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 8대0 '전원일치'..박 전 대통령의 '태도'가 결정적

윤창희 2017. 3. 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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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선고하면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을 내놓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헌재의 9인 재판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3인은 대통령이, 3인은 국회가, 3인은 대법원장이 추천한다. 국회 추천 3인도 여당 몫, 야당 몫, 여야 합의 추천이 있다. 이런 제각각의 인선 절차는 헌재의 구성을 다양화해 우리 사회의 많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헌재 사건은 소수 의견이 있는 게 보통이다.

2014년 통진당 해산 심판 때도 8명이 인용 결정을 내렸지만, 야당 추천 김이수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런 경우가 보통이다.

더욱이 이번 헌재 재판관 중 2명(서기석, 조용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이다.

또 최근 선고를 앞두고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보수층의 목소리도 컸기 때문에 설사 파면 결정이 내려져도 반대하는 소수 의견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럼에도 헌재 재판관 8명 전원은 박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7시간에 따른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의 점에 대해서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이 보충의견을 내놓았다. 안창호 재판관은 쟁점 자체가 아니라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해 파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보충 의견을 밝히긴 했다. 그럼에도 헌재 재판관 전원은 '파면'이라는 결정에 이견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세월호 사건은 탄핵 사유 안돼

보수적인 성향의 재판관들 까지 일제히 탄핵 인용 의견을 낸 것은 법적인 관점에서 국회의 소추 사안들을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헌재 결정문을 보면 고심의 흔적이 읽힌다.

헌재는 크게 4가지 쟁점으로 나눠 판단했다.


헌재는 상당수 국회 소추 사안은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10일 오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결정문 낭독 초기에 탄핵 심판이 기각 되는 게 아니냐는 술렁임이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들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았던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의무에 대해 헌재는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하는 의무까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고, 성실의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의무 위반은 없다고 헌재가 판단한 것이다.

'나쁜 사람'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문화체육부 국과장 문책 인사를 지시한 것에 대해서도 헌재는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최순실씨의 사익 추구에 방해됐기 때문에 인사 조처가 이뤄졌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나쁜 사람' 발언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언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이를 최순실씨와 연관시키는 것이 증거가 없다는 것이 헌재 생각이다.

또 정윤회 관련 청와대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국회의 소추에 대해서도 헌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탄핵 사유로 삼지 않았다.

그럼에도 헌재는 최순실씨 에 대한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에 대해서는 "최서원(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며 탄핵 사유가 된다고 봤다.

또 최순실씨에게 많은 문건이 넘어간 것도 국가공무원법상 비밀 엄수 의무를 위배한 것으로 판단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독대해 자금 지원을 요청한 행위도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파면 이유가 된 대통령 태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다고 바로 인용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2004년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정 때 일부 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면서 탄핵 심판은 기각했다. 법 위반이 '중대하지 않다'며 이른바 '중대성' 기준을 제시했다.

[연관기사] 헌재 판결문을 통해 본 朴대통령 탄핵 가능성은?

즉 탄핵 인용 결정은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법 위반'이 있을 경우 한한다는 게 헌재 입장이다. 최순실씨에 대한 사익 추구 행위를 도왔다는 법 위반 사유가 있지만 이런 행위가 중대하지 않다면 파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의 몇 가지 법 위반 사안이 '중대하다'고 봤다. 헌재는 이 '중대성'판단 기준으로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를 주로 지적했다.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며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밝혔음에도 특검 수사나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면서 "이런 언행을 보면 법 위반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자세를 볼 때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국민 신임을 배신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파면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4일 최순실씨의 태블릿PC 보도를 계기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일파만파 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심을 달래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태 초기에는 두 차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등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특검 대면 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등 진상 규명에 조차 협조하지 않았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탄핵심판 변론에서 '함부로 재판을 진행한다'며 재판관들을 향해 막말과 삿대질까지 했으며, 법정서 태극기를 흔들거나 탄핵 심판 막판 '주심 기피 신청'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헌재의 전원 일치 결정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박 전 대통령의 헌법 수호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수의견 공개 규정도 만장일치 사유?

일각에서는 이번 전원 일치 결정에는 헌법재판소법 개정도 한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는다.

2004년에 탄핵심판 때만해도 헌재는 심판청구를 기각하면서 결정 이유만 공개했을 뿐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 수나, 이름, 의견 등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탄핵 기각'이라는 다수 의견과 그 이유만 공개했다.

당시 전례없던 소수 의견 비공개에 대해 공개될 경우 재판관들에게 닥칠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이후 2005년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소수 의견 비공개는 불가능하다. 이번 탄핵심판에서도 소수의견과 재판관을 모두 밝히고 주문을 선고하게 돼 있었다. 헌재 재판관들로서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더욱이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대별하는 탄핵파와 비탄핵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재판관들의 의견이 갈릴 경우 또 다른 국론 분열이 우려되는 만큼 '통합의 메시지'로 만장일치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헌재가 고심어린 결정을 내놨다"면서 "만장일치 결정을 계기로 더 이상 국론분열없이 모두 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국정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창희기자 (thepla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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