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가 온다 ①] 까탈스럽다고요? 내 삶의 방식이죠

2017. 2.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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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채식하지만 육류 가끔 즐기는 ‘플렉시테리언’
-공장식 사육 반대 동물성 식품ㆍ제품 사용않는 ‘비건’
-건강ㆍ윤리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주의자 확산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여기 짜장면 통일이요’ 속에서 ‘짬뽕 하나’를 외치기도 쉽지 않은 대한민국서 채식주의자로 살아 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별나다, 까다롭다 등 채식주의자를 향한 히스테릭한 편견도 적지 않다.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내는 ‘뭘 저렇게 까지’라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채식은 극성스러움이나 우월한 취향이 아닌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과거 채식은 육식과 생육에 관한 경계심, 생태주의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건강과 윤리가 부각되면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정받고 있다. 육체적 건강과 내적 평화를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 가축의 공장식 사육과 환경파괴에 저항해 채식을 하는 사람. 출발점은 달라도 모두 채식주의자이다. 

미니멀키친을 운영하고 있는 김현주 김빛나라 자매[사진=김지윤 기자 / summer@heraldcorp.com]

▶마크로비오틱, 땅의 생명을 먹다= 합정동 한 골목. 세탁소와 부동산 사이 간판 하나 없이 소박하게 자리잡은 식당이 있다. ‘미니멀 키친’(Minimal kitchen)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군살 한 줌 없는 날씬한 두 자매가 손님을 맞는다. 심플한 블랙 티셔츠에 화장기없는 말간 얼굴,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까지. 두 사람은 정갈하고 수수한 모습도 똑 닮아있다. 김현주(38) 김빛나라(35) 자매는 한달 전 이곳에 채식 위주의 식사를 내놓은 작은 카페를 열었다.

“저희 자매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를 앓았어요. 성인이 되고 불규칙한 생활로 아토피가 심해져 고생을 많이 했죠. 내 몸을 더 건강한 음식으로 채우고 싶어서 연구하다가 ‘마크로비오틱’이란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조금 느리고 품이 더 들더라도 건강한 한끼를 지어 먹으며 영혼의 허기까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따스함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은 ‘macro(큰)’와 ‘bio(생명)’, ‘tic(방법ㆍ기술)’을 합성한 말로 일본의 장수건강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식품의 뿌리부터 껍질까지 음식을 통째로 먹는 조리법을 이용, 인위적으로 재료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섭취해야 식품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고기를 절대 입에 대지도 않거나 동물성 제품을 쓰지않는 완전한 ‘비건’은 아니다. 소주에 삼겹살을 외치는 친구들을 위해 내색없이 따라가는 날도 있다. 육식을 지양할뿐 완전히 금기하지는 않는 ‘플렉시테리언’(flexi-ble 융통성ㆍ유동성과 vegetarianㆍ베지테리언의 합성어)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미니멀키친에서 내오는 모든 음식은 화학조미료와 정제설탕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무농약 식재료를 이용한다. 이곳에서는 열가지 구운채소와 된장소스를 곁들인 현미밥(12000원)을 비롯해 뿌리채소 스테이크(13900원), 당근 소보로볼 플레이트(12000) 딸기 루꼴라 샐러드(11000원), 수퍼푸드를 이용한 스무디와 수제 아몬드 밀크도 맛볼 수 있다.

“채식 카페인줄 알고 기겁해서 도로 나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채식은 어려운 게 아니에요. 나물반찬에 김 얹은 밥 한술도 채식이죠. 비빔밥에 생들기름 한큰술만 넣어서 드셔보세요. 강렬한 고추장에 가려졌던 제철 나물의 풍미가 새로울 거예요. 중요한 건 육식의 금지가 아니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몸을 건강한 음식으로 채우는 일 아닐까요?” 

미니멀키친에서 판매중인 마크로비오틱 식사[사진=김지윤 기자 /summer@heraldcorp.com]

▶엄격한 비건, 식생활을 넘어선 신념= 채식주의 잡지 월간 ‘비건’을 발행하고 있는 이향재(55)씨는 9년 전 채식을 선언하고 ‘비건’의 삶을 살고 있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 계란, 생선, 벌꿀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포함한 모피, 털로 만든 동물성 제품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채식주의 가장 엄격한 단계다.

과거의 그녀가 지금의 모습을 봤다면, 아연실색할 정도로 옛날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소고기를 제일 좋아했죠. 입안에서 차르르 녹는 지방의 탐욕스러운 맛. 그게 행복이라 여겼어요. 화려하고 근사한 것에도 집착했었어요. 동물의 가죽과 털로 만들어진 가방, 옷을 걸치고 호텔에서의 호사스러운 한 끼를 즐겼습니다. 13년을 그렇게 살았네요”

그러다 회사가 기울기 시작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 삶이 힘들어지자 입맛도 떨어졌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찾아간 의사에게 ‘고양이를 키워보라’는 처방을 얻었다.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받아 키우던 그때, 우연치 않게 집어든 책이 ‘개 고양이 사료의 진실’이었다. 제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료에 고양이 골분과 사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 끔찍했어요. 개와 고양이 다음 ‘소나 돼지는 뭘 먹고 살지’ 에 대해 알아보다가 인간의 먹거리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공장식 사육(Factory Farming)의 진실에 대해 알았어요. 열렬한 육식주의자였던 제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문제를 인식하게 되면서 채식이 옳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진=월간 ‘비건’ 발행인 이향재 씨]


동물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육과 도축이 불가피한 일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고 잔인한 도축을 금하는 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다.

“공장식 축산으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의 양이 전세계 자동차가 뿜어내는 것보다 30%나 많아요. 인간이 먹는 고기의 1/3만 줄이면 전세계 기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소가 먹어치우는 곡물의 양이 그만큼 어마어마합니다”

실제로 축산은 인류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산업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지구에 악영향을 끼친다.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식량과 물 부족을 초래해 수질을 악화시킨다. 

보고에 따르면 햄버거 하나를 만들기 위해 1.5평의 숲이 사라지고 매년 우리나라 땅 크기만큼의 숲이 동물사육으로 인해 사라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땅의 80%가 동물사육에 사용되고 있으며 아마존 열대우림의 70%가 파괴돼 동물사육지나 사료용 곡물재배농지로 변모했다.

숲이 사라지면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이 멸종하게 되고 그만큼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 과학자들은 소고기 생산에는 같은 칼로리의 곡물을 생산하는 것에 비해 10배 이상 많은 온실가스와 160배 넓은 토지를 필요로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축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4.5%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고기를 먹지않는 다면 1년에 13만2400L의 물과 5000lbs의 이산화탄소 방출을 절약할 수 있다.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생명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작은 풀 하나가 식탁에 오를 때까지의 발자국을 알게 되니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고. 이제 웬만한 채소는 집에서 길러 먹는다.

“소고기를 먹을 때의 쾌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감정이에요. 생명의 고귀함, 인류와 지구를 위한다는 사명감. 이런 기쁨을누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summer@heraldcorp.com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씨가 제안하는 ‘베지테리언 4주 프로젝트’.

<베지테리언 4주 프로젝트>

1주차=육식을 당장 끊을 순 없으니 처음 일주일은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 살코기를 끊고 세미 베지테리언(닭고기까지 허용)으로서 시작한다.

2주차=채식에 약간 적응이 되면서도 풀이 질리기 시작할 때다. 닭고기, 해산물을 서서히 끊으면서 양 조절을 한다.

3주차=채식에 적응이 되었거나 관두고 싶은 번뇌의 시기. 서서히 고기 냄새가 거북해지면 과감하게 육류를 끊는다. 여전히 고기 생각이 간절하다면 덩어리 고기만 안 먹기를 해도 좋다. 채식동아리에 가입해 격려와 조언을 얻는다.

4주차=이쯤왔으면 베지테리언에 반은 성공이다. 이때 채식 ‘커밍아웃’이 중요하다. 주변에 알려 본인의 의지가 확고함을 공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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