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병우야' 레이저 눈빛 뒤에 믿는 구석 있었나

홍재원 기자 입력 2017. 3. 3. 20:55 수정 2017. 3. 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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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검찰·특검 수사 무사통과, 김수남 총장과 각별
ㆍ최측근은 박영수 특검과 친분
ㆍ전관 수입비리·청와대 시절 전황 모두 검찰에 부담…봐주기 의혹 씻을 수 있을까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11월6일 검찰 특별수사팀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을 레이저 쏘듯 노려보고 있다. 그는 지난달 21일 법원 영장실질심사 때도 기자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50)은 고비마다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지난해 11월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고검장)에 소환되면서 ‘가족회사(정강) 자금 유용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한 기자를 한참 노려봤다. 지난달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구속되면 이번이 마지막 인터뷰인데 한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다시 기자를 노려봤다.

결과적으로 우 전 수석은 검찰과 특검 수사 모두를 무사히 돌파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의 레이저가 단순히 성격 탓이 아니라 모종의 자신감 표출이란 해석이 나온다. 그가 먼지 하나 안 나올 정도로 청렴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3일 “우병우 입장에서는 김수남 검찰총장과 박영수 특검이 쉽게 자신을 잡을 수 없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전 수석은 어떻게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걸까.

경향신문은 지난해 7월부터 우 전 수석의 수임비리 의혹을 연속 보도했다. 검찰에서 나간 뒤 2013~2014년 변호사 시절 ‘정운호(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몰래 변론’ ‘도나도나 대표 변론 및 수임료 축소신고’ ‘효성 형제의 난 수임 및 검찰에 영향력 행사’ 의혹 등을 제기했다. 수임비리로 이미 구속된 홍만표 전 검사장과 변호사 동업을 했고, 홍 전 검사장과 비슷한 형태의 탈세 등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한 검찰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난 그 보도가 좀 이상해. 우병우는 홍만표하고 달라. 다시 공직에 갈 수도 있어서 변호사 때도 자기 관리를 했다고. 그래서 사건을 거의 안 맡았어. 우병우가 어떤 사람인데…. 뭘 좀 잘못 쓴 거 아냐?”

그러나 알고 보니 우 전 수석은 변호사로 일하던 1년 동안 공식적으로만 50여건의 사건을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값 때문인지 한두 푼짜리 사건들도 아니었다.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우병우의 수임료 관련 협의 과정을 아는 사람이 그러더라. ‘대략 이 정도 부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세게 불러서 깜짝 놀랐다’는 거야.” 그의 말로 우 전 수석은 특정 사건 하나에 수억원을 받았다. 50건 이상이면 대략 계산이 나온다. 홍만표급이다.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을 안 맡았을 거란 추측과 달리 ‘도나도나’란 다단계 사기업체까지 변호하고 최소한 억대의 수임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차남 조현문씨가 주도한 ‘형제의 난’을 대리하면서 해당 내역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정황도 포착됐다. 우 전 수석은 서울변호사회의 수임내역 제출 요구도 끝내 거부하고 과태료 10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서울변회는 “단순 내역인데 왜 제출 못하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상적인 수사기관이라면 이상 징후를 느끼고 조사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우 전 수석을 감싸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동열 3차장(특수부 총괄)은 “구속 중인 홍만표·정운호에게 물어봤는데 우병우 수석은 정운호 사건을 맡지 않았다고 하더라”면서 보도 내용을 선제적으로 반박했다. 정 전 대표가 우병우 이름을 거론했다는 참고인 진술도 나왔지만 검찰은 이를 감추려 했다.

검찰은 넥슨과의 강남 땅 거래 등 우 전 수석 개인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조사부와 형사부 등으로 빙빙 돌렸다. 그래도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검찰은 결국 특별수사팀을 출범시켰다. 그런데 팀장은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윤갑근 대구고검장, 수사팀 주력은 청와대 하명 수사를 많이 맡아 논란을 빚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채워졌다.

이 상황에서 우 전 수석이 특별수사팀에 소환된다. 여기에서 첫 번째 레이저가 발사됐다. 그날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수사를 받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레이저의 비결이다. 검찰이 자신을 겨냥하지 않고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던 거다.

여론이 악화되는데도 김수남 총장(58)은 도대체 왜 ‘누가 봐도 우병우 사단’인 사람들로 수사팀을 꾸린 걸까. 검찰 주변에서는 김 총장과 우 전 수석이 일종의 사전 조율을 했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김 총장은 “어쨌든 특별수사팀 형태로 가겠다”는 의지를 강조했고 우 전 수석(당시 민정수석) 측이 “그렇다면 팀장 등 구성은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해 서로 절충했다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민정수석이 검찰에 ‘셀프 수사팀’을 만든 것인데, 김 총장이 우 전 수석 눈치를 봤다는 뜻이 된다.

법조계에서는 여러 이유에서 김 총장이 우 전 수석을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우선 두 사람은 2014년 우 전 수석이 민정비서관이던 시절(김 총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부터 직거래하며 호흡을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윤회 사건’을 문건유출 수사로 틀어버린 일이다. 이듬해엔 검찰총장 인선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각 후보가 총장 인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정수석을 한번도 접촉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김 총장이 신세를 진 모양새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찰은 우병우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홍만표·진경준(전 검사장)·김형준(전 부장검사) 등 잇단 추문으로 위기에 빠졌다. 오히려 검찰총장이 코너에 몰렸다.

검찰의 ‘우병우 봐주기’는 훗날 특검 수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검찰은 우 전 수석 자택이나 휴대폰 등은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계좌 추적도 안 했다. 이 때문에 우 전 수석에게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수 특검(65)이 우병우 수사를 넘겨받는다. 우 전 수석은 크게 ‘청와대 시절 전횡’과 ‘청와대 입성 전 개인비리’ 등 두 갈래의 의혹을 받는다. 이 중 전자는 입증이 까다로운 특징이 있다. 기업인의 배임죄처럼 해석이나 관련자 진술에 따라 유무죄가 복잡하게 갈린다. 반면 탈세 등 개인비리 의혹은 상대적으로 추적하기 쉽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에 주목했다. 특검 관계자는 지난 1월 이렇게 말했다. “특검법상 우병우 개인비리도 당연히 수사대상이 된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필 것이다. 수임비리 등과 관련해 상당한 첩보를 확보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 전 수석 개인비리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자금 추적도 못했다. 특검 측은 우 전 수석 구속영장 청구 직전 “개인비리 의혹은 특검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어 일단 뒤로 미뤄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에 기류 변화가 생긴 것이다.

특검은 수사기간 만료를 코앞에 둔 지난달 중순 우 전 수석의 민정 시절 의혹, 즉 입증이 까다로운 ‘청와대 시절 전횡’ 부분에 집중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수사 기간도, 폭도 제한적이었다는 얘기다.

실제 특검 내부에서는 우 전 수석 수사를 두고 내부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검찰에서 파견 온 수사인력들이 우 전 수석 수사에 소극적인 견해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검장 출신인 박영수 특검이 우 전 수석의 최측근 최윤수 국정원 2차장(전 검사장)과 친분이 각별하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물론 특검팀은 촉박한 수사기간과 증거수집 불충분 등을 한계로 꼽지만, 결과적으로 특검팀은 검찰의 부실 수사 내지 봐주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우 전 수석은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2차 레이저를 날린다.

특검이 종료되면서 사건은 검찰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제대로 규명될지는 미지수다. 따지고 보면 우 전 수석 혐의 중 전횡(직권남용 등)과 관련해서는 검찰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시절 전횡은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움직여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또 홍만표 수사 때 봤듯 전관의 수임비리는 검찰로서도 부담스럽다. 현직 검사 연루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금반언의 원칙’(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 원칙)도 언급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나 특별수사팀이 문제없다고 결론 내린 부분을 말 뒤집기를 해가면서까지 재수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검찰의 주요 보직에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 전 수석과 얽힌 인연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도 한몫한다.

지난해 불거진 우 전 수석 비리 의혹은 최순실 사태의 시발점이 됐지만 지금도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검찰은 민정수석실과 ‘짝짜꿍’ 안 했나. 검찰 출신 다른 전관들은 떳떳할까. 누가 누구를 수사할 수 있을까. ‘국민 밉상’으로 떠올랐다지만 우병우는 검찰(또는 검찰 출신) 그 자체이자 자화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야권의 주요 대선주자들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이 독점한 기소권을 분리하는 방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 방안을 일제히 거론한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경찰과 검찰로) 분리해 상호 견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검찰 자신을 포함한 ‘권력’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안되는 만큼 공수처 등 전담 기관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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