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출산의 주범인가?

선명수 기자 2017. 3. 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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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2월 2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출산 제고 대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노도현 기자

2월 24일 한 국책연구기관이 ‘13차 인구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또 한 번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저출산을 여성의 ‘고스펙’ 탓으로 돌린 이 보고서는 올해 초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이어 여성을 출산기계쯤으로 인식하는 국가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내 자궁은 국가 공공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고, 논란 끝에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위원은 보직해임됐다. 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 역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공개 하루 만에 서비스를 중단했다.

출산지도 파문 두 달여 만에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의 내용은 이렇다. 출산율이 낮은 원인은 혼인율 감소에 있으며, 혼인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가임기간을 독신으로 지내는 여성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특히 학력과 소득수준이 높은 이른바 ‘고스펙’ 비혼 여성에 주목했다. 이 여성들이 ‘기회비용’을 따져 결혼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이는 비혼과 만혼, 저출산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이들의 ‘불필요한 스펙쌓기’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채용에 있어 휴학, 연수, 학위, 자격증, 언어능력 등의 ‘불필요한 스펙’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제언한다. 쉽게 말해 고학력 여성의 비혼율이 높으니, 고학력 여성을 아예 줄여버리자는 얘기다.

인구절벽 공포, 빗나간 대책
보고서는 더 나아가 이들의 결혼시장 이탈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고학력·고스펙 여성의 ‘하향 결혼’을 유도하기 위해 “단순한 홍보 차원을 넘어서 거의 ‘백색 음모(white conspiracy)’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혼시장 이탈자들은 자발적·비자발적 비혼을 선택한 고학력 여성과 아예 이 시장에서 소외된 저학력 남성인데, 이들을 짝지어 준다면 혼인율이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단순 도식이다.

보고서의 지적대로 노동력 저하로 인한 국민경제 축소를 우려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저출산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인구절벽과 이에 따른 소비절벽이 불황을 몰고올 것이라는 우려는 진작부터 나왔다. 앞서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공포다.

통계청이 2월 22일 발표한 2016년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7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0만6300만명으로, 1970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혼인 연령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늦어지는 추세다.(2015년 기준 평균 초혼 연령 남성 32.6세, 여성 30.0세)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법을 제정한 이래 10년여간 세 차례에 걸친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통해 8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다. 5년마다 수립되는 기본계획의 가장 최신판은 2015년 나온 3차 기본계획으로, 저출산 대응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며 출산과 양육의 걸림돌로 지목됐던 청년 일자리와 주거대책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보고서를 통해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 출생아 수 48만명을 달성하겠다고 한 기본계획이 달성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관련 예산은 대폭 늘렸지만 출발 첫해부터 이런 계획이 어긋났다는 것이다. 박선권 입법조사관은 “3차 기본계획이 제시하는 청년 일자리 및 주거대책은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나 주거안정과 같은 청년문제의 해법과는 무관하거나, 심지어는 오히려 역효과를 야기할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쉬운 해고’를 추진한 ‘5대 노동개혁 입법’이 그렇다. 정부는 휴일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기간제 노동자 고용기간 4년까지 연장, 파견 허용업무 확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청년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는 되레 고용불안을 키워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 기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주거정책 역시 기업형 임대주택 정책인 뉴스테이는 높은 임대료로 인해 결혼 적령기의 청년이 선택하기에 무리가 있고, 신혼부부 주택마련 자금지원 역시 대규모 부채를 발생시켜 이에 대한 상환 압박으로 이들의 출산을 지연시키거나 단념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3차 기본계획에 포함된 이른바 정부 주도 ‘맞선’ 프로그램 역시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와 놀랍도록 유사한 의식수준을 드러냈다. 이른바 ‘만사결통(萬事結通·만사는 결혼으로 통한다)’ 프로젝트로, 지방자치단체 내 기업체의 참여를 통해 미혼남녀의 단체 맞선을 진행하고 문화프로그램이나 자원봉사활동 등을 통해 이들의 결혼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의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역시 미혼남녀의 ‘매칭 프로그램’ 확대를 주장했는데, “교육투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남녀가 서로 원하는 상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IT기술과 연계해 높여줄 수 있는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면서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바쁜 일상을 대신해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대신해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해 대학에 보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순결서약에서 출산서약으로
출산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져갈수록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비단 ‘출산지도’나 하향 결혼을 위한 ‘백색 음모’만의 문제일까.

여성들에게 청소년기의 성교육은 ‘엄마가 되기 위한 몸’에 대한 공포 심기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33세 싱글여성 김희영씨(가명)에게 초경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의 기억이다. 외국에서 흔히 한다던 축하파티 대신 부모님으로부터 “너는 이제 임신 가능한 몸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훈계를 먼저 들었고, 중학생이 된 후 성교육 시간에 단체 시청한 ‘낙태 비디오’는 그런 공포감을 더 키웠다. 대학 입학 후 담배를 피우는 그에게 남자 동기들은 “나중에 애 낳을 생각은 안 하냐”고 타박을 줬다.

김씨만의 경험일까. 최근 논란이 된 자궁경부암 백신 광고에서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너 그거 얌전히 맞는 게 좋을 거야”라고 훈수를 두며 “여자가 나중에 내 아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장면, 몇 년 전 서울의 한 여대에서 진행된 ‘출산서약서’ 행사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드러낸다. 여성을 아이를 낳기 위한 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취급하는 관점이 여고생에게는 ‘순결서약’을, 여대생에게는 ‘엄마서약’을 요구하는 식으로 드러난 셈이다. 이 대학 학생들이 저출산 관련 특강에서 작성한 출산서약서에는 ‘적극적 출산’, ‘낙태 방지’, ‘가정의 화목’에 여대생들이 앞장서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서울 지하철 일부 노선의 임산부 좌석 ‘핑크카펫’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일각에서 논란이 일자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일부 시민의 반감이 우려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임신한 여성에게는 어려워도 태아에 대한 배려는 쉬울 것이라는 일종의 ‘현실인식’이 작동한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권리는 배려라는 말 뒤에 은폐된다.

진정한 ‘저출산의 적’은
국가의 이익을 위한 여성의 몸에 대한 도구화는 실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04년 황우석 박사 연구를 위한 난자 기증 운동이었다. 난자 기증자가 나타날 때마다 ‘OOO번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식의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황우석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런 애국적 행위를 한 기증자는 ‘성녀’로 표현됐다. 이제 무궁화꽃과 같은 국수주의적 수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10여년이 넘게 흐른 지금 출산은 대중담론과 일상언어를 막론하고 ‘애국적 행위’로 승격된다. 출산과 육아를 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 ‘맘충’이라는 말이 유통되는 것과 동시에 말이다.

국가가 출산 장려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든, 본질적으로 결혼도 출산도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저출산의 주범’으로 지목된 이른바 고스펙 여성의 비혼 선택 역시 일면 합리적이다.

이유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또 다른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2015년 발표된 보고서(‘저출산 시대의 가사노동 및 자녀 돌봄시간 변화와 시사점’)를 보면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 평균 204분(2009년 기준)으로, 남성의 7.8배 수준이었다.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6분으로 10년 전에 비해 고작 7분 늘었다. 여성과 남성의 가사노동 격차는 더 벌어져, 최근 발표된 ‘여성가족패널조사’를 보면 2014년 평일 기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의 8.3배에 달했다. 고학력·고소득 남편일수록 가사노동을 비교적 많이 한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연구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종욱 연구위원이 유도하고자 했던 고스펙 여성의 이른바 ‘하향 결혼’은 연구원 본인의 지적대로 ‘기회비용’ 차원에서 요원한 일이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여성도 경제활동에 나서야 가계가 지탱되는 저성장 사회에서, 가정 안의 돌봄노동까지 이중으로 수행해야 하는 결혼은 더 이상 이들에게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백색 음모’를 통해 고스펙 여성을 저스펙 남성과 짝지워주겠다는 발상은 자유연애 시장에서 그 희소성이 더 강해진 낭만적 사랑보다도 더 낭만적이다 .

남성 생계부양-여성 가사노동 전담 등 성역할이 보수적인 국가일수록 출산 기피가 심하다는 연구도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논문 ‘출산과 성평등주의 다층분석’을 보면, 고학력·고소득 여성일수록 출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성평등주의적 사회에서는 이들이 자녀를 더 많이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2012년 국제사회조사 자료를 이용해 21개 국가 20~45세 여성의 18세 이하 거주 자녀 수에 대한 다층분석을 실시한 결과, 노동시장에서 양성 평등이 실현될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일반적으로 자녀 수가 적지만, 이는 노동시장의 남녀 임금 격차가 낮은 사회에서 완화된다는 것이다. 고학력 남녀 간 임금 격차가 40%포인트로 큰 경우에는 자녀 수가 0.6명 수준이었지만 10%포인트 정도로 비교적 작은 경우에는 1.2명으로 늘어났다. 가족서비스가 공공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포인트 오를 때마다 취업 여성의 자녀 수 역시 0.355명씩 증가했다.

김 교수는 “여성의 경제적 성취와 출산 간의 부정적인 관계가 일시적인 현상일 뿐임이 드러난 것”이라며 “20세기 초·중반까지 여성들의 인적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출산율이 낮아졌다면,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여성들의 인적 개발 및 사회 진출이 활발한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높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노동시장의 남녀 격차가 완화되고, 가족에 대한 공적서비스가 확장되는 등 성평등주의적 사회 변화가 일어난다면 성평등주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학력 취업여성 집단의 출산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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