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에서 소외된 고령층과 장애인

2017. 2. 2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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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인터넷·모바일뱅킹 확산… 영업점 줄고 창구거래 수수료 부과 움직임

최근 KB국민은행이 은행 창구 거래를 하면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창구 거래 수수료란 인터넷·모바일뱅킹 등으로 할 수 있는 단순 입출금 거래를 은행 영업점을 통해서 할 경우 일정 금액을 받겠다는 의미다. 평소 은행 창구를 자주 이용하는 자영업자 김모씨(70)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가까운 동네 은행 지점이 하나 없어져 10분 정도 더 걸어서 다니고 있었다. 김씨는 “창구 수수료까지 붙으면 나이든 사람은 은행에 오지 말라는 거냐”고 항변했다. 국민은행은 당초 올해 말 목표로 창구 거래 수수료 도입 시기, 대상, 영향 등을 검토하다가 여론에 밀려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은행 영업점 8년 사이 600여개 사라져

금융은 몇 해 전부터 ‘모바일 뱅킹’, ‘온라인 펀드’, ‘온라인 보험’ 등 핀테크(금융과 기술 융합) 전성시대다. 올해부터는 지문·홍채정보 등 생체정보로 본인을 인증하는 시대까지 맞이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과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애인은 핀테크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소외현상은 영업점이 줄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SC·씨티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의 영업점(출장소 포함)은 2008년 4866개에서 2016년(9월 말 기준) 4260개로 606곳이 사라졌다. 2016년 말 통계까지 더하면 영업점과 출장소는 더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 영업점 감소는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활발해지면서 은행들이 지점을 통·폐합한 결과 빚어진 현상이다. 영업점이 줄며 모바일 뱅킹 등을 하지 못하는 고령층 또는 저학력층의 금융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은행 지점을 찾아 헤매는 일도 벌어졌다.

은행들이 지점을 통·폐합하더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2교대로 근무해가며 영업시간을 저녁 7시까지 확대하는 곳도 있다. 주로 직장인들이 근무하는 지역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강남역종합금융센터, 목동서로종합금융센터, 양재역종합금융센터 등 3곳에서 올해 1월부터 오후 7시까지 영업을 한다. 은행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온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일반 주거지역 등에는 지점을 줄이고 동대문이나 강남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지점에는 영업시간을 늘려서라도 운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돈 안 되는 지점은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통한 거래를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9년 12월 처음 시작된 스마트폰에 기반한 모바일 뱅킹은 점점 몸집을 불려나가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하루 평균 전자금융공동망(인터넷·모바일·펌뱅킹)을 통한 결제규모는 2006년 13조5310억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기준 45조6000억원으로 3배 이상 커졌다. 이는 타행 거래만 한정해 계산했기 때문에 같은 은행끼리의 이체규모까지 포함하면 인터넷을 통한 거래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모바일 뱅킹의 혜택은 확장 속도만큼 점점 확대되고 있다. 모바일에서 은행 적금상품에 가입하면 금리혜택을 주는가 하면, 은행의 메신저 또는 앱을 설치하면 우대금리를 주기도 한다. 대출상품도 모바일에서 실행하면 이자혜택이 주어진다. 0.1%가량 금리를 싸게 대출받을 수 있고, 중도상환금액도 수수료 없이 갚을 수 있는 액수가 일반 대출보다 크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나 저학력층, 생체인증 받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혜택에서 점점 멀어진다. 앞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 이들의 소외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전문은행은 10%대 중금리 대출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청각 장애인은 ARS 인증부터 막혀

반면, 저학력·고령층의 모바일 뱅킹 활용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한국은행의 ‘2016년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를 보면, 6개월 이내에 모바일 뱅킹을 이용한 비율이 중졸 이하 학력에서 모바일 뱅킹 이용률은 4.6%로, 대졸 이상(56.5%), 대학원 이상(61.2%) 등 고학력자와 큰 차이를 나타냈다. 60대 이상에서 모바일 뱅킹 이용 비율은 2015년 4.7%에서 지난해 13.7%로 증가했지만 여전히 10%대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비율이 낮았다. 30대의 모바일 뱅킹 이용 비율은 62.1%였다.

은행뿐 아니라 보험상품, 펀드상품 등에서도 이들은 혜택에서 비켜나 있다. 보험상품 중에 가장 많이 인터넷 가입이 활성화된 상품은 자동차 보험이다. 자동차 보험료는 온라인으로 가입할 경우 1년에 오프라인 보험보다 평균 17%가량 절약된다. 요새는 ‘보험 다모아’라는 사이트를 통해 각 보험사 상품을 일일이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험개발원이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온라인 자동차 보험 가입률은 30대 12.4%, 40대 14.1%, 50대 10.2%지만 60대 이상은 5.7%였다.

인터넷 보험은 보통 설계사를 통해 가입하는 일반 보험보다 수수료 성격의 사업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최초의 인터넷 전용 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의 가입자를 보면 60대 이상이 0.4%, 50대가 7.4%에 불과하다. 보통 생명보험 상품의 주가입 연령층이 40~50대인 것과 비교하면 인터넷 보험의 경우 30대(50.7%), 40대(27.5%)의 가입률이 더 높다. 공인인증서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터넷 보험에 고령층이 접근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장애인은 핀테크 흐름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층은 이용방법을 모른다지만 장애인은 접근성이 아예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뱅킹 금융거래 시 보통 은행들은 전화를 이용한 ARS 추가 본인인증을 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이를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원이 국내 주요 5개 은행을 대상으로 청각장애인의 인터넷 뱅킹 금융서비스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인터넷 뱅킹 이용 시 ‘단말기 지정 신청’ 서비스에서 5개 은행, ‘개인정보 변경’과 ‘공인인증서 등록’, ‘계좌이체’ 서비스에서 3개 은행이 ARS 인증을 요구해 청각장애인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아인협회는 2월 17일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장애인 금융 접근성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해 청각장애인이 겪는 본인확인 ARS 인증방식의 불편사항을 전달했다.

올해 금융권 대표이사들의 신년사 화두는 ‘디지털 강화’였다. 핀테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금융권이 이에 호응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고령층이나 저학력층, 장애인층의 금융 소외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이는 금융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고령층에게 모바일 기기 사용법 무료강좌를 개설하는 등 정부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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