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 그 자리에.. 전국서 몰려든 태극기, 빗속에 켜진 촛불

김명진 기자 2017. 3. 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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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집회]

["태극기 들고 서울로!"… 전국 12개 도시서 버스행렬]

- 가족 단위 참가도

"탄핵반대 의견도 민주주의라는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최순실 일당의 잘못을 대통령한테 덮어씌운 누명탄핵"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린 1일 오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서울톨게이트 부근에 전세버스 100여 대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산·울산 등 전국 12개 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가 몰리면서 주요 고속도로 서울 진입 구간과 도심 일대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겪었다.

서울에서도 집회 장소인 광화문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와 지하철에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들어찼다. 버스 안에서 승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 주고 '누명 탄핵 원천 무효'를 외치는 시민도 있었다.

본집회에 앞서 오전 11시 기독교 단체들 주최로 열린 '3·1절 구국기도회'에 온 교인 중 일부는 태극기 집회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문에 이날 태극기 집회에는 평소보다 10~20대 참가자들이 늘었다. 중학생들이 "다른 건 몰라도 종북(從北)은 싫다"며 태극기를 흔들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가족 단위로 나온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온 김수희(43)씨는 "아이들에게 탄핵에 반대하는 의견도 민주주의의 일부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며 "돗자리 펴고 같이 점심도 나눠 먹고, 집회를 즐긴다는 기분으로 왔다"고 말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본집회에서 주최 측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일제보다 참혹한 불의로 무장한 세력이 단돈 1원도 받지 않은 대통령을 탄핵해 우리가 태극기를 들게 했다"고 주장했다. 김평우·서석구 변호사 등 탄핵심판 대통령 측 대리인들도 집회에 나와 "조선시대 정적을 잡을 때 쓰던 연좌제를 적용해 최순실 일당의 잘못을 박 대통령 잘못으로 덮어씌웠다"고 발언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 최종 변론일에 제출한 의견서를 주최 측이 낭독하는 영상을 상영하자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행진이 시작된 오후 3시쯤 집회가 절정에 달했다. 남쪽으로 숭례문 앞까지, 동쪽으로 종로2가 근처까지 들어찬 인파가 청와대 방면 등으로 행진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헌재 앞에서 텐트를 치고 단식 농성 중인 권영해 전 국방장관을 찾아가 "힘내라"고 격려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집회 장소인 광화문 광장 양쪽 인도를 통해 청와대 앞 신교동 사거리까지 행진했다. 태극기 집회 측이 청와대 쪽 행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 집회 참가자는 여전히 극단적인 언행을 보였다. 이날 오전 이모(51)씨가 손도끼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자해해 '대한민국 만세' '나는 멈추지 않는다'는 혈서(血書)를 썼다. 이씨는 피를 흘린 채 집회 현장에 남아있다가 경찰에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씨는 "김기춘을 구속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손가락을 잘랐다"고 말했다. 한 70대 남성은 가스총을 들고 다니며 "진짜 총이고 실탄도 있다"고 했다가 경찰에게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집회 분위기는 대체로 평화적이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폭력 행위 등으로 입건된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LED촛불 들고… "탄핵 민심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

일부는 노란 리본 태극기

세월호 유족 3000개 제작 배포 "우리가 든 태극기가 진짜다"

'박근혜 구속' 적힌 빨간 종이로 참가자들, 레드카드 퍼포먼스

제18차 촛불 집회 본집회가 시작된 1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LED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였다. 오후부터 내린 가랑비 때문에 우의를 입은 참가자들은 '박근혜 탄핵 만세' '황교안 퇴진 만세' '탄핵 인용 만세'를 외쳤다. 대학생 김연희(여·24)씨는 "비가 아무리 내려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바라는 민심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날씨에 상관없이 촛불 집회에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측인 '박근혜 대통령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30만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98주년 3·1절인 이날 집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9)할머니가 연단에 올랐다. 이 할머니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며 "박근혜를 탄핵하고, 튼튼한 대한민국을 지키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가 발언을 마치고 아리랑을 부르자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따라 불렀다.

참가자들은 이날 '박근혜 구속'이라고 적힌 빨간 종이를 머리 위로 들고 촛불을 종이 뒤에 가까이 대 붉게 비추는 '레드카드 퍼포먼스'를 벌였다. 최영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은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된다면 헌재가 촛불 민심을 저버린 것을 규탄하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강력한 항의 행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3·1절을 맞아 그동안 촛불 집회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태극기도 많이 등장했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와 차별화하기 위해 태극기 깃대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집회 현장에서 노란 리본이 달린 소형 태극기 3000개를 제작해 나눠줬다. 촛불 집회 참가자 김동철(57)씨는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신성한 국기인데, 저쪽(태극기 집회) 사람들이 태극기의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7시쯤 청와대 남쪽 100m 지점인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까지 행진한 후 오후 7시 50분쯤 집회를 마쳤다. 변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하면 반드시 비가 오는데, 이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드리기 때문"이라며 "끝까지 싸워야 한다. 반드시 불평등 없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진행동은 탄핵 심판 선고일을 앞두고 오는 4일과 11일에도 촛불 집회를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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