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닷모래는 누구 것인가?..수산업계-골재업계 '벼랑 끝 갈등'
[한겨레]
지난 8일 아침 8시30분께 경남 통영시 정량동 동호항에는 100여척이 넘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이날 통영 앞바다의 날씨는 맑았지만, 파도 높이가 1.5~2m에 바람도 초속 8~13m에 달해 어선들이 출항하지 못했다. 일부 어민들은 그물 손질과 배 안 청소로 바빴다.
32년 동안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아온 어민 윤아무개(52)씨는 멸치 등 최근 어획량을 물어보자 대뜸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당일치기 고기잡이로 먹고 사는데, 지난해부터 기름값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허탕 치는 날이 많아. 어획량도 예년에 비해 절반 이하인 것 같다.” 자신의 24t짜리 어선을 가리키며 문씨가 말했다. “세멸(크기 1.5㎝ 이하 멸치)과 자멸(크기 3~1.6㎝ 멸치)이 욕지도 앞바다에서 많이 잡혔는데, 몇 년 동안 그쪽 근처에서 바닷모래 퍼갔잖아. 모래 틈에서 사는 세멸과 자멸은 이제 구경하기도 힘들어.” 문씨 옆에서 그물코를 손질하고 있던 김아무개(49)씨가 거들었다.
이날 동호항의 멸치권현망수협 위판장에서는 중매인들의 말린 멸치 경매가 한창이었다. 멸치권현망수협은 남해안 어민들이 만든 마른 멸치 생산조합이다. 멸치는 위판장 바닥에 깔려 있었다. 경매사가 멸치 종류와 상자(1.5㎏)의 수량을 불렀다. 중매인들은 상자당 값을 매겼고, 경매사는 값이 가장 비싼 중매인에게 물량을 넘겼다. 이날 들어온 멸치 박스는 1만5000여상자였다. 10여년 경력의 중매인 진아무개(47)씨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위판장에 들어오는 멸치 상자가 하루 평균 3만여개였다. 한 달에 4~5일은 7만~10만 상자가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1만5000~2만 상자 수준이다. 상자가 대량으로 들어오는 날도 없어졌다. 멸치 어획량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멸치권현망수협의 자료를 보면, 통영의 멸치 어획량은 2014·2015년 각각 1만9000여t에서 지난해 1만2000여t으로 37%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수협 관계자는 “지난해 어획량이 줄어든 이유는 수온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바닷모래 채취로 불거진 수산생태계 붕괴 탓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모래채취단지는 경남 통영에서 동남쪽으로 70㎞가량, 경남 통영 욕지도에서 남쪽으로 50㎞가량 떨어져 있다. 이 해역은 연근해 주요 어족자원의 회유 경로이며 멸치와 고등어 등 주요 어종의 산란장이자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2008년 부산신항 공사 등 건설용 모래 수요가 급증하자 이 해역에서 한시적으로 모래 채취를 허용했다. 지난해까지 6200여만㎥의 모래가 채취됐다. 지난 1월15일로 허가 기간이 끝났는데, 정부는 지난 1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1년 동안 650만㎥의 모래를 채취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수산업계는 “바닷모래 채취는 수산생태계를 파괴해 어업인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수산업계는 오는 15일 남해의 모래채취단지에서 대규모 해상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전국 90여개 수협에서 어선 4만여척이 참여할 예정이다. 앞서 대형선망수협과 경남의 14개 수협조합장은 지난달 27일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골재채취법 위반 혐의로 19개 골재채취업체 대표와 모래채취단지 관리자인 한국수자원공사 전·현직 사장을 고소했다. 감사원에 국토부 등 관련 정부기관에 대한 감사청구도 준비하고 있다. 남해EEZ 모래채취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어민들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바닷모래 채취를 계속한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골재업계는 남해의 단지에서 채취할 수 있는 모래량 650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 필수 국책사업인 부산신항 컨테이너부두 건설사업에 모래 345만㎥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골재업계가 사용할 수 있는 모래량은 305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골재업계는 올해 부산·울산·경남지역에 필요한 모래량이 1200여만㎥라고 추산하고 있다. 부산레미콘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올해 부산에만 모래 480만㎥가 필요하다. 남해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된 뒤 서해의 바닷모래를 운반해 사용하고 있지만, 물량이 부족해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업체가 많다”고 했다. 부산·경남의 레미콘 업체 50여곳은 물량 부족 등으로 지난달 11~14일 레미콘 생산을 중단하기도 했다.
골재업계는 일부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강모래 공급에는 부정적이다. 강모래는 덤프트럭으로 운반하는데, 트럭 한 대당 모래 운반량은 17㎥가량이다. 운반비용은 1㎥에 4만원 수준이라고 한다. 덤프트럭의 이동 거리가 50㎞가 넘어서면 운반비가 더 올라가고, 이는 골재업체 등 건설업계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모래 파동 전 남해 모래채취단지의 모래 운반비는 1㎥당 1만5000원 수준이었다. 골재업계 관계자는 “운반비용을 고려하면 바닷모래보다 비싼 강모래를 사용하라는 대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가 어민에게 보상비를 더 주고, 체계적인 바닷모래 채취 계획을 세워 사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생존권이 걸린 수산업계와 골재업계의 갈등이 깊어지는데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는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통영/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주주신청]
▶ [페이스북][카카오톡][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정희의 딸, 퍼스트레이디, 쫓겨난 대통령..박근혜 타임라인
- 제 꾀에 넘어간 박근혜..헌재, 수사 거부 문제삼아
- "통진당은 대역행위" 안창호 재판관, 탄핵 찬성한 까닭은
- "종편에서 일한 3년, 난 부끄러운 '대리 기자'였다"
- [카드뉴스] 5분 안에 훑어 보는 촛불집회 4개월 대장정
- 한겨레 그림판으로 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 '샤이 박근혜'는 보수에게 희망일까, 희망고문일까
- 이재용쪽, 첫 재판서 "특검 공소장 위법" 혐의 전면 부인
- 일본에서 취직하는 한국인, 지난해만 5만명 '급증'
- 당신의 휴대폰과 텔레비전이 당신을 도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