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여성친화적 윤균상과 이하늬의 욕망, 그 연결고리

황진미 입력 2017. 3. 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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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젠더의식을 품은 참신한 사극 ‘역적’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역적>은 연산 시대의 실존인물 홍길동을 모티브로 삼아, 신분질서에 저항하는 민중영웅의 삶을 그린 사극이다. 드라마는 촘촘한 극본과 매끄러운 연출로 흡인력을 자아낸다. 특히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인데, 김상중과 이하늬가 완전히 다시 보이는 작품이다. <역적>은 기본적으로 남성영웅의 서사이지만, 장녹수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이 대단히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대사 하나하나에 사극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강하게 녹아있다.

◆ 현대극보다 앞선 사극의 젠더인식

홍길동의 아버지인 노비 아모개(김상중)는 아내와의 정이 각별했다. 다른 노비들과 달리 아내를 막 대하지 않아 눈총을 사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거노비가 되어 독립생활을 하는 첫날 아모개는 아내의 밥을 밥상에 올려놓고 먹도록 한다. 양반과 노비의 차별만큼이나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모순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면천을 위해 남몰래 모은 재산으로 인해, 아내를 잃는다. 임신한 아내가 성추행을 당해 난산으로 죽게 되자, 그는 양반을 죽인다.

이후 그의 행각은 단순히 분풀이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고통스러운 재판의 과정을 통해 아내의 억울함을 밝힌다. 드라마는 무조건 양반에게 유리하게 작동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양반-남성의 뻔뻔함과 위선을 폭로한다. 자신을 유혹하는 노비-여성을 꾸짖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양반의 항변은 젠더권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모개가 아내의 죽음과 맞바꾼 막내딸 ‘어린이’는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다. 아모개는 충원군에게 쫓기던 여성을 살린 일로 큰 보복을 당한다. 충원군이 여성에게 집착하며, ‘어린이’에게도 집착의 마수를 뻗히는데 이는 그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즉 선악의 구도가 여성에 대한 태도로 나눠지는 셈이다.

홍길동(윤균상)은 여성친화적인 인물이다. 그가 여성들을 상대로 한 방물장수를 하며 전국을 떠돌며 여성들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여성들과 대화가 잘되는 인물이었음을 뜻한다. 홍길동은 자신을 좋아하는 가령(채수빈)이 자청하여 가사노동을 떠맡자, 여자라고 해서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가령은 이러한 홍길동의 말을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장면은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젠더인식을 낯설게 되비춘다.

◆ 악녀의 ‘시리도록 퍼런’ 내면을 비추다

드라마의 진보적인 젠더인식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장녹수(이하늬)에 대한 묘사이다. 흔히 장녹수는 가장 간교한 악녀로 묘사되곤 한다. 폭군 연산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한 요부로 인식되어 장녹수에 대한 반감이 크다. 실제 역사에서도 중종반정 후 폐위된 연산은 귀양을 가서 몇 달 후 사망하지만, 장녹수는 반정직후 저자거리에서 백성들의 돌팔매에 맞아죽었다. 백성들의 증오가 폭정의 당사자인 연산보다 장녹수에게 더 강렬하게 투사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 자체가 ‘여혐’의 혐의를 띄지만, ‘왕의 사랑을 받는 후궁’이라는 자리가 지독한 남성 중심 권력의 산물이기에 여기에 편승한 인물을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지지하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호감보다는 반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드라마 <역적>은 장녹수의 욕망을 남성 중심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던 여성의 입장에서 읽어냄으로써 장녹수를 훌륭한 여성 주인공으로 세우는데 성공한다. 시청자들은 장녹수의 내면에 공감함으로써, 그의 한과 욕망을 이해하게 된다.

장녹수는 연산보다 연상이었고 두 번이나 혼인한 전력이 있으며, 궐밖에 자식이 있었던 관기출신의 여성이었다. 미모는 평범한 편이었으나 노래와 춤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연산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듯 연산을 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적>은 대사를 통해 이러한 특징들을 살려내면서, 장녹수의 ‘시리도록 퍼런’ 내면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가 품었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홍길동이 품었던 분노와 같은 결을 지니고 있음을 설득해낸다.

◆ 장녹수의 권력욕을 설명하는 두 개의 장면

인상적인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장녹수는 자신을 찾아온 어린 아들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고 내친다. 너무 매정하지 않느냐는 말들 속에서, 장녹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려준다. 관기였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어린 나이에 현감의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는 그런 짓을 하게끔 한 양반-남성을 용서할 수 없다고 치를 떤다. 양반-남성에 대한 분노로 권력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에 몰입하느라 어미의 마음조차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고 서럽게 운다. 드라마는 그의 눈물과 대비되는 짧은 장면을 하나 삽입한다. 장녹수가 건네 준 돈을 얼른 자신의 주머니에 챙기는 아이의 아버지이다. 돈을 줘서 내치는 어머니와, 그 아이를 이용해 돈을 뜯는 아버지 중 누가 더 매정한 걸까.

홍길동과의 짧은 로맨스로 권력에 대한 갈망이 옅어질 무렵, 장녹수의 후배기생이 젠더폭력을 당한다. 처참한 폭력 앞에서 동료기생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자, 장녹수는 소리친다.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어디 있냐. 엄마가 우리를 돈 몇 푼에 팔았고, 아버지는 폭력을 휘둘러 왔으며, 오빠의 장가밑천을 위해 팔려온 우리가...” 이것은 굉장한 울림이 있는 말이다.

하층민 여성인 기생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는 계급모순과 젠더모순이 중첩되어 있다. 이들이 기생으로 팔린 것은 가난해서이기도 하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지배하는 가정 안에서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안부’들의 고통에는 식민, 계급, 성차의 모순이 중첩되어 있다. 식민의 문제만으로, 계급의 문제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당시 조선에 지배적이었던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기생이 된 후에도 사회적으로 천시되고, 어이없는 폭력에 노출되는 것도 젠더 질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장녹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왕의 여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드라마의 이러한 흐름은 장녹수의 권력욕이 어떠한 문제의식에서 발현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장녹수가 남성중심의 사회에 품었던 원한은 기실 아모개나 홍길동이 계급사회에 대해 품었던 문제의식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이중으로 고통 받는 주체가 느끼는 복합적인 문제의식으로 봐야 한다. 홍길동은 “양반들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라, 그들 눈에 우리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즉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임을 짚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그들 말에 저항하지 않는 것은 짐승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하며 “우리, 인간으로 살자”며 독려한다. 아모개는 주인을 죽이면서 아예 “그때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인간 같지 않은 것들 싹 죽여불고 새로 살 생각을 못했을까”라고 말한다. 누가 인간인가? 신분질서는 노비에게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진짜로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은 양반들이다.

이러한 논리가 젠더질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그러나 정말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은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이다. 충원군에게 쫓기던 여인은 충원군에게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런 여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충원군이다. 왕의 권력을 활용하려는 장녹수는 연산이 지닌 내면적 취약함을 파고들어 그를 지배한다. 연산은 자신이 욕망하는 장녹수가 홍길동과 정인이었다는 사실에 굉장한 질투를 느낀다.

이처럼 계급의 문제와 젠더의 문제를 대등하게 취급하는 드라마에서, 홍길동이 여성친화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내적인 통일성을 지닌다. 흔히 사극에서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과거를 그린다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대상화된 시각이나 혐오의 표현들이 무람없이 사용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적>의 젠더의식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드라마 속에 녹아든 성 인식과 태도를 바꿈으로써 대단히 참신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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