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막강 권한 대법원장.. 관료화된 사법부.. 줄 서는 법관들

장혜진 2017. 3. 5. 18: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 담긴 구조적 문제는
'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연구회)의 설문조사에는 국민들이 신뢰하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실상 사법부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설문조사가 사실상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 등을 중심으로 한 ‘사법부 관료화’ 타파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설문 문항을 보면 중앙집권적이고 비민주적인 법원 인사·행정 체제나 관행이 법관들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개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법부 관료화로 법관 독립성 흔들

일선 판사들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법관들을 줄 세우는 환경이 법관의 독립 보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인식하는 기류다. 첫 설문부터 ‘사법행정에 관해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한 법관도 보직, 평정, 사무분담 등에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없다’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 물은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법관의 독립 보장을 위해 △승진·전보·선발성 보직 등의 인사 △평정·재임용 등 직무평가 △사무분담과 재판절차 등 재판업무 △정치권과 언론 등 외부로부터의 재판독립 보호 분야 등에서 사법행정이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특히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과도한 권한을 축소, 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처장은 대법관)를 통해 모든 법원 인사와 예산 등을 관장한다. 각급 법원 소속 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과 사무분담, 사건배당 주관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법원장도 지명한다. 법조계에선 대법원장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중 일부를 발탁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시키고 이들 중 일부를 대법관에 제청하면서 법관들을 줄 서도록 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설문에서 대법관 선임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대법관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를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제는 대법관후보추천위가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비공개로 진행되는 등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대법원장이 제청권으로 대법관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권법연구회 측이 대법관 제청절차 수정 필요성에 대한 판사들의 의견을 물으면서 수정 방향으로 △각 법률가 직역과 국회, 법관 등의 대표로 후보추천위 꾸려 대법원장의 관여 축소 △후보추천위의 실질적인 후보 검증을 위해 활동기간 연장 등 지원 △후보자 천거 절차와 후보추천위 회의 공개 등을 제시한 이유이다.

법원 내부에서 대법원이 당초 2018년 2월을 기점으로 폐지키로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인사 제도에 대해 재검토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논란이 일거나 주요 선진국처럼 각급 법원장을 민주적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대법원장의 권력 분산 필요성과 연관된다.

재경지법 A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수많은)권한 중 일선 판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게 바로 인사권”이라며 “고등부장 승진과 대법관 인선 등 인사에서 자유로울 판사가 얼마나 있겠느냐. 대법원장이 권한을 나눠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회의 자율성 강화·국민 신뢰 회복 방안 시급

일선 판사들은 각급 법원의 심의기구인 ‘판사회의’ 활성화를 보장하는 방안도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 사법부는 법관운영위원을 다양한 형태의 선거로 선출한 뒤 사법행정에 적극 참여토록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장이 판사회의 의장을, 법원장이 지명한 판사가 간사를 맡는 형태로 운영된다. 각급 법원 사무분담도 법원장 권한이다. 인권법연구회 소속 B부장판사는 “대법원은 판사회의를 권력 분점으로 여기고 상대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원행정처가 모든 걸 정해주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과 불신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엘리트 코스인)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나 대법관 발탁 등 대법원장이 강력한 인사권을 독점하면서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선발도 결국 발탁 방식을 택했다”며 “판사들의 사법행정권 참여 기회를 선심성으로 제공한다”고 꼬집었다. 차성안 군산지원 판사도 얼마 전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을 통해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차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형사합의부 등 요직 사무분담에 고등(법원)부장 승진을 얼마 안 남긴 소위 잘나가는 지방(법원)부장을 꽂아넣은 후 거의 대부분 고등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구조는 승진 앞둔 (판사들의) 눈치보기 자기검열 의심을 자초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원 사무분담을 법원장 한 명이 아니라 판사들 중 직선된 운영위원 8~12명으로 구성된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에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재판 공정성과 관련해 ‘전관예우’ 경험 유무와 전관예우의 영향력을 물은 것도 눈길을 끈다. ‘2000년 이후 전관예우가 구속영장실질심사 등 인신구속 관련 사건과 형사·민사재판 결과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 사례를 직접 경험하거나 믿을 만한 경로로 들은 적이 있는지 여부’ 등이다. 지난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 로비 사건에 연루된 현직 부장판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구속돼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국민의 사법부 불신을 가중시킨 데 대한 법원 전체의 반성과 전관예우 근절 의지를 촉구하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장혜진 기자 janghj@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