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눈길' 김향기, 눈빛으로 말해요..기쁨도 슬픔도
부잣집 오라버니를 짝사랑했던 철부지 소녀 종분(김향기) 그리고 교사가 되고 싶었던 똑똑한 소녀 영애(김새론). 일본군 위안부 소재의 영화 ‘눈길’(3월 1일 개봉, 이나정 감독)이 울분 대신 애틋한 감정을 부르는 건, 전적으로 두 소녀 덕분이다. ‘눈길’은 역사의 참상보다 소녀들의 여린 표정과 몸짓을 더 살뜰히 챙긴다. 위안부의 암담했던 현실을 알기에, 두 소녀의 우정은 순수한 동시에 더없이 애처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 시대를 고발하기에 앞서 우리가 품에 안고 기억해야 할 존재는, 그 눈길 위에 위태로이 서 있던 소녀들이 아닐까.
‘눈길’의 두 소녀가 김향기와 김새론을 만난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는나이로) 열여덟 살 동갑내기 두 배우는 맑고 싱그러운 동시에 단단함까지 갖췄다. 김향기와 김새론이, 그 시절 해맑던 소녀의 모습으로 다시 마주 앉았다.
데뷔 11년. ‘마음이...’(2006, 박은형·오달균 감독)에서 강아지와 오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깜찍한 꼬마는 어느덧 훌쩍 자랐다. ‘눈길’에서 김향기가 연기한 열다섯 살 종분은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서도 소리쳐 울고 웃지 않는다. 소녀는 이제 안다. 여린 눈빛과 자그만 몸짓으로도 뜨거운 감정을 전하는 방법을. 성인의 문턱에 다다른 열여덟 살 배우의 이야기.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Q : ‘눈길’ 속 모습보다 훌쩍 더 자란 느낌이에요. A : “2년 전 겨울이었으니까요. 그땐 중학생이었는데,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됐어요. ‘눈길’을 찍던 겨울은 뭐랄까, 어디서 무슨 장면을 찍었다는 사실보다 그때의 감정이 또렷하게 생각나요. 가슴이 먹먹하고 슬픈 기억이요.”=
Q :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이야기인데요.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A : “무겁고 예민한 시대의 문제를 다루니까 걱정이 앞섰죠. 그런데 이나정 감독님의 말씀을 듣고 안심했어요. 너무 심각하지 않게, 맑고 평범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보여 주자고 하셨거든요.”
Q : 극 중 종분은 그간 연기해 온 캐릭터들과 퍽 닮아 보여요. 착하고 씩씩한 소녀의 모습이요. A : “엄마(장영남)한테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떼쓰기도 하지만, 동생 종길(장대웅)은 끔찍이 챙기는 착한 아이예요. 그냥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순수한 소녀 같다고 느꼈어요.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어린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철부지요.”
Q :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A : “중국 만주로 끌려가는 기차 안에서 종분이 말해요. ‘끝도 없이 간다. 엄마가 기다리랬는데 말도 못하고 와서 나를 찾을 건데…’ 하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일본군에 끌려가며 겪었을 소녀들의 혼란과 두려움이 그 장면에서 잘 보이는 것 같아요.”
Q : 종분은 영애의 오빠 영주(서영주)를 짝사랑하잖아요. 영주가 종분의 입가에 묻은 감자 부스러기를 떼 주는 장면에서 종분의 멍한 표정이 귀여웠어요. 비중이 적긴 해도 로맨틱한 연기는 처음 아닌가요. A : “로맨스는커녕 또래와의 연기 경험 자체가 별로 없어요(웃음). 늘 누군가의 딸로 나왔으니까. 로맨스 연기는 처음이지만 짝사랑이라 많이 어색하진 않았어요. 수줍어 어쩔 줄 모르다가 짝사랑하는 오빠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 배시시 웃는 소녀의 모습이잖아요.”
Q : ‘눈길’을 보면 배우 김향기의 성장이 느껴져요. 이제는 막 소리쳐 울지 않아도 절절한 감정을 전할 줄 아는구나 싶어요. A : “어릴 땐 행동으로 옮기는 게 연기인 줄 알았어요. 예를 들어 슬픈 장면이면 엉엉 울어 버리는 거죠. 지금은 말이나 행동으로만 연기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감정을 전달하려 해요.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실어서 눈에 힘을 팍 줘야지’ 이런 느낌은 아니에요. 캐릭터의 감정에 빠지면, 상대 배우를 볼 때 자연스럽게 그런 눈빛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 종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영화가 흘러가는데요. 할머니가 된 현재 종분(김영옥)의 모습에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A : “상황으로 보나 감정으로 보나, 제가 연기한 과거의 종분이 더 격하게 표현할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김영옥 선생님은 표정만으로 그 모든 걸 보여 주시더라고요. 그냥 가만히 서 계시는데도 과거의 삶이 모두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Q : 다음 영화는 2부작으로 제작되는 ‘신과 함께’(2017년 개봉 예정, 김용화 감독)잖아요. 저승차사 덕춘 역을 맡았는데. A : “지금 촬영 중인데, 3월 중순이면 2편 촬영까지 다 끝나요. CG(컴퓨터 그래픽)를 많이 사용하는 영화라 허공에 대고 연기할 때가 많아요. 나중에 영화로 어떤 그림이 나올지 너무 궁금해요.”
Q : 지금 머리 모양이 ‘신과 함께’ 스타일인가요. A : “오늘은 좀 더 예쁘게 꾸민 것이고, 영화 속에서는 거의 ‘바가지 머리’에 가까워요.”
Q : ‘마음이...’ 때부터 거의 한결같은 헤어스타일인데요. A : “그런가요(웃음). 데뷔 시절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작품 활동을 쉴 때는 머리카락을 길게 두는 편이에요. 그런데 촬영에만 들어가면 대부분의 감독님들이 길이가 애매한 것 같다며 짧게 자르자고 하세요. 보통 여자들은 긴 머리카락 자를 때 마음이 아프다던데, 이제 저는 너무 익숙해서. 하하.”
Q :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A : “좋아하는 배우는 있어요. 제임스 맥어보이! 그 눈빛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뭐랄까…. 카리스마 있는 거나, 귀여운 거나, 순수한 거나, 어떤 연기를 해도 잘 어울려요. ‘23 아이덴티티’(2월 22일 개봉,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도 빨리 보고 싶어요. 히히.”
Q : 평생 연기할 생각인가요 A :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식의 다짐이나 목표라기보다, 그냥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요. ‘아, 난 평생 연기를 하겠구나.’”
━ 향기는 줄넘기 달인 “날마다 집 앞에서 2500~3000개씩 줄넘기를 해요. 체력 기르는 데도 좋고 키 크는 데도 도움이 된대요. 키가 조금 더 컸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자라고는 있는데, 너무 조금씩이라…. 훌쩍 더 커야죠. 하하.”
━ ‘아휴, 이제 아가씨 다 됐네~!’ “‘신과 함께’ 촬영장에 가면 하정우 삼촌, 주지훈 삼촌이 종종 그렇게 놀려요. ‘신과 함께’ 2편 개봉 무렵에는 진짜 어엿한 숙녀 아니겠냐며.”
━ 향기의 취향 “요즘 꽂혀 있는 건 곱창 그리고 ‘라라랜드’(2016, 데이미언 셔젤 감독) OST.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편은 아니에요.”
━ 회식이 궁금해 “어른이 되면 일단 술 마시는 법을 배울 거예요. 영화를 찍다 보면 종종 회식을 하는데, 아직 미성년자라 못 갈 때가 많아요. 그런 편한 자리에서 한 번쯤 감독님이나 선배님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눠 보고 싶은데.”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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