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선생님들, 학생들 보기 부끄럽다

김행수 입력 2017. 3. 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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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고 사태, 대한민국 교사의 초라한 위상

[오마이뉴스 글:김행수, 편집:김예지]

전국 5000개가 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중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경북 경산의 문명고 하나다. 문명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까지 나서서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지만, 교장과 이사장은 절대로 국정교과서를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박근혜와 교육부의 참패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는 21세기 대한민국 학교의 참담한 민주주의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막강 권한 이사장-교장, 왜 그들이 교과서를 정하나?

  문명고 김태동 교장은 23일 학교에 출근했으나 당초 학생들에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철회에 대해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학생들을 만나지 않았다.
ⓒ 조정훈
앞서 김천고, 오상고, 경북항공고 등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추진하던 학교들이 백기를 들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시선뿐 아니라 학교 내부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교사들뿐 아니라 학부모, 특히 학생들까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데, 버티는 두 학교가 있다. 경북 경산의 문명고등학교와 서울의 디지텍고등학교이다. 서울디지텍고는 서울교육청에서 연구학교 공문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교장이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여 수업하겠다고 나섰다. 수업을 담당하는 역사 교사가 아니라 곽일천 교장이 연구학교로 지정되지 않아도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명고는 더 심하다. 70%가 넘는 교사들이 서명으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역사 수업을 직접 담당할 역사 교사가 자신은 국정교과서로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랬더니 문명고는 중학교 역사 교사와 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일방적으로 전보(맞교환)해서라도 국정교과서 수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중학교 역사 교사는 기간제교사다. 힘없는 기간제 교사를 들러리로 세워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교사의 전보는 학교장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사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국정교과서 강행은 교장의 뜻이 아니라 이사장의 뜻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홍택정문명교육재단 이사장도 언론을 통하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사립초중고교법인협의회의 경북 지역 대표이다. 이 단체는 이미 지난해 국정교과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학교 설립자이자 아버지가 5.16민족상을 받았으며, 자신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폄하를 인정할 수 없으며, 탄핵 반대 집회 참여 독려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일부 학생이 전학을 가더라도 어쩔 수 없으며, 국정교과서 수업 거부를 선언한 교사에 대해서는 해교(該校)행위라는 발언까지 하면서 징계를 암시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특단의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문명고 이사장이 스스로 국정교과서를 철회할 것 같지 않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왜 서울디지텍고에서는 국정교과서를 수업 시간에 사용하겠다는 주장을 역사 교사가 아니라 교장이 앞장서서 하고 있을까? 왜 문명고에서는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역사 교사는 못 하겠다고 하는데 이사장과 교장이 나서서 강행하겠다고 하고 있을까?

이사장과 교사는 단 한 시간의 수업도 하지 않는데, 왜 그들이 교과서 선정 권한까지 가져야 하는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디지텍고나 문명고가 설립자 부모에 이어 자식으로 이사장 또는 교장을 하고 있는 족벌 사학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정녕, 대한민국 학교의 주인은 이사장과 교장이란 말인가?

비대한 사학법인 vs. 왜소한 교사들

 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리기 전 운동장에 모여 국정교과서 철회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는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가 왜소(矮小)한 교사, 고개 숙인 교사들이다. 먼저, 서울디지텍고 교장이 토론회를 빙자하여 1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비판하는 정치 강연을 하자, 학생들은 손을 들어 마이크를 잡고 교장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비판했다. 그런데, 같은 화면에선 졸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이 여럿 보였다.

물론, 일부 교사들은 교장의 일방적 정치 편향에 반발하는 의미로 행사장을 나와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교사도 교장을 지적하거나 말리는 교사가 없다. 졸고 있는 교사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이면 이해하겠지만 학생들 보기 민망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교사들의 무기력만 지적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다. 문명고에서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를 반대하던 부장교사는 보직해임되었고, 또 다른 교사는 담임에서 배제되었다. 국정교과서 수업을 거부한 고등학교 교사에게는 중학교로 일방적 전보(중학교 교사와 맞교환)와 제재(징계)로 위협하고 있다. 학교장이나 이사장에게 수업을 하는 고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기간제교사인 중학교의 역사 교사의 입장은 애초 고려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애초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문명고 교사들 73%(27명)가 국정교과서 도입을 찬성하였다고 하고 반대한 교사는 10명도 채 안 되었다고 한다. 교장은 반대하는 교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교장실로 불러서 개인 명담을 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서명해 달라니까 그냥 마지 못해 찬성해 준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다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거꾸로 70%의 교사들이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참으로 우스운 모양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1차 부결된 안건을 교장이 학부모를 불러서 다시 설득을 하여 2차 표결을 통해 가까스로 5:4로 통과시켰다. 학교운영위원회에 교사들이 적어도 4명 정도는 있었을 텐데 일사부재의의 원칙(한번 부결되면 같은 회기 내에 다시 같은 안건을 상정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라는 회의의 일반 원칙도 지키지 않은 학교장을 지적하며 따진 교사는 없었다.

집단행동을 막겠다며 자율학습을 하러 오는 학생들의 등교를 못하게 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이를 따지고 들었다는 교사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교사에게 국정교과서 사태는 "내가 이러려고 교사를 했나?"하는 자괴감이 들게 한다. 교과서 선정 문제까지 교장과 이사장의 권한은 너무나 막강한데 교사들은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2017년 대한민국 교사들의 참담한 위상이다.

현재의 모범을 보여준 학생들

 문명고 신입생들이 2일 오전 입학식이 열린 학교 강당에서 국정교과서 철회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조정훈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단연 군계일학(群鷄一鶴)은 학생들이다. 김천고도 결정적으로 국정교과서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강당에 모여 국정교과서와 학교의 처신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집단행동이다. 그리고 그들이 붙인 학교 담장의 대자보이다.

1시간에 이르는 대통령 탄핵 비난 교장의 일장 연설을 비판하고 나선 것도 디지텍고의 학생들이었다. 구미 오상고도 학교가 국정교과서를 포기하게 만든 제일 큰 힘은 학생들의 집단적 반발이다.지금 연구학교로 유일하게 남은 문명고 역시 가장 적극적으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행동에 나선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학생들이다.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학교측의 방해 공작에도 수십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피켓을 만들어와서 운동장에서 시위를 하고, 일부 학생은 입학을 포기하면서까지 국정교과서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하고 있다.

디지텍고도, 김천고도, 구미 오상고도, 경북항공고도, 그리고 문명고도 모두 학생들이 교사와 어른들이 배워야할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18세 투표권 문제에 있어서, 왜 그들에게 투표권을 하루라도 더 빨리 주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는 그 학생들이 내일의 희망이 아니라 당장의 모범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학자 존 듀이의 '교육은 미래의 생활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로 삶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말이 지금 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인 듯하다.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닐까? 교사와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할 상황이다.

국정교과서가 보여주는 참담한 학교민주주의 수준

문명고를 비롯한 여러 학교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교과서 사태는 우리나라 학교민주주의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 한 시간의 수업도 하지 않는 이사장과 교장은 교과서 선정에 있어서까지도 막강한 권한을 갖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를 무시하고 있다. 반면에 교사는 자신이 수업할 교과서조차도 마음대로 채택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 학생은 교과서에 대한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교과서 선정을 위한 중간 단계인 학교운영위원회 역시 민주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먼저, 사립학교의 경우 학운위의 위상이 자문기구라는 점이 근본적 한계이다. 그러니까, 학운위에서 의결한 사항에 대해 학교장이나 이사장이 거부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법적 강제력도 없다.

그러니 부결된 안건을 학교장이 학부모위원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여 다시 표결에 붙이는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학운위 소집이 되지 않자 일단 연구학교 신청부터 하고 추후에 학교운영위를 열겠다는 학교도 생긴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선정 문제를 다룬 디지텍고 학운위 회의는 교장과 교감의 제안 설명 외에는 단 한 명의 토론이나 질문도 없이 무사통과되었다.

근본적으로는 교사위원의 구성부터가 대표성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사립학교 학운위의 교원위원은 교사들이 직선으로 뽑는 것이 아니다. 후보들을 추천하는 권한만 교사들에게 있고 최종적인 위원은 학교장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지명한다. 투표에서 1등을 한 후보가 탈락하고, 꼴찌를 한 후보도 학교장이 낙점하면 교원위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고도 그들은 합법이라고, 민주주의라고 한다. 이런 학운위가 교사들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리가 없다.

문명고를 비롯하여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학교들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특정 교원단체 또는 외부 단체에 선동되어서 집회를 하고 반대를 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진실과 거리가 멀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려는 학교들이 말하는 교원단체는 전교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들 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교사는 거의 없다. 0명에서, 가장 많은 학교가 3명이다.

확인 결과 전교조 조합원인 교사가 서울디지텍고 2명, 김천고 3명, 문명고 3명이고, 경북항공고와 오상고는 0명, 즉 한 명도 없다. 이에 반해 이 학교들에 근무하는 교원 중 보수 교원단체인 교원단체총연합(교총) 소속 교사는 대부분 20명이 넘는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전교조의 영향을 받아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있지도 않은 전교조 교사가, 기껏해야 3명의 교사가 어떻게 수백 수천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선동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럼 훨씬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교장과 교감, 수십 명의 교총 회원 교사들은 뭘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할 대답이 없다.

국정교과서와 민주주의는 모순

하나의 사관(史觀)을 강요하는 국정교과서는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 개념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정이 아닌 검인정 또는 자유발행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으며, 과거 권위주의 독재국가들에서나 국정교과서를 찾아볼 수 있는 국제적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입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교장과 이사장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는 현재의 국정교과서의 운명은 우리 학교민주주의가 얼마나 참담한 수준에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의 요람이어야 할 학교가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다.

실질적 대선 국면이다. 각 후보들과 정당들은 각종 교육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듯 이번 교육공약의 핵심 중 하나는 학교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국정교과서가 과연 21세기 민주주의에 맞는 제도인가, 교육의 주권을 이사장-교장이 가져야하는지 교사-학생이 가져야 하는지 근본적 고민과 더불어 학교민주화, 특히 사립학교 민주화를 위해서 사립학교법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책이 필요함을 국정교과서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국정교과서 사태를 통하여 우리가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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