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독립' 스스로 흔든 대법원.. 내부 반발 이어져

박소희 2017. 3. 8. 15: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의혹에 판사들 항의 "법원 신뢰 땅에 떨어지고 있다"

[오마이뉴스 글:박소희, 편집:김도균]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부 모습.
ⓒ 이희훈
대법원이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에 제동을 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 파문이 커지고 있다. 법원 안팎으로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위해선 이번 일의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 내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지난 2월 전국 법관 약 3000명에게 이메일로 '국제법 관점에서 본 사법독립과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과 사법부의 관료화가 재판 독립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묻는 이 조사에는 판사 500명가량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이상한 공지에 이상한 인사까지...

그런데 설문조사를 한 지 며칠 만인 2월 13일, 법원행정처는 '이상한 공지'를 냈다. 판사들의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규정에 따라 최초 가입한 학회를 빼곤 탈퇴시키겠다는 것. 이미 사문화한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이 계획은 판사들의 반발을 샀다. 법원 안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모임이지만 2011년에서야 만들어진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이어졌다. 결국,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공지를 번복했다.

'이상한 인사'까지 이어지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지난 6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2월 9일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한 수도권 법원 소속 A판사에게 이 연구회의 설문조사 결과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도록 하고, 학회활동을 축소시킬 방안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인 A판사는 '사법부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사표까지 냈고, 임종헌 차장이 만류한 끝에 소속 법원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A판사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적 없고 개인 사정으로 법원행정처 근무를 취소했다고 한다.

법조계에는 그동안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시해온 대법원이 설문조사를 계기로 '찍어 누르기'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한 전직 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을 낸 판사들도 이 연구회 소속인데 법원행정처가 벼르고 있던 것 같다"며 "6일 오후 갑작스레 이정미 헌법재판관 후임을 지명한 것도 이 일을 덮으려는 의도 아니겠냐"고 말했다. 학술연구목적이라지만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건드렸으니 눈 밖에 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법원 안은 들썩이고 있다. 첫 보도가 나온 날, 연구회 소속 B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에 "우연히 기사를 읽다가 숨이 멎었다"며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정례 학술행사를 개최하는데 왜 법관 1명이 사표 제출까지 각오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 가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C판사는 "법원행정처가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A판사 인사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며 "법관들로 하여금 스스로 법관의 독립에 의문을 품게 하는 순간 법관의 독립과 법원의 신뢰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도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정식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연구회는 "언론 보도 내용은 결코 우리 사법에 있어선 안 되는 부끄럽고 위법한 일"이라며 "피땀 흘려 이룩한 법원의 신뢰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땅에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법원을 사랑하는 충정으로 청원한다"며 "더는 법원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게 대법원 차원에서 공정한 조사기구를 만들어 의혹의 시선으로 법원을 바라보지 않게 진상을 조사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 본부(아래 법원노조)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조치는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며 인사권을 무기로 일선 법관들의 개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양 대법원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 노조는 그가 이번 일은 물론 고법부장 승진제도 폐지 등 기존에 만들어진 사법개혁 방안을 무력화해 사법 관료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며 퇴진을 요구했다.

판사들도, 시민단체들도 "진상 조사해야"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법원 밖에서도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7일 보도자료를 내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이 사법행정을 남용, 사법개혁을 열망하는 법관들의 의견 표출과 활동을 통제한 것"이라며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또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날 법원행정처에 A판사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 축소, 해산 기획 등을 부당하게 지시했는지 밝혀달라고 질의서를 보냈다.

같은 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역시 논평을 내 대법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이 사안은 양 대법원장이 연관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직접 해명하고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책임 있는 사과와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법원의 인사제도 개혁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