 아는 여성 회원들 간의 대화에는 '그분(송씨)은 죽을 마음이 없는 것 같다. 무인도에서 같이 살 여자를 찾는 것 같다' '(동반 자살 대상으로) 여성만 집착하는 것 같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송씨는 돈 많은 여성 회원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한 여성과는 보름간 동거했다. 경찰은 그래서 송씨가 돈벌이와 성적(性的)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살 브로커 노릇을 했다고 보고 있다. 송씨는 동반 자살 지원자를 펜션으로 데려왔던 이모(38·구속)씨와 최근 온라인 도박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앞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일반 사람들보다 피해 신고를 꺼리는 점을 이용한 사기 행각이 많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차피 죽을 테니 장기를 팔아 실컷 돈이나 써보고 죽으라"고 유혹하는 사기꾼도 있다고 한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써먹는 수법으로, 사기꾼들은 피해자가 관심을 보이면 장기 매매 상담을 구체적으로 하고 난 뒤 병원이나 장기 매입자와의 연결 비용 명목으로 소개료를 요구한다. 물론 소개료를 입금하는 즉시 사기꾼은 사라진다.

실제로 SNS와 인터넷 등에 동반자를 구한다거나 안 아프게 죽는 약을 찾는 글을 올리면, 같이 죽자거나 약품을 주겠다는 답변 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지난 6일 SNS의 한 접속자는 "건물에서 투신하면 가족들에게 피해 준다. 나한테 방법을 묻는 분들이 많다"며 자살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다른 접속자는 "여기에서 방법 알려준다, 약품 구해준다며 돈 입금하라는 글은 모두 사기라고 보면 된다. 두 번 눈물 흘리지 말고 절대 조심하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송씨처럼 동반 자살을 빙자한 성추행 사건도 종종 벌어진다. 한 20대 남성은 인터넷 자살 카페에 "자살하고 싶다"는 글을 남긴 여중생에게 같이 죽자고 접근해 성폭행을 한 사건도 있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 최재호 팀장은 "자살을 도와준다거나 동반 자살을 유도하는 글의 상당수가 돈벌이와 성추행 등 범행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서 "SNS와 인터넷 사이트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6.5명으로 OECD 국가 중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행히 2011년 이후 전체 자살자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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