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미래의 팬을 잃다

김양희 2017. 3. 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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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한겨레] 8일 고척 스카이돔 공식 훈련을 이어가던 2017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들은 이틀 연속 졌다. 근성의 야구도, 끈질긴 승부력도 없었다. 그저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줬다. 이것이 마이너리그 트리플A와 쿼드러플A 사이의 리그라고 자부하던 케이비오(KBO)리그의 현주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 야구에 던져주는 ‘경고’쯤은 될 수 있겠다.

구성 때부터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들은 대표팀이다. 정체성도 모호했다. 최상의 전력 구성이 어려웠다면 2018 자카르타아시안게임이나 2020 도쿄올림픽을 대비한 세대교체 성격을 띠는 대표팀이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형평성에 맞지 않는, 징계 미이행의 오승환을 발탁한 것 자체도 무리수였다. A조 전력분석 또한 미흡했다. 자료가 적었다는 이유를 대지만 예선 라운드까지 치르고 올라온 이스라엘은 한국과 똑같은 조건에서 타자 맞춤형 수비 시프트까지 선보였다.

대표팀 동기 결여가 결정적인 원인일 수 있겠다. 이번 대회는 아시안게임, 올림픽과 달리 병역특례 등의 혜택이 없었다. 한 선수는 “대표팀 차출을 거부해도 비난 듣고 대표팀에 뽑혀도 성적이 안 나면 비난만 듣는데 누가 대표팀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겨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왜 나와서 비난까지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하는 선수도 있다. 아무리 프로 선수라고 하지만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태극마크를 단 국가대표 선수들의 의식 수준이 이렇다. 세계야구클래식 4강 이상의 성적일 때는 자유계약(FA) 취득 연수를 1년 줄여주는 식의 당근책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물론 이는 구단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스트라이크존이나 공인구 반발력 문제도 나온다. 그동안 케이비오리그는 지나칠 정도로 타자 친화적이었다. 작년에는 규정 타석을 채운 3할 타자만 40명, 20홈런 이상 기록한 타자는 27명에 이르렀다. 공격적인 야구가 리그 붐을 조성하기도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듯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이른 실전경기에 아직 올라오지 않은 타격 컨디션 탓도 있겠으나 2경기 대표팀 타율은 0.203에 불과하다. 홈런은 단 1개도 나오지 않았다.

역대 최악의 야구 시즌 오프닝이지만 케이비오리그는 올해도 800만 관중을 가뿐히 넘어설 것이다. 이대호(롯데)의 국내 복귀, 최형우(KIA)·차우찬(LG)의 이적, 이승엽(삼성)의 은퇴 시즌 등 굵직한 흥행요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실망스런 경기력으로 세계야구클래식을 통해 창출될 잠재적 미래의 팬들을 잃었다는 점은 아주 뼈아프게 다가온다. 2006 세계야구클래식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유입된 팬들로 작금의 800만 관중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야구 영웅 없는 시대의 도래가 임박한 것 같아 자못 씁쓸하기도 하다.

기세등등하게 2연승을 올린 이스라엘의 한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결과가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다.” 또 다른 선수는 이런 말도 했다. “유대인의 국기를 휘날리며 우리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다.” 과연 세계야구클래식 참가를 통해 한국 야구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대표팀은 어쩌면 대회 시작 전부터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존감 없는 야구는 그저 공놀이에 불과하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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