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에 주가 뛰고 올림픽까지.. "집 사자" 들썩이는 도쿄

도쿄·서울/특별취재팀 2017. 3. 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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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 넘어 부활한 日本] [2] 달아오른 부동산 열기
- '집값 떨어진다' 20년 관념 깨져
日 수도권 지역 아파트 가격, 3년간 평균 1억원 가까이 올라
도쿄선 10년새 60% 오른 곳도
- 경기 회복이 상승 원동력
株價 8000선에서 1만9000까지.. 경제 불안감 줄어들며 돈 돌아
금리 낮고 담보대출 규제 없어 집값의 10%만 있으면 구입 가능

도쿄에 사는 맞벌이 주부 다나카 마리코(가명·42)씨는 2013년 도쿄 쓰키시마(月島)역 앞에 건설 중인 방 세 개짜리 초고층 아파트 1채를 분양받았다.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로 결정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환호하는 현장을 NHK방송이 생중계한 직후였다.

"최소한 올림픽 때까진 경기 부양을 계속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잘 고르면 오를 거란 자신이 있었어요."

다나카씨의 아파트는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마루노우치에서 20~30분 거리다. 집값 7300만엔 중 90%를 35년 거치 장기 대출로 해결했다. 작년에 입주한 그 집이 지금 9000만엔쯤 한다.

대학생 때 유학 와 17년째 도쿄에 사는 회사원 박은지(가명·36)씨도 도쿄 고토구 도요스(豊洲)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신축 아파트를 도쿄올림픽 유치 직후 대출 끼고 5900만엔에 분양받았다. 박씨가 집을 산 지 6개월 만에 같은 동네 비슷한 평수 분양가가 1500만엔 뛰었다. 박씨는 "주위 일본 직장인들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통적인 부촌(富村) 대신 옛날 서민 동네를 재개발해 새로 들어서는 1~3인용 초고층 아파트가 인기라고 한다. "제가 학생 땐 못 보던 현상이에요."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젊은 층이 집을 사기 시작한 현상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났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집값은 으레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피규어는 사도 집은 안 산다는 분위기가 전체 사회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교수는 "버블 붕괴를 경험한 데서 오는 트라우마"라고 했다.

1991년 평당 1438만엔 하던 도쿄 시내 평균 땅값은 5년 뒤엔 3분의 1, 10년 뒤엔 5분의 1이 됐다. 그 뒤 10년도 집값이 잠깐 올랐다 금세 도로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정책실장은 "20년간 집값이 계속 떨어지니 누가 집 살 생각을 했겠느냐"고 했다. 집을 사는 사람도 오를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집값이 꺼지면서 소비와 투자도 덩달아 침체했다는 점이다. 사사키 마사야(佐佐木雅也)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다른 분야 투자도 꺼리게 된 게 '일본형 장기 불황'의 근본 원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부터 3년간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은 978만엔, 전국적으론 736만엔이 올랐다. 최근 10년간 도쿄 시내 신축 아파트값은 서울 지하철 2호선과 비슷한 도심 순환 노선인 JR야마노테선 주변 지역은 60%, 다른 노선 주변은 30~40% 뛰었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가 회복될 거라는 기대감, 올림픽 유치, 저금리 등이 부동산 시장 흐름을 돌려놨다"고 했다. 야나기마치 이사오(柳町功) 게이오대 교수는 "대출 받아 집 사는 젊은이가 나온다는 건 경기 회복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베 총리는 재집권 후 '디플레이션 탈출'을 최대 목표로 내걸었다. 시중에 돈을 푸는 아베노믹스로 수출이 늘고 주가가 올라갔다. 버블 때 4만에 육박하던 주가가 장기 불황 말기 8000선까지 떨어졌다가 아베 총리 집권 후 1만9000까지 다시 치고 올라왔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주가 회복으로 경제에 대한 불안 심리가 엷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돈이 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도쿄올림픽 유치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주오구 가치도키(勝どき)나 미나토구 고난(港南)처럼 도쿄에서 요즘 뜨는 동네는 주변에 올림픽 관련 랜드마크가 들어서거나 지하철 역이 정비되는 곳이다. 홍승표 이마트 일본사무소장은 "지금 도쿄 부동산 붐은 상당 부분 올림픽 특수"라고 했다.

저금리가 훈풍을 보냈다. 일본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가 없어 집값의 10%만 있어도 구입할 수 있다. 주택금융지원기구가 운용하는 장기 고정금리 대출 상품 금리가 아베 총리 집권 직전 1.9%에서 작년 말 1.1%로 더 낮아졌다. 집값이 오를 거란 보장이 없을 땐 금리가 낮아도 소비자가 움직이지 않았지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퍼지자 다나카씨와 박씨 같은 사람들이 시장에 들어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신축 아파트 분양 물량 하루에 매진'이란 기사가 잇달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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