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의 함정..가짜 뉴스 권하는 SNS

권오성 2017. 3. 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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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15세기 사람 속였던 가짜 뉴스
21세기 소셜미디어 통해 범람
사실보다 주관 앞선 '탈진실' 시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알고리즘
거짓과 사실의 경계 '무장해제'
미국 대선 데이터에서도 확인됐다

"우리는 미디어 아니다" 주장하던
마크 저커버그도 입장 바꿔
<르몽드> 등과 '펙트 체크' 추진

[한겨레]

technology―누리꾼들이 참여해서 만드는 온라인 사전 ‘나무위키’는 지난 1월 ‘이퀄리즘’(equalism)이라는 항목을 삭제했다. 나무위키의 이퀄리즘 설명에는 ‘성 평등주의’라는 뜻의 이 사조가 서구에서 언제 생겨났고 어떻게 페미니즘(여성주의)을 대체하고 있는지 그럴듯한 설명이 붙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서 이를 참조해 페미니스트와 논쟁에서 이퀄리즘이라는 단어를 썼다. 현실에선 정의당의 펼침막에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이퀄리즘 같은 ‘사조’는 없다. 한명의 누리꾼이 만든 날조였던 것이다. 인터넷의 힘을 빌면 누구나 쉽게 사실을 지어낼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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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페이스북을 연다. 직장 동료의 아기 사진, 발리에서 휴가 중인 친구의 자랑, 내 구미를 당기는 제품 광고 등이 화면을 차례로 채운다. 그 사이를 지인이 공유한 정치 뉴스들이 메운다. ‘박근혜 대통령 쪽의 억지 주장 왜?’ ‘태극기 집회에 자금 지원하는 세력 있다’ 같은 기사들이다.

반면, 아버지가 모바일에서 접하는 내용은 사뭇 다르다. 전화·문자를 빼면 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켜는 이유는 카카오톡 정도인데, 이 공간에선 올해 초부터 탄핵 촛불집회를 비난하는 기사가 부쩍 늘었다. ‘탄핵을 틈탄 북한의 남침 계획이 임박했다’, ‘미국 인공위성이 확인하니 100만 촛불이 사실은 11만3374명이었다’ 등의 기사였다.

인터넷 미디어 환경만 놓고 보면 나와 아버지는 각각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 스마트폰에선 이른바 ‘가짜 뉴스’가 부쩍 눈에 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인공위성으로 한국의 촛불 참가자 수를 세서 발표한 적이 없다.

가짜 뉴스 범람의 진짜 원인

가짜 뉴스 이야기가 주류 뉴스에 범람하고 있다. ‘전통적인’ 언론사들은 가짜 뉴스가 어떻게 대중을 호도하고 정치를 망쳐놓고 있는지 열정적으로 보도한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뉴욕 타임스>나 <시엔엔>(CNN) 같은 언론사의 뉴스를 보고 “가짜 뉴스”라고 손가락질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짜 뉴스를 탐닉하는 것을 “대변기호증”(똥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증상)에 빗대었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인간의 정신을 죽이는” 도구라며 강력 비판했다. 우리나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까지 “가짜 뉴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가짜 뉴스의 역사가 1475년 이탈리아 트렌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한다. 당시 이 마을에서 두 돌 반 된 아이가 실종됐는데 프란치스코회의 한 수도사는 유대인이 아이를 유괴해 피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지어내 설교에서 거듭 퍼뜨렸다. 거짓 정보로 특정 집단을 공격한 선례다. 거짓 소문, 정치적 프로파간다, 정치인을 비꼬는 풍자까지 가짜 뉴스는 늘 있어왔다. 지금 이례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거짓이 늘었다기보다는 진실의 지위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위원회는 2016년을 상징하는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뽑았다. 옥스퍼드가 말하는 탈진실의 정의는 이렇다. “여론을 결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 사실(facts)이 감정이나 개인의 믿음보다 힘이 떨어지는 상황을 일컫는 말.”

이 단어는 1992년 미국 극작가 스티브 테시치에 의해 처음 고안됐지만, 지난해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다. 다수의 영미권 지식인과 언론은 지난해 ‘진실과 작별을 고하는 시대’가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하기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고(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한때 팩트(사실)의 결정권이 전문 언론인의 손에 있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 사이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이거 신문에 나온 사실이야”로 정리되던 시대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누구나 블로그 등을 쓰게 되면서 여론 결정력은 분산되었다. 독재 정부의 매체 통제와 조작이 어렵게 됐지만, 동시에 전문 언론인의 검증과 게이트키핑도 약화되었다. 여론 영향력은 점차 인터넷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나 국내의 네이버, 카카오 등이다. 미국 저널리즘 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5월 발표한 뉴스 소비 연구를 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6명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향력 과장됐다” 분석도

미국 공화당 행사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Gage Skidmore, 위키피디아 독일어판 제공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혐의 때문이다. 정치적 이단아인 트럼프가 당선되기까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각종 가짜 뉴스로 넘쳐났다. 대개 그에게 유리한 내용들이었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힐러리 클린턴 비리를 폭로하려던 비밀요원이 암살됐다’….

이들 뉴스는 구체적으로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미국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이 발간하는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이하 리뷰)는 인터넷 서비스업체 컴스코어의 100만명 인터넷 사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지난 1월 발표했다. 우선 드러난 사실은 가짜 뉴스 영향이 과대포장 되었다는 점이다. 리뷰는 2015년 11월부터 미국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 11월까지 1년 동안 가짜 뉴스와 전통 뉴스 사이트의 순 방문자 수를 추적했는데, 전통 뉴스 방문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짜 뉴스에 비해 평균 10배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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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소비자들이 거짓 정보만을 탐닉하는 외골수도 아니었다. 리뷰는 가짜 뉴스 소비자와 전통적인 ‘진짜 뉴스’ 소비자가 각각 다른 매체 뉴스를 얼마나 함께 보는지(교차 노출) 비율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가짜 뉴스 소비자가 진짜 뉴스 소비자에 비해 다른 매체를 보는 데 소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 뉴스를 본 사람 가운데 41%가 <뉴욕 타임스>를 찾아본 반면, 다른 진짜 뉴스를 보고 <뉴욕 타임스>를 찾아본 이들의 비율은 오히려 적은 36%에 불과했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따위 뉴스를 본 사람들이 보통보다 <뉴욕 타임스>는 뭐라고 하는지 더 챙겨 본 셈이다.

리뷰는 데이터를 종합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가짜 뉴스 독자들이 실제 뉴스도 본다는 점은 이들이 왜곡된 현실 속에 사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런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가짜와 실제 뉴스를 반년 넘게 같이 봤다면 점차 가짜 뉴스를 줄이다가 끊는 게 예측 가능한 현상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가짜 뉴스 독자 수는 1년 내내 비슷했다). 그렇다면 가짜 뉴스 독자들은 정확한 뉴스를 찾아 실제 뉴스를 본다기보다는, 나머지 세상이 어떻게 ‘어리석게’ 속고 있는지 보려고 실제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보고서는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이런 가짜 뉴스 소비자의 속성 때문에 “가짜 뉴스 공급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끝을 맺는다.

자신이 보는 거짓된 세상에 안주할 수 있는 것, 이것은 현대 인터넷 서비스의 중요한 특징이다. 미국 인터넷 운동가 일라이 패리서는 이를 자신의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필터 버블’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나와 아버지가 구글에서 같은 ‘태극기’라는 단어로 검색해도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구글 서비스가 워낙 발전해서 평소 이용자의 사용 습관을 기록하고 있다가 가장 구미에 당길 만한 검색 결과를 찾아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도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모든 이용자가 각자 관심 가질 만한 내용으로 첫 화면을 각각 다르게 구성해 보여준다. 구글, 페이스북뿐 아니라 다수의 인터넷 회사들이 여기에 경쟁적으로 참여한다. 그 결과 인터넷 환경은 점점 ‘나’를 중심으로 정치적, 문화적으로 닫힌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다.

필터 버블이란? 맞춤형 검색 기술이 발전하면서 검색자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예측해 내놓게 됐다. 그런데 이 때문에 검색자는 자신의 기존 관점과 배치되는 정보는 검색에서 점점 볼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렇게 인터넷 사용자가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취향의 막에 분리되어 버리는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인터넷 활동가 일라이 패리서가 책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에서 처음 사용했다.
온라인 친구도 끼리끼리 뭉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초기에는 온라인에서 느슨한 관계가 현실 세계의 가족이나 국가 같은 강한 관계를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견해가 나왔지만, 최근 연구는 그 반대되는 결과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끼리 유유상종하려는 인간의 성향이 소셜네트워크와 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그만큼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할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와 아버지가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을 점차 낮추는 쪽으로 인터넷이 작동하는 셈이다. 패리서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건강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인터넷 기업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은 기술 기업이지 미디어 기업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를 요약했다. 단지 사람들을 연결해줄 뿐이기 때문에, 그 네트워크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책임지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기업은 중립성의 이름으로 이를 원칙처럼 지켜왔다.

“팩트 체크” 페북, 프랑스 대선은 미국과 다를까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연설하는 마크 저커버그. Brian Solis, 플리커 제공

“알고리즘 숨기고 립서비스만”

지난달 17일 이 전통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저커버그는 이날 ‘세계 공동체(글로벌 커뮤니티) 건설하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해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천명했다. 가짜 뉴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트럼프 당선에 대한 페이스북의 책임론이 끊이지 않았고, 대체로 진보 성향인 페이스북 임직원의 내부 반발도 커지고 있었다. 세계 18억명의 활동 사용자를 둔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인 그는 성명에서 “지금 같은 시기에 페이스북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성원 모두에게 봉사하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선포했다.

성명은 큰 틀에서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서비스가 어떻게 ‘화합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인지 제시하면서 가짜 뉴스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그는 페이스북이 협력적이고 안전하고 정확한 정보에 바탕을 둔, 시민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5가지 특징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분열과 정파적 양극화를 촉진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며 인터넷 기술기업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가짜 뉴스 문제와 관련해선 올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 <르몽드> 등 전통 매체와 협력해 팩트 체크 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크로스체크’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지난 4일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그는 또 “뉴스 산업은 정확한 정보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라며 지역 언론을 돕는 데 힘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페이스북의 변화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아직은 미지수다. 국내의 경우 2015년 기준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본다는 비중은 20% 수준이지만, 이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페이스북 국내 이용자도 지난해 11월 기준 1700만명에 육박했다. 세계 최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변화는 다른 인터넷 사업 경쟁자들에도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전체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선택한 개입 노선도 답은 아니라는 데 있다. 다수의 미디어 비평가들은 즉각 저커버그의 발표에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레오니트 베르시츠키는 페이스북이 “우리의 정보 인프라 구조를 각자의 이데올로기 저장고에 갇혀 살도록 ‘재편’했지만”, 이를 설계한 알고리즘은 “블랙박스”처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스티븐 월드먼은 “2015년 디지털 광고비 590억달러(약 67조원) 가운데 360억달러는 페이스북과 구글에 집중됐다”며 “저커버그가 (가짜 뉴스를 해결하고) 저널리즘을 살리기 위해 할 일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기부”라고 꼬집었다.

국내 전문가들도 각자 자신의 네트워크에 사는 시대에 대책으로 전통 저널리즘의 팩트 체크 기능과 같은 역할 강화를 꼽는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동시에 단속보다 네트워크 구성원 각자의 미디어 역량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글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인포그래픽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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