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이익 위해 대통령 권한남용"..이 하나로 충분했다

김민경 2017. 3. 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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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사유 3가지는 "증거부족" 등 불인정
국정농단 허용, 대통령 중대한 헌법 위반
삼성돈 수뢰혐의는 일체 판단 안해
"국민의 신임 배반,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

[한겨레]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왼쪽 다섯째)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선고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용호·강일원·김창종·김이수·이정미·이진성·안창호·서기석 재판관.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 중 단 한 가지만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하나만으로도 박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89쪽 분량의 ‘2016 헌나 대통령 박근혜 탄핵’ 결정문에서 5가지였던 탄핵소추 사유 중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을 제외하고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수행 의무 위반으로 재구성해 판단했다. 이 중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등 같은 소추사유를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문화체육관광부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이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한 것 등은 인정된다”면서도 “그 이유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되기 때문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관련 소추사유에 대해서도 “피청구인의 대응이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다고 하여 곧바로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도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이 되기는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부족한 증거를 찾으려면 증인을 더 부르고 증거 제출도 요구하면 되지만, 그러면 선고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확실한 파면 사유가 있기 때문에 신속한 심리에 중점을 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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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에 이르러서야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김종 전 문체부 제2차관 등 최순실씨가 추천한 인사를 공직에 임명하고, 이들이 최씨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다. 또 박 대통령이 최씨와 최씨 지인들의 회사 지원을 대기업에 요구한 사실도 확인했다. 헌재는 이런 행위가 “최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 할 수 없다”며 “헌법 제7조 제1항(공익실현 의무), 국가공무원법 제59조(친절·공정의 의무),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이해충돌 방지 의무) 제3항,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 제4호(부패행위) 가목, 제7조(공직자의 청렴 의무)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기업에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출연 요구 등도 헌재는 “해당 기업의 재산권(헌법 제23조)과 기업 경영의 자유(헌법 제15조)를 침해했다”고 못박았다.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대통령 일정·외교·인사 등 직무상 비밀 문건이 “유출되도록 지시 또는 방치한 것도 국가공무원법 제60조 비밀엄수 의무를 위배했다”고 헌재는 정리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을 확인한 헌재는 박 대통령이 파면당할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을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최서원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씨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에 대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아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매듭지었다. 이를 종합해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헌재는 탄핵소추 사유였던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6일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으로부터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을 통해 204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재는 이런 행위를 뇌물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죄 등 형법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 판단하지 않고 어떤 헌법 조항을 위반했는지만 따졌다. 또 박 대통령과 공범 관계인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헌재도 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밀 문건을 최씨에게 유출했다고 인정했지만 형법이 아닌 국가공무원법 위반을 적용해 피해갔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신속한 판단을 위해 뇌물수수를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칫 형사재판의 확정 판결이 헌재 결정과 달라질 수 있는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뇌물 혐의는 판단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헌재는 탄핵심판 초기부터 형사법 위반 부분은 큰 무게를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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