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택희의 맛따라기] 동해·설악의 맛 한 그릇에 .. 속초 아바이마을 '옥이네밥상' 생선찜

2017. 3. 3.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에 자리잡은 음식점 ‘옥이네밥상’의 대표음식은 생선찜(4만/4만5000원)이다. 항아리 뚜껑에 담아서 내온다.
여름철 생선찜에는 생 고추도 많이 들어간다(2015년 6월 7일 사진).
속초 ‘아바이마을’은 함경도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긴 이름이다. 행정구역 명칭은 청호동. 석호(潟湖; 모래톱이 발달해 해안의 만이 바다로부터 떨어져서 생긴 호수)인 청초호 옆에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함경도 출신 주민이 많을 때는 97%에 이르던 마을이다. 남한에서 낯선 ‘아바이’ 소리가 무시로 들렸다. 사람들 귀에 박혀 그게 마을 이름이 됐다.

‘아바이마을의 딸’로 태어난 김옥이(59)씨는 지금껏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청호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음식점 ‘옥이네밥상(강원도 속초시 미리내길 40/전화 033-637-3166)’을 운영한다. 생선찜(4만/4만5000원), 생선구이(1만6000원/2인 이상 가능), 성게미역국(1만원), 홍게간장(1만원)이 맛있다. 더 맛있기는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역경을 겪으면서도 나누며 사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다. 1996년 3월부터 인근에서 ‘청초낙원정식’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2012년 말 집을 새로 지어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상호도 바꿨다. 이사할 무렵 지역신문에 그의 말이 소개됐다.

“청호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실향민은 아니지만 고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어요. 동네 어른들이 힘들게 살면서도 많은 인정을 베풀어 주셨죠. … IMF 때 빈털터리가 돼 밥도 굶어본 적 있어요. 설악동 수학여행단 밥해주는 곳에서 일도 해봤고요. 이젠, 이곳에 정착해 식당을 하면서 그런대로 살고 있어요.”(강원일보 2012년 11월 27일자 13면 ‘新 강원기행-아바이마을 사람들’)

IMF 외환위기 때(1997년 말~1998년) 빈털터리가 됐으니 음식점 시작한 지 2년만에 호된 시련을 겪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2014년 6월 9일 속초경찰서로부터 노인정에 10년간 무료급식을 한 공로로 봉사활동 감사장을 받았다. 밥을 굶을 정도로 빈털터리가 됐지만 5~6년만에 재기해 ‘밥상 나누기 활동’을 해온 것이다. 청호동 노인정 두 곳 어르신 150~200명에게 금요일마다 점심을 대접했다. 사연을 들은 안철수 의원은 2012년 10월 18일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김씨가 운영하는 ‘청초낙원정식’에서 지지자들과 번개미팅을 했다. 당시 안 후보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한 시민이 추천했다고 한다.
‘옥이네밥상’ 마당에 가득한 화초들은 겨울을 나느라 실내로 들어가거나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다.
산야초와 꽃을 좋아하는 주인이 월동을 위해 화초를 현관에 들여놓았다.
여름이면 꽃들 마당을 가득 채운다(2015년 6월 7일 사진).
‘옥이네밥상’에 2015년 6월 초에 처음 갔다. 속초 주민이면서 산부인과병원·산후조리원을 각각 운영하는 부부, 교수 겸 목수와 정원디자이너 부부가 추천하고 안내했다. 깔끔한 2층 건물 입구의 작은 마당은 훌륭한 화원이었다. 여러 가지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꽃밭을 가꾸는 이가 누구일까 궁금해지는 풍경이었다.
생선찜과 골뱅이물회(1만5000원)와 젓갈백반(1만원/2인 이상 가능)을 먹었다. ‘화장’하지 않은 순박하고 웅숭깊은 맛의 음식이었다. 항아리 뚜껑에 담아 내온 생선찜은 들어간 생선과 무·감자·풋고추 맛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 깔끔했다. 간이나 단맛이 과하지 않고 잡맛은 없었다. 생선살은 생물인 듯 부드럽고 감칠맛 있었다. 무·감자에 생선 맛과 간도 잘 뱄다. 하얀 사기 면기(麵器)에 담긴 물회는 화려한 해물(해삼·멍게·골뱅이·낙지·가자미 등)과 상큼한 산미가 어우러져 입이 즐거웠다. 더위를 한꺼번에 잊게 하는 맛이었다. 상쾌한 신맛은 이번에 물어보니 해마다 만들어 두고 쓰는 매실청과 산야초로 만든 식초가 보태져 내는 맛이었다.
생선찜을 조리하기 위해 앉힌 모습.
아바이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옥이네밥상’의 주인 김옥이씨가 생선찜을 조리하고 있다. 과정을 스스럼 없이 보여줬다. 앞에 보이는 건 가오리찜을 앉혀놓은 것이다.
해삼·멍게·골뱅이·낙지·가자미 등 맛있는 해산물이 많이 들어간 골뱅이물회(1만5000원). 매실청과 산야초 식초가 빚어내는 산미가 상큼하다.
젓갈과 식해는 음식점과 별도로 하는 사업품목이다. 젓갈은 함경도가 고향인 어머니에게 배워 저염으로 담그고 비법양념으로 무쳐 짜지 않다. 종류는 명란·창난·오징어·낙지·꼴뚜기·전복·성게·갈치·꽁치·갈치속젓 등 10여 가지. 아바이마을의 딸이니 식해는 필수다. 2012년 8월 방송된 KBS 다큐 ‘슈퍼피쉬’에 출연해 명태·가자미 식해 담그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는 곰삭은 맛을 강조한다.

그 맛을 그리워하다가 지난달 19일 아침 일찍 갑자기 마음이 동해 속초엘 갔다. 고속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은 지난번과 계절만 다를 뿐 여전했다. 오전 10시와 오후 4시, 두 끼를 거기서 먹고 2시간에 걸쳐 김옥이씨 인생과 음식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청호동 갯배마을에서 함경남도 단천 출신 어머니와 속초 외옹치가 고향인 아버지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휴전 5년 후였다. 아바이마을에서 유명한 ‘단천식당’ 뒷집이 출생지다. 어머니는 민며느리로 아버지 집에 들어왔다. 장래 며느리로 삼으려고 관례(성인식)를 치르기 전에 데려다 함께 살면서 키우는 소녀를 민며느리라고 한다. 피란 내려와 의지할 곳이 없으니 혼례를 치를 나이가 아닌데 우선 속초 원주민 집에 몸을 의탁한 듯하다. 이북에서 내려온 이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대체로 잘했다. 어머니는 특히 음식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슬하에서 자랐으니 어깨너머로 배운 게 있었다. 그는 “그것도 재주라고, 살다 보니 먹고 살기 어려워 음식업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어부의 아내로 산 어머니에게 배운 음식은 오징어순대, 명태 순대·김치·식해, 가자미식해, 곰 삭힌 각종 젓갈들이었다. 식해는 조밥이 들어가는 함경도식이었다. 그는 속초에서 새롭게 자리잡은 함경도식 음식에 대해 “전라도 음식과 비슷한 게 많다. 많이 돌아다니면서 먹어보니 여수와 목포 사이 맛이다. 특히 젓갈을 삭혀서 활용하는 게 많은데, 그 맛이 비슷하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생선구이(1만6000원/2인 이상 가능).
물곰탕(1만5000원).
성게미역국(1만원).
성게비빔밥(1만5000원).
그는 바닷가에서 자라 해산물도 잘 알지만 산나물과 약초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사연이 있다. “어려운 집에서 워낙 강하게 자랐다. 초등학생 때 등교 전에 방파제에 쌓은 삼발이(실제는 발이 네 개 달린 테트라포드) 사이 사이를 뒤지며 전복·해삼·멍게를 잡아 장에 내다 팔고 학교에 갔다. 물질을 해서 잡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부모들이 위험하다고 근처에 가지도 말라고 할 테지만 1960년대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생활력이 강했다. 없는 집 6남매 중 셋째로, 제 밥벌이는 제가 해야 살 수 있었다. 학교 갔다 오면 소쿠리 들고 나물 캐러 나갔다. 논산리~떡밭재~중도문리~하도문리~대포동 일대(청호동에서 설악산 방향 구릉지대)를 헤매며 나물이나 약초를 캤다. 먹을 게 없으니 끼니로 쑥버무리 해 먹으려고 쑥을 많이 뜯었다. 하도 먹어서 지금도 그걸 안 먹는다.”
전복해물뚝배기(1만8000원).
김옥이씨가 함경남도 단천 출신으로 어부의 아내였던 어머니에게서 배운 명태김치는 맛이 시원하다. 푸짐하게 들어간 명태 토막과 고추씨가 눈에 띈다.
그는 요즘도 일주일에 3~4회 손님이 뜸한 오후 2~5시 산에 간다. 어려서 학교 다녀와 나물 캐러 다니던 시간과 비슷하다. 숨겨둔 농원을 가꾸러 가는 것이다. 장뇌(산양삼) 키우는 임야 3300㎡(1000)평과 채소밭 2000㎡(600평)이 설악산 동쪽 줄기인 관모봉 자락에 있다. 밭에서는 유기농으로 쌈 채소를 키워 식당에서 쓴다. 식당 벽에는 3면으로 약초 청(淸; syrup)·식초·담금술 병이 100여 개 진열돼 있다. 청은 우슬·아까시꽃·민들레·쑥·오미자·산복숭아·오가피 등 산에 갈 때마다 채취해온 것들로 만든 자연의 선물이다. 몸에 좋다는 산야초 100가지를 넣고 담근 청도 있다. 모두 우리고 묵혀 음식 양념으로 쓰고 김치 담글 때 섞기도 한다. 청(淸)은 ‘맑다’는 한자이지만 ‘꿀’이라는 뜻도 있다. 감주를 만들어 거르고 조려 꿀처럼 만든 것을 조청(造淸; 만든 꿀)이라 하는 이유다. 담금술도 토복령(청미래덩굴뿌리)·하수오·삼지구엽·송담(소나무담쟁이덩굴)·복령·운지버섯·노루궁뎅이버섯 등 30가지쯤 된다.
‘옥이네밥상’의 기본 반찬. 장아찌 3종(매실·깻잎·더덕).
‘옥이네밥상’의 기본 반찬. 나물 2종(시금치·묵나물).
‘옥이네밥상’의 기본 반찬. 연근·사과·오이 흑임자무침.
‘옥이네밥상’의 기본 반찬. 볶음과 절임(도라지-대추볶음·양배추초절임·잔멸치-견과류볶음).
‘옥이네밥상’의 기본 반찬. 젓갈 3종(명란·낙지비빔·오징어).
이런 것들로 맛을 내기 때문에 음식에 화학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핵심 양념은 ‘약간장’이다. 간장(기성품)에 표고버섯·다시마·무·양파와 여러 가지 약초 청을 넣고 다려서 만든다. 음식점마다 나름대로 만든 맛 내기 간장을 대개 ‘맛간장’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약간장’이라고 했다. 간장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소중히 여기는지 엿보이는 이름이다. 약간장에 음식에 따라 이런 저런 청과 식초를 섞어서 맛을 끌어낸다.

약간장으로 맛을 내는 대표음식은 생선찜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다. 생선·무·감자(계절 따라 풋고추도)에 약간장·물엿·고춧가루·마늘·파를 넣고 조린 음식이다. 조리가 끝나면 통 참깨를 뿌리는 것 말고 더 들어가는 양념은 없다. 생선은 코다리(명태)·가자미·볼락·가오리가 주로 들어가지만 계절 따라 조금씩 바뀐다. 약간장으로 만드는 음식으로 ‘홍게간장’도 있다. 제법 큰 홍게 1마리를 먹기 좋게 잘라 주고 8~9가지 반찬과 밥까지 차려 1만원을 받으니 뭔가 횡재한 듯한 밥상이다. 홍게간장은 약간장에 물과 산복숭아 청을 넣고 끓인 다음 식혀 싱싱한 홍게에 부어 만든다. 간장 붓기는 반복하지 않고 한번만 한다. 1주일 안에 먹어야 한다. 홍게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동네사람 배가 조업하고 돌아오면 바로 사다가 쓰기 때문에 값도 싸고 싱싱하다. 마침 음식점과 가까운 청초호 동쪽 광장에서 ‘붉은대게(홍게)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값을 살펴보니 이 집 홍게간장 내용이 실한 걸 알 수 있었다.

전복해물뚝배기(1만8000원)를 시키면 전복·홍게·가리비·개조개(대합)·명주조개·생선 이리(정소) 등을 뚝배기가 넘치게 고봉으로 쌓아 내온다. 전복은 해녀들이 따온 자연산이다. 청호동에는 해녀 7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작업한 걸 쓴다. 날씨가 여러 날 안 좋아 해녀들이 작업을 못해 물량이 없을 때만 완도산 양식 전복을 쓴다.

메뉴에는 없지만 물곰회는 김옥이씨가 자랑하는 숨은 별미다. 10kg 정도의 큰 물곰이 있어야 하므로 10명 내외가 어울려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 물곰은 살을 떠내 식초·설탕·소금에 1시간 절인다. 그러면 살이 고들고들해진다.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채소 넣고 초고추장무침을 하거나 물회로 만들면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서덜(생선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로는 탕을 끓여 함께 준다. 취재를 한 2월 19일 큰 물곰 1마리 낙찰가격은 19만원이었다. 그걸로 요리로 해주면 모두 합쳐 3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여름에는 물곰이 맛없는 때여서 하지 않는다.

메뉴에 없는 또 한 가지, 청어회무침이다. 일본 사람들이 이걸 먹으러 많이 온다고 한다. 봄에 맛이 좋다. 청어 살을 포 떠서 냉장실에서 살얼음이 살짝 낄 정도로 숙성해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쑥갓과 미역을 곁들인다. 쑥갓은 청어의 비린내와 느끼함을 잡아주고 미역은 감칠맛을 더해준다. 초고추장 무침으로 해 먹어도 맛있다. 기름기가 많은 청어가 쑥갓·미역·초고추장과 어울리면 ‘삼합’이라 해도 그럴듯하겠다. 예약 메뉴로 대구회도 있다. 찌개까지 끓여주고 1인 5만원이다. 살을 떠내 냉장실에서 1시간(살짝 얼듯하게) 숙성해서 회로 먹는다.

주말이면 서울 단골들이 회 예약을 하고 많이 온다. 메뉴에는 없지만 1인당 5만원을 내면 회(도미와 자연산 잡어)와 생선구이에 탕까지 끓여 준다. 맛있는 기본 찬에 오징어순대, 젓갈 3종, 장아찌 3종, 농사지은 쌈 채소까지 올라온다.

그의 고향 청호동은 참 외진 동네였다. 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을 정도였다. 10년 전쯤 대기업 마트가 들어오고 나서 조금씩 개발이 되고 있다. 특히 갯배마을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사는 아주 전형적인 빈촌이었다. 연탄이나 장작 아궁이에 밥을 지어 먹고 살던 시절 부모님은 음식을 만든 냄비가 새까맣게 지저분하면 먹지 않았다. 이북에서 온 분들이 원체 깔끔했다. 작은 집들이 붙어있으니 서로 다 들여다보였다. 조금만 지저분해도 개집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더 깨끗하게, 부뚜막에 윤이 나게 하고 살았다. 그 영향으로 음식점을 하는 지금도 주방이 깨끗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안해서 견디지 못한다. 음식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렇게 형성돼 아주 완고하다.
5가지 젓갈이 오른 젓갈백반(1만원/2인 이상 가능) 상차림(2015년 6월 7일 사진).
김옥이씨가 어머니에게 배운 솜씨로 담가 판매하는 젓갈과 식해 종류는 모두 16가지다. ‘식혜’라고 씌어 있으나 ‘식해(食?)’가 바른 표기다.
“내가 음식에 대해 별나다. 깔끔하지 않으면 안 먹는다. 음식을 하다가도 내 생각에 이거 아니다 싶으면 즉시 버린다. 음식을 응용해서 만들다가 기대한 맛이 안 나와도 버린다. 나물은 아침에 준비해 저녁까지 쓰고 남으면 다 버린다. 어려서 부모님이 그랬듯이 깨끗해야 한다. 여태 살아도 시장에서 사는 음식을 못 먹는다. 뭐가 들어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믿을 수 없어서 사 먹는 게 용서가 안 된다. 음식을 사 먹는 건 게으른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몸이 바쁘다. 김치 사다 쓰는 식당은 용서가 안 된다. 게으른 거다. 차라리 식당을 하지 말든지.” 젓갈이 맛있다고 백화점·홈쇼핑·농협에서 손잡고 사업을 해보자고 제의가 여러 번 왔지만 거절했다. 음식은 내돌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 손을 떠나서 돌아다니면 관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는 물었다. “그래서 안 한다. 그런 건 절대 안 한다. 음식은 적당한 양을 만들어야 맛있지 한번에 많이 만들면 맛이 없다. 몸이 고생되더라도 조금만 벌고 살려고 한다.”
담금술 병들이 진열된 고가구 앞에서 살아온 날들과 음식에 대해 얘기하는 여주인 김옥이씨. 지낸 세월과 헤쳐온 역경에 비해 얼굴은 젊다. 어려서 늘 먹은 막회 덕분이라고 했다.
식당 내부 벽을 채우고 있는 약초와 산야초로 담근 청·식초·술 병들. 김옥이씨가 설악산 관모봉 자락에 있는 산 속의 밭에 오가며 채취해다 담근 것들로 100개가 넘는다.
식당 내부 벽을 채우고 있는 약초와 산야초로 담근 청·식초·술 병들. 김옥이씨가 설악산 관모봉 자락에 있는 산 속의 밭에 오가며 채취해다 담근 것들로 100개가 넘는다.
그는 4년 전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그 바람에 힘에 부쳐 ‘밥상 나누기 활동’은 노인정 한 곳으로 줄였다. 자신이 태어난 갯배마을 노인정에만 매주 금요일 점심 대접을 한다. 수술 예후는 다른 사람보다 좋다. 그는 음식으로 병을 고쳤다고 믿는다. 산나물과 생 채소 등 주변 음식 덕분에 건강을 빨리 회복했다고 생각한다. “수술하기 전 쉰네 살까지는 겨울에도 반바지에 반팔 옷 입고 살았다. 어려서 아버지가 뱃일 나갈 때 드시던 막회를 늘 옆에서 얻어 먹었다. 그게 주식이다시피 했다. 그 덕인 것 같다. 수술하기 전 13~14년 동안은 하루 3~4시간밖에 자지 않고 일했다.”
그의 나눔은 어머니로부터의 내림이다. 옛날 참 어렵던 시절 부모님은 어려운 가운데도 ‘물이라도 나눠 먹으며 살면 좋지 않으냐’며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살았다. 어머니에게 나눔을 배운 걸 그는 오늘도 감사한다. 그런 심성 덕분인지 그는 5형제 중 맏이의 아내가 됐다. 고난과 역경도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만 오는 것일까. 맏며느리 자리도 쉽지가 않은데 없는 집 맏며느리 노릇은 훨씬 힘들었다. 처녀 때 하던 옷 가게를 1996년 음식점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했다. 시집 살림을 이끌어왔다 해도 빈말이 아니다. 이제는 “네가 열심히 살아 여기까지 왔다”고 칭찬을 듣는다.
입구 벽을 장식하고 있는 유명인 방문객 사진과 서명, 언론에 소개된 지면 스크랩들. 안철수 의원과 뽀빠이 이상용이 보인다. 안 의원은 2012년 10월 대선운동 중 김옥이씨 식당(청초낙원정식)에서 지지자 번개모임을 했다.
노력인지 운명인지 옷 가게를 할 때 서울로 물건 떼러 가는 길에 맛있다는 음식점 한 곳 이상은 꼭 들러서 오는 것이 일정이었다. 퇴촌·양수리 일대 한강변 음식점들을 많이 가봤다. 시간을 내 포항·울산·통영·여수·목포 등 동·남해안에도 돌아다녔다. 음식들 살펴보는 것이 재미였다. 그 경험이 음식점을 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젓갈과 반건조생선 포장·택배 판매도 한다. 모두가 직접 담그거나 말린 것이다. 생선은 코다리·가자미·볼락·우럭·임연수어·고등어 등이다. 고등어(노르웨이산)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산이다. 음식점 이웃에 있는 어판장에서 사거나 동네사람들 작은 배가 들어오는 오전 8~9시에 직접 구입해서 말린다. 젓갈에 대해 얘기하던 그가 먹어본 적 없는 꽁치젓갈 자랑을 했다. “꽁치·멸치젓갈은 3년은 묵혀야 먹는다. 그래야 비린내가 안 난다. 비린 생선은 푹 곰삭아야 제 맛이 난다. 꽁치젓갈은 3년 돼도 살이 그대로다. 살만 발라내서 청양고추 다져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넣어 버무리면 맛이 그만이다.” 이 맛이 궁금해서 조만간 속초에 다시 가야 할 듯하다.

요즘 ‘옥이네밥상’은 대물림 예비단계가 진행 중이다. 식당 일손이 모자라 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돕고 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식도 잘한다고 한다. 아직은 아버지와 홀 일을 맡고 있지만 주방을 떠맡을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음식점 벽에는 딸이 고등학생 때 그렸다는 그림 여러 점이 이미 주인인 듯 걸려있다.

25평 방에 4인석 14개가 모두 좌식이다. 명절만 쉬고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