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정권 바뀌면 전리품처럼 교육정책 손대.. 이번엔 막아야"

정유진 기자 2017. 3. 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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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교총 회장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벽면에 쓰인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집니다’라는 글귀를 보며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교육정책만큼은 이제 보수와 진보의 논리를 떠나 추진해야 합니다. 역대 정권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마치 전리품을 챙기듯 입맛에 맞게 교육정책을 바꿔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 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죠.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든 벗어나야 합니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최근 대선주자들의 교육정책을 보고 느낀 단상을 이렇게 정리했다. 하 회장은 무엇보다 교육정책이 ‘십년수목, 백년수인(十年樹木百年樹人)’ 정신 아래에서 기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니만큼 10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잘 세워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하 회장이 보기에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교육부 폐지’ ‘학제 개편’ ‘대학 통폐합’ 등의 파격적인 교육공약은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산에서 남발된 것들로 평가된다. 하 회장은 “헌법 31조 4항이 정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회장은 1995년부터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를 지내고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한 명실공히 교육분야 전문가이다. 하 회장을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교총 회장실에서 만나 우리나라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을 들어봤다.

하 회장은 ‘백년수인’을 위한 기본으로 포퓰리즘적 교육정책 배제와 교육법정주의 회복을 제시했다.

“북유럽의 교육선진국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자신들이 10년 후에 치를 대학입시제도를 알 수가 있죠.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법정주의에 따라 입시정책을 정치인들이 함부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시정책이 조령모개(朝令暮改·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친다는 뜻)로 바뀌는 우리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조기 대선전이 불붙은 상황에서 교육정책마저 선명성 경쟁에 휘말리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교육부 폐지 및 학제 개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교육부 축소, 남경필 경기지사는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 등 현재 대선주자들이 가장 먼저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바로 ‘교육’입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와도, 차기 정권의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미래 인재를 키우는 교육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대선주자들이 교육문제를 화두로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선주자들이 교육문제를 가장 큰 화두로,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교육을 모두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교육에 대한 국민적인 개혁, 변화의 요구는 항상 있었지만 교육은 한 국가의 인재를 키우는 일로,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안 전 대표가 주장하는 교육부 폐지와 관련해서도 어떤 선진국도 교육부를 폐지한 나라는 없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야지 아예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최근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요구도 거셉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까지 나서 선거연령을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3 학생에게 선거권을 주면 학교 현장은 선거판이 됩니다.”

하 회장은 “교육부가 교육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함께 하는 현행 정부의 시스템이 교육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차기 정부에는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를 둬 교육정책의 기획 기능을 담당하게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으로 학생, 학부모, 교원 모두가 개혁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입니다. 정권에 따라, 혹은 장관과 관료, 교육감에 따라 생성된 정책, 선거에 따른 포퓰리즘 일색의 정책으로는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장기적인 비전을 마련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정권을 넘어서는 교육정책,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위원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란이 많은 누리과정 예산문제,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교육부는 기획된 정책을 집행하는 기능을 하면 됩니다. 이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교육정책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 회장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서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도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교육감 직선제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으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지난달 14일부로 교육감 직선제를 도입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교육감 등의 측근 비리, 선거법 위반 등 직선제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선제로 뽑힌 교육감들이 사사건건 교육부와 반목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청이 교육부를 우습게 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17개 전국 시·도교육감 중 대부분 교육감이 평행선을 달리는 쌍두마차 같으니, 결국 죽어나는 것은 학교와 교사입니다.”

실제 직선제를 도입한 이후 교육감들이 잇달아 선거법 위반 등으로 임기(4년)를 못 채우고 낙마했거나, 낙마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하 회장은 교육감 선거에 20억~30억 원씩 써야 하는 직선제 선거 구조가 교육 전문가들이 실제로는 선거에 접근조차 못 하게 만드는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17개 시·도교육감 중 교육분야에서 5~10년씩 몸담은 전문가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비전문가들이 교육감에 당선돼 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기획해서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주장하는 야간자율학습(야자) 폐지도 포퓰리즘적 정책이라고 봅니다.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개선 없이 야자만 폐지하면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리고 사교육 배만 불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하 회장의 주장은 교총 회원들의 교육감 직선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 측면도 있다. 2015년 교총이 회원 3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6.3%가 직선제 폐지에 찬성했다. 그러나 하 회장은 교육감 직선제를 대신할 교육감 선출 방법에 대해서는 즉답하지 않고 유보 입장을 나타냈다.

“직선제의 대안으로는 임명제, 간선제,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 공동등록제, 교원·학부모만 참여하는 축소된 교육감 직선제 등 많은 제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최근에는 시·도별 조례로 교육감 선출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입니다. 논의되는 제도들도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만큼 직선제 폐지 후 교육계와 정치권, 국민의 여론 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 회장은 우리나라의 교육이 바로 서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로 ‘교권 회복’을 들었다.

“교총 회장 임기 동안 교권 회복을 중점 과제로 놓고 추진할 생각입니다. 2015년 교권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추가됐지만, 학교 현장은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교권보호법이 교권보호에 어느 정도 이바지하고는 있지만 예방보다는 사후대책에 치우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현장의 평가입니다.”

교권 회복이 필요한 이유는 그만큼 교권 침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최근 3년간 폭행, 폭언·욕설, 성희롱, 수업방해,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건이 교육부에 접수된 것만 1만2973건에 달한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사건이 매년 증가하고, 초등학생의 교사 폭행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교총은 지난해 ‘2015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를 발표, 2015년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가 총 488건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2006년 교권 침해 179건에 비해 173% 이상 증가한 수치다. 교권 침해 사건이 2009년 이후 6년째 증가하고 있으며 연평균 41.8건(12.8%)씩 늘어났다는 것이 교총의 분석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하 회장은 취임 이후 교권 회복을 위한 ‘교권 침해 처벌 강화 법제화’를 최우선 추진순위에 두고 전방위 활동을 펼쳐 왔다.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교권을 침해한 학생의 보호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한 교권보호법 개정안과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에 대한 징계조치에 학급 교체 및 전학 조치를 포함한 교권보호법 개정안이 입법 발의된 상태입니다. 교원들이 교권 침해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가 조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함께 나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하 회장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찬성’이던 교총의 입장이 하 회장 취임 이후 ‘반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교총은 하 회장 취임 이후인 지난해 11월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해 “친일·독재 미화, 건국절 제정 등 교육현장의 여론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하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하 회장의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1919년 3·1 독립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음이 헌법 정신입니다. 1948년을 건국절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교과서를 사실상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교총의 입장입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교육부의 국정교과서도 면밀한 검토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3가지 전제조건을 먼저 충족시켜 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교육현장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교과서, 다양한 교과서 집필진의 구성, 친일이나 독재를 미화하고 건국절이 포함된 교과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총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행된 교과서는 이 같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좀 더 보완이 필요하지 않나 판단했습니다.”

교총은 2015년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과정을 통해 올바른 역사교육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국정교과서 추진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공개 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입장 변화와 관련, 독립운동가의 자손인 그의 소신과 교총 회원들의 국정교과서 반대 의견을 반영한 결과라는 게 교총 측의 설명이다. 하 회장은 인터뷰 곳곳에서 정쟁에 휘말리는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조부인 하준호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받은 독립운동가이고, 아버지도 항일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교총이 국정교과서 반대로 선회하는 데 저의 출생배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일부의 의견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을 떠나 우리의 미래 학생들을 위한 국정교과서가 정쟁의 대상이 됐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연구학교와 보조교재 활용학교 신청 및 지정을 둘러싸고 기회조차 봉쇄하고, 전교조·민주노총 등 특정 단체가 일부 학교에 가서 협박 등을 일삼는 것은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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