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호족반(虎足盤) 독상에 8도 진미 .. 미쉐린 2스타 솜씨의 '설후야연'

입력 2017. 3. 10. 00:03 수정 2017. 3. 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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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1년 반도 안 돼 2017년 ‘미쉐린 가이드’ 별 2개를 받은 ‘권숙수’의 오너셰프 권우중씨가 새로 연 한식 비스트로 ‘설후야연’의 1부(초저녁) 주안상. 5가지 음식(기본 3, 선택 2)에 식사와 술로 구성된 한 상이 4만5000원이다.
━ '권숙수' 권우중 셰프 "내가 좋아하는 술·음식·분위기" 개업
권우중 셰프가 자신의 한식 파인다이닝 ‘권숙수’ 주방을 지휘하고 있다.
‘권숙수’ 입구를 지키고 있는 2017년 ‘미쉐린 가이드’ 별 2개 패널.
“파인다이닝 ‘권숙수’에서는 하고 싶은 요리를 했다. 새로 여는 ‘설후야연’은 내가 먹고 싶은 요리와 술, 원하는 분위기를 추구한 비스트로다.”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들었다. ‘권숙수’의 오너셰프 권우중(37)씨가 술에 비중을 더 둔 음식점을 지난 6일 열었다. ‘권숙수’를 개업 1년 반도 안 돼 2017년 『미쉐린 가이드』 별 2개 자리에 올려놓은 명 숙수(熟手)의 새 음식점이니 관심이 갔다. 옥호도 눈길을 끈다. ‘설후야연(서울 강남구 선릉로153길 32 2층 도산공원 동쪽/전화 02-549-6268)’이다. 단원 김홍도(1745~?)의 사계절 풍속화 병풍 8폭 중 하나의 제목(‘雪後野宴’)에서 따왔다. 선비 5명과 기생 2명이 눈을 머리에 인 노송 아래서 화로에 고기 구워 먹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전국 특산물로 만든 음식과 호족반(虎足盤) 독상(1인 1상) 차림이라는 사실도 호기심을 이끌었다. 호족반은 상다리 모양이 호랑이 다리 모양으로 된 소반이다. 개다리소반과 비슷하나 다리 굴곡이 더 깊고 고급스러운 상이다. 나주반의 전형이다.
사계절 풍류를 그린 단원 김홍도(1745~?)의 풍속화 8폭 병풍(프랑스 기메 국립아시아박물관 소장)중 한 폭인 ‘설후야연(雪後野宴)'. 눈 내린 들판에서 선비 5명이 기생 2명과 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이다. 권우중 셰프는 1년 넘는 탐색 끝에 새로 연 한식 비스트로의 이름을이 그림에서따왔다. [사진=네이버 캐스트 중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해설’]
상다리가 호랑이 다리 모양이라 해서 이름이 ‘호족반’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개다리소반과 같으나 다리의 S자 굴곡이 더 깊다. 전남 나주에서 생산되는 나주반에 이 형식이 많다. 천판(天板: 가장 위의 면을 마감하는 판)은 12각으로 느티나무 나뭇결이 잘 드러나 있다. 소반은 음식을 차려 나르거나 사람 앞에 놓고 식탁으로 쓰는 상의 종류이다.
권 셰프는 5가지 특징을 정리해 알렸다. ①전국 팔도 향토요리를 기본으로 제철요리 포진 ②한식이지만 술은 여러 종류 다양하게 ③’권숙수’에서 쓰는 최상급 품질의 국내산 재료로 요리 ④직접 사 모은 호족반에 봉화유기 잔, 청송백자 그릇으로 차리는 독상 술상문화 구현 ⑤밤늦게 제대로 된 한식 먹을 곳이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
한 상 값은 1부(오후 5시 30분~9시)에는 5가지 요리(기본 3, 선택 2)와 술·식사 각 1가지에 4만5000원, 2부(오후 9시~다음날 오전 1시)에는 요리 3가지(기본 2, 선택 1)와 술 1가지에 2만5000원. 개업 첫 달의 1부 차림은 기본음식(3가지) ▷꼬막 숙회 ▷매생이 굴전 ▷안동식 닭발 편육. 10가지 중 2가지 고르는 선택음식은 ▷한우 육포와 호두강정 ▷볼락김치 또는 가자미식해 ▷녹두빈대떡 ▷한우육전 ▷새뱅이 매운탕 ▷제주식 몸국 ▷양국 시래기 닭고기 만두 ▷싸리버섯 볶음 ▷문어 수육 ▷쇠고기 고추 튀김. 식사는 ▷멸치국수 ▷통영식 멍게 비빔밥 중 택일. 2부에는 기본 음식 중 꼬막 숙회와 멸치국수가 선택음식으로 자리를 옮긴다. 단품으로 주문할 경우 모든 음식은 1,2부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다. 기본 제공하는 술은 양이 많지 않다. 음식은 계절과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뀐다.
지난 6일 문을 연 한식 비스트로 ‘설후야연’의 3월 차림표. 차림은 계절과 시장 상황에 따라 약간 바뀐다.
개업 준비가 바쁜 지난 1일 오전 ‘설후야연’을 찾아갔다. 지난해 7월 2일(토) ‘권숙수 개업 1주년 갈라 점심상’ 이후 8개월 만에 그를 만나 90분간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는 주방 시운전 겸 사진 촬영을 위해 독상 한 상을 차려 냈다. 주안상과 식사를 겸한 초저녁(1부) 상으로 5가지 음식과 식사로 구성됐다. ▷싸리버섯 볶음 ▷매생이 굴전 ▷안동식 닭발 편육 ▷새뱅이 매운탕 ▷(메뉴에는 없는) 평안도식 찜닭 ▷통영식 멍게 비빔밥.
빈 그릇으로 차려본 호족반 1인 주안상. 그릇과 주전자는 청송 백자, 술잔과 수저·젓가락은 봉화 유기다. 권우중 셰프가 공방을 직접 돌아다니며 골랐다. 청송 백자를 음식점에서 쓰기는 ‘설후야연’이 처음이다.
음식이 차려지기 전 빈 그릇을 12각 호족반에 차려 놓은 모습을 보니 그 자체가 단아한 작품 같았다. 조선시대 선비 집의 손님맞이 술상을 보는 듯하다. 호족반은 수십~100여년의 풍상을 겪은 고가구다. 술잔과 수저·젓가락은 봉화 유기장(경북무형문화재 제22호)의 수제 놋그릇이다. 대접과 접시는 500년 역사의 맥이 1958년에 끊어졌다가 51년 만인 2009년 되살린 청송 백자다. 흙 대신 ‘도석’가루로 빚어 다른 도자기보다 얇고 가벼우며, 절제된 그릇 선이 특징이다. 유약도 잿물이 아닌 ‘회돌’과 ‘보래’라는 광물성을 써서 색이 일정하고 담박하며 고풍스럽다.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沈當吉)의 후손들이 성을 바꾸지 않고 15대에 걸쳐 세계적 도예 명가를 일군 심수관가(沈壽官家)는 관향이 청송이어서 청송 백자와 예술적 교류를 하고 있다. 그릇도 권 셰프가 수소문해 직접 고른 것이다. 청송백자를 음식점에서 쓰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싸리버섯 볶음(기본음식).
상이 차려졌다. 비스트로 ‘설후야연’의 이름으로 차려진 최초의 상이다. 권 셰프가 재료를 직접 구입해 직원들과 만든 음식들이다. 꼼꼼히 살피며 먹어봤다.
싸리버섯 볶음은 싸리버섯·까치버섯·부추·한우고기를 넣고 볶았다. 싸리버섯은 내가 특별히 좋아해 제철인 9월이면 산지의 5일장에 찾아 다닌다. 그걸 한우와 볶았으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이 값에 한우를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한우 육포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자투리 고기가 생겨 그걸 쓴다고 했다. 까치버섯의 쫄깃한 식감도 좋다.
매생이 굴전. 불린 멥쌀을 갈아서 반죽을 했다(기본음식).
매생이 굴전은 씹히는 느낌이 생소했다. 밀가루나 부침가루로 부친 게 아니다. 멥쌀을 불려 가루를 만들어서 쓴다. 매생이에 굴 향이 잘 어우러져 진한 바다 맛을 보여준다. 권 셰프는 매생이를 좋아한다. 주산지인 장흥의 채취 현장을 찾아 다닐 정도다.
안동식 닭발 편육과 강화 잔새우젓·방아장아찌(기본음식).
안동에서 배운 닭발 편육은 살만 발라서 고아 족편처럼 굳힌 음식이었다. 강화도에서 구해온 잔새우젓과 방풍나물 장아찌가 함께 나왔다. 어떻게 조합을 해도 부드럽고 탄력 있는 편육과 잘 어울리는 맛이다.
새뱅이 매운탕(선택음식).
새뱅이 매운탕은 새뱅이(민물새우)와 흰살생선·애호박·감자·배추·느타리버섯을 넣고 고추장 풀어 끓였다. 설명할 만한 특징을 느낄 수 없었다. 간과 맛의 균형이 어정쩡했다. 개업 날까지 조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평안도식 찜닭. 권우중 셰프가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 솜씨를 원용했다(4월부터 선택음식).
메뉴에는 없던 평안도식 찜닭은 이북이 고향인 어머니가 해주던 방식을 원용한 음식이다. 권 셰프의 외조부는 이북음식점을 하기도 했다. 9호 닭(800~900g)을 반으로 갈라 살짝 삶은 뒤 맞춤하게 쪘다. 국물을 내지는 않고 익히기만 하는 조리이기 때문에 삶고 찌는 시간이 중요하다. 술과 생강 말고 특별히 들어가는 것은 없다. 다리를 뜯어 먹어보니 사위에게 해줬다는 씨암탉 생각이 절로 났다. 정말 잘 쪘다. 안 익은 상태를 갓 벗어난 정도다. 살은 쫄깃하고 결마다 육미가 충만하다. 소스는 매콤한 초고추장에 겨자즙을 끼얹었다. 데쳐서 검지 길이로 잘라 닭 옆구리에 올린 쪽파와 함께 고기를 찍어 먹으니 그 솜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찜닭은 4월부터 메뉴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통영식 멍게 비빔밥과 쪽파김치로 차린 1부(초저녁) 식사상.
식사로 나온 통영식 멍게 비빔밥은 밥 위에 멍게젓을 올리고 오이·상추 채, 김 가루, 초절임 무 채를 올렸다. 젓갈은 멍게 살을 2% 염장해 4일을 저온 숙성한 다음 냉동해 두고 필요한 만큼 덜어 쓴다. 많이 삭히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덜 삭히는 편이다. 비빔밥을 먹는 동안 초절임 무채가 씹힐 때마다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3월 1일부터 이미 예약을 받고 있다. 개업 후에도 예약을 하지 않고 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116㎡(35평) 넓이에 좌석은 37석(호족반 좌식 13석, 바·테이블 13석). 문 여는 시간은 오후 5시 30분~다음날 오전 1시(주방 마감 오후 11시 30분). 일요일에 쉰다.
호족반 10개를 차려놓은 좌식 홀. 인원에 따라 좌석 편성을 쉽게 재배치할 수 있다. 8일 저녁 손님으로 갔더니 의외로 이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좌식이 불편한 젊은 세대들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홀 매나저가 말했다.
90분간의 대화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Q : 옥호가 ‘설후야연(雪後野宴)’이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제목 아닌가. A : 이름을 1년 넘게 고민했다. 진정한 우리 식문화, 옛날 선비들의 고급 풍류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찾아봤다. 그림의 느낌대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놀았구나, 눈이 온 뒤에 야외에서 이렇게 놀면 좋겠구나 하는 공감이 우러나서 이름으로 삼았다.

Q : 구상을 오래 한 셈이다. A : ‘권숙수’ 개업(2015년 7월 1일)하고 얼마 안 있어 내가 필요해서 생각하게 됐다. ‘권숙수’ 같은 파인다이닝의 주방은 일하는 상황이 굉장히 날카롭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늦게 일 끝나고 술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만 마땅한 업소가 없다. 늦게 끝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술집, 음식 좋으면서 맛있고 분위기도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직접 나서게 됐다. 또 지방의 좋은 음식들이 많아 그런 걸 현대식으로 풀어보고 싶은데 ‘권숙수’에서 다 풀어낼 수가 없었다. 다 하지 못한 시도를 이곳에서 펼쳐보고 싶다.
세 사람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호족반 자리. 고가구상가에서 상을 하나씩 사 모아서 모양이 다 다르다.

Q : 1인 독상에 초저녁 4만5000원, 깊은 밤 2만5000원 받아서 이 동네(도산공원 옆)에서 버티기 어렵지 않은가. A : 박리다매(薄利多賣) 정책이다. 메뉴 R&D 일을 다양하게 많이 해봤다. 다른 사람보다 원가관리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좋은 재료로 싸게 음식을 할 수 있다. 전국에 제철 특산물 생산자나 거래상을 많이 알고 있다. 택배 직거래를 한다. 유통과정을 여러 단계 거치면 값이 2~3배로 뛰는 것들을 싸게 받아 쓸 수 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새벽 도매시장에도 빠지지 않고 나간다.

Q : 전국의 식재료와 지방음식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게 됐나. A : 대학 때부터 학교생활보다 여행을 더 열심히 했다. 바닷가를 더 즐겨 갔다. 학생 때는 혼자 다닐 때가 많았다. 학교 마친 다음에는 아는 요리사들과 다니며 현지 재료 알아보고 함께 요리해보는 여행을 많이 했다. 몇 년은 방송하느라 지방을 떠돌았다. 산지에 찾아가 식재료를 알아보고 요리하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4개나 했다. 어선을 몇 십 번 탔다. 잡히고 길러지는 과정을 알고, 살아있을 때의 느낌과 수확의 기쁨을 몸으로 겪으면서 많이 배웠다. 도움이 많이 됐다. 그때 돌아다니며 8도 향토음식을 익혔다. ‘설후야연’에서 현장 응용을 해볼 거다. 국내여행에서 배운 걸 실전에 적용할 수 있고 아이디어를 접목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 수도 있는 게 한식 요리사의 장점이다. 한때 ‘방송용 셰프’라는 말까지 들어 지금은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

한식이 너무 단편화돼 있는데 지역 특산 식재료를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하고 싶다. 이런 게 있구나, 말로만 듣던 게 이거구나, 알려주는 음식을 하려는 생각이다. 그게 전파되면 한식이 더 다양해지지 않겠는가. 요리 개발할 때 그런 걸 늘 염두에 둔다.

박찬일 선배 따라서 가끔 지방여행을 할 때는 노포(老鋪)들을 찾아 다닌다. 거기서 만나는 할머니들을 통해 지방의 향토색 있는 미각 정서를 배우기도 한다. [※두 사람은 친하다. 중앙일보에 연재한 ‘셰프 릴레이’ 두 번째 기사가 ‘박찬일이 권우중에게’(2015년 10월 26일 종합 22면)였다. 셰프들끼리 꼬리를 물고 칭찬하는 글에서 박 셰프는 권 셰프의 식재료 욕심을 두고 “미련한 녀석, 어여쁜 녀석”이라고 묘파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18931888]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보물 제1809호·부산시립박물관 소장) 부분. 숙종이 70세 넘은 모친을 모시는 신하 7명에게 쌀과 비단을 하사했다. 신하들은 1691년 8월 잔치를 열고 그림으로 그려 남겼다. 50년쯤 뒤 그림을 새로 모사한 작품이다. 경수연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꼽힌다. 참석자들이 모두 독상(1인 1상)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연희도를 보면 대부분 그랬다.
Q : 호족반(虎足盤)·독상 같은 말은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말이다. 소반들을 보니 한 나무의 열매들처럼 모양이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르다. A : 원래 예전에는 잔치에서도 모두 독상을 받았다. 그게 우리 전통문화다. 호족반을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서울 장안평 고가구상가에 돌아다니며 하나씩 사 모았다. 그래서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집에 옛날 물건과 전통문화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CF감독 겸 카피라이터로 왕성하게 활동한 아버지는 미대 출신이다. 친구분 중에 활동하는 작가가 많았다. 집에 작품들도 많았다. 그 덕에 어려서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600여 편의 광고를 제작하거나 작업에 참여했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시리즈 광고와 국민들 귀에 못이 박힌 “OO백화점”으로 끝나는 CM송 등이 대표작이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도 해외출장을 자주 다닌 아버지는 선진국에서 요리사의 사회적 위상과 가치를 일찍 간파하고 아들에게 권했다. “예술의 완성은 요리”라며 강권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당연히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았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남보다 일찍 시작해 유리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요리 말고 보고 배운 게 좁아 아쉽다. 아버지는 지금도 음식점 사업의 막강한 후원자이다. ‘권숙수’와 ‘설후야연’의 로고 등 BI(Brand identity) 작업을 다 해주셨다.
4인 입식 테이블 자리는 1인용 나무쟁반에 상을 차려준다. 쟁반은 장미목 통나무를 잘라서 팠다.
장미목 통나무를 잘라서 판 독상용 나무쟁반. 나뭇결이 그림 같다.

Q : 술 물목을 보니 종류가 다양하다. A :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다양하게 마시는 걸 좋아한다. 취향대로 여러 종류를 준비하려고 한다. 한식이라고 해서 전통주만으로 모든 음식에 조화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메뉴에 있는 것 말고도 150가지쯤 갖추고 있다. 와인 70여 가지에 증류주·막걸리·생맥주 등을 준비했다. ‘권숙수’나 여기나 술 선택은 소믈리에 자격이 있는 홀 매니저에게 전권을 줬다. 내 취향이 반영된 술은 대동강 페일 에일(맥주), 국순당 ‘려’(소주), 크레망 드 부르고뉴(와인) 정도다.

Q :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음식은? A : 한식이 좋은 음식이긴 하지만 레스토랑 요리로 발달하지 않았다. 궁중이나 가정 음식으로 틀이 짜였다. 국제표준은 레스토랑 방식이다. 좋은 한식을 어떻게 하면 레스토랑에서 풀어낼까, 이게 현재의 과제다. 그래서 틈만 나면 해외에 가본다. 요리법을 배워 오는 것은 아니다. 레스토랑 방식의 전개를 고민하는 거다. 우리 식재료의 특성을 훌륭하게 펼치고(develop) 싶다. 요즘 국적불명의 한식이 많다. 많이 부족하다. 옛날 하던 대로만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정신세계와 식문화가 함께 녹아 든 우리 음식을 하자는 말이다. 맛만 바라보고 한다면 세계 각국 음식의 장점을 뽑아 모으면 유리하고 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다. 누가 먹어도 ‘이건 한식이다’ 느끼고 한국인 몸에 흐르는 맛의 유전자(DNA)가 살아있으면서 누구나가 좋아할 음식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김치를 다른 채소와 방식으로 담가도 좋지만 김장김치의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은 있어야 한다. 불고기를 구웠을 때 우리 간장 맛과 버섯이 고기와 어우러져 내는 맛의 ‘어울리즘’(분명 이렇게 말했다)이 있어야 한식이다.
2인, 4인, 6인, 10인 테이블로 편성을 바꿀 수 있는 입식 테이블 별실. 독상 개념은 여기도 똑같다.

Q : 경력을 얼핏 보면 탄탄대로, 승승장구라는 말이 떠오른다. A : 그렇지만은 않다. 대학(경희대 조리과학과 1999~2005) 졸업 후 조선호텔에 1년 있다가 파라다이스 그룹에서 도쿄에 낸 ‘오미’ 레스토랑을 기획하고 개업해 헤드셰프로 1년간(2006~2007) 근무했다.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 돼 실패했다. 지금까지 다닌 직장 중에 기억이 가장 안 좋은 경우다. 미국 뉴욕으로 가서 재미동포가 투자한 현대 한식 레스토랑(Jodie's Friends) 헤드셰프로 1년 여(2007~2009) 일했다. 귀국해서는 음식점이 아닌 기업에 들어갔다. 썬앳푸드 R&D 셰프로 2년 반쯤(2009~2011) 일하면서 한·중식 메뉴 개발을 담당했다. 이때 ‘모락(한식)’ ‘시추안하우스(중식)’ 같은 레스토랑을 시장에 내놨다.

2011년 회사를 나와 오너셰프로 논현동에 ‘고기의 조건’이라는 고깃집을 냈다. 50㎡(15평) 작은 식당이었는데 짧은 기간(1년) 아주 잘됐다. 자신을 얻어 이태원에 133㎡(40평)의 모던 한식당 ‘이스트빌리지’를 냈다(2012). 장사보다는 레스토랑 경영을 배우려는 목적이 우선이었다. 식당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빚이 쌓였다. 돈을 벌려고 식당을 하면서 2013년 CJ푸드빌 메뉴개발팀장 겸 한식 총괄로 입사했다. 만 32세 최연소 부장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엄청나게 했다. 적자였던 한식 부문을 흑자로 돌려놨다. CJ를 나올 때 연봉은 호텔 임원의 두 배쯤 됐다. 업계에서 Top of top이었다. 당분간은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 회사 일이 많아 퇴근하면 밤 10시, 그때야 식당을 들여다봤다. 잘될 까닭이 없다. 관리가 안 되니까 단골들도 떠났다. 와중에 식당을 신사동으로 옮겼다. 이사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말아먹은 것이다(2013). 투자를 많이 했는데 다 손실로 남았다. 큰 빚을 졌다. 빚을 갚아줄 만큼 집이 부자도 아니었다.

2015년 4월 CJ를 퇴사했다. 대우가 좋다고 회사생활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라 회사원 체질이 아니다. 조직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나와서 3개월 만에 ‘권숙수’를 개업했다. 나올 때도 돈은 없었다. 개업자금 마련을 위해 CJ와 자문역 계약을 했다. 2016년 말까지 메뉴 개발 등 많을 일을 계속해야 했다. 자문 수수료 1년반치를 당겨 받았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마이너스통장 한도가 5000만원이면 4980만원까지 끌어다 썼다.
‘혼술족’이나 커플을 위한 카운터 자리. 이곳도 나무쟁반에 1인상을 차려준다.

Q : 운전자금도 필요했을 텐데 ‘권숙수’ 경영은 잘됐나. A : 2개월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예전 단골들이 많이 찾아오고 직원들이 잘해줬다. 내가 직원 복이 많다.

Q : ‘권숙수’가 개업 1년 남짓 만에 미쉐린 별을 2개 받아 많은 사람들이 놀랐는데. A : 한국 땅에서 나는 식재료로 한국 고유의 맛을 잘 살려냈다고 좋은 평가를 해준 것 같다. 직접 담그는 장·젓갈·장아찌 등을 활용하는 음식을 유심히 본 듯하다. 서울로 여행 온 서양사람들이 먹기에 지역적 개성은 있지만 거부감 없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평가했다고 본다. 서양식 재료도 한국에서 생산된 것을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조리한다. 캐비어를 예로 들면 국산을 구하고 참기름을 넣어 요리한다. 프랑스 최고 기능장(MOF)인 에릭 트로숑(Eric Trochon·53) 셰프가 ‘권숙수’에 왔었다. 그도 이런 점을 좋게 평가했다. 『미쉐린 가이드』 심사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MOF(Meilleurs Ouvriers de France)는 프랑스 정부가 200여 분야 장인을 대상으로 4년마다 대회를 열어 선발하는 명장제도다.]

Q :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해보니 명성에 비해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던데. A : 기자들하고 친하지 않다. 누가 왔다고 특별히 잘해주는 게 없다. 모든 손님은 똑같다. 단골이 와도 홀에 나가 인사하거나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요리가 중요하니까 인사치레보다 음식에 정성을 쏟는다. 그게 거만하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말을 감추거나 둘러서 하지 않고 생각대로 다 하는 성격이다. 그런 이유로 기자들과 별로 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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