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혁신가] 가짜정보 홍수에.. '과학적 회의주의' 스켑틱 열풍

신성헌 기자 2017. 2.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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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호 베스트셀러, 과학 계간지 스켑틱 박선진 편집장한국판 창간 2년, 미국판 발행인도 관심… 정기 구독자 꾸준히 늘어

박선진 편집장은 '젠더의 차이'를 다룬 4호(2015년 12월) 이야기를 하던 도중 "편집장이 여자인 걸 알았냐"라고 물으며, 미국판 발행인이 이메일에 'Mr. Park'이라고 적은 일화를 알려줬다. 스켑틱을 '남성의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성헌 기자

"영화 트랜센던스(Transcendence)는 목숨을 잃은 과학자의 뇌를 슈퍼컴퓨터에 업로드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에 옮기는 게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한다는 개념을 완전히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과학적 판타지임은 분명하다. 뇌의 압도적 복잡성, 컴퓨터 모형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판타지일 뿐이다."

과학 계간지 스켑틱 한국판 7호(2016년 9월)에는 '마인드 업로딩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잡지가 내놓은 관점은 3가지다. 마음을 컴퓨터로 옮기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은 어렵지만 가능하다, 내 마음이 이식된 컴퓨터도 '나'로 볼 수 있는가. 각 필자는 다른 논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실을 무시한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설전을 벌인다. 그 분량이 장장 60여쪽에 달한다.

스켑틱은 독자들에게 '회의주의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모든 걸 부정하라는 걸까? 여기서 회의주의란 냉소가 아닌 '검증'에 가깝다. 스켑틱 미국판을 발간하는 스켑틱 협회(The Skeptics Society)는 사이비 과학, 유사 과학, 모든 종류의 기이한 주장들을 검증하고,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비영리 과학 교육기관이다.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급진적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편집위원이다.

공짜, 가짜 정보가 난무하는 요즘, 창간 2년을 앞둔 스켑틱 한국판의 독자들은 유료 정보에 과감히 지갑을 연다. 우주 매개변수, 중력파, 유전체 편집기술, 솔기핵(raphe nuclei)과 같은 전문 용어가 빼곡한 이 과학 계간지는 나오는 호마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다. 과월호도 재쇄를 찍고, 5년 이상 장기 정기구독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스켑틱 한국판의 박선진 편집장을 만났다. 스켑틱 하면 으레 '호전가'를 떠올리지만, 박 편집장은 인터뷰 내내 나직한 어조로 조곤조곤 말했다.

-스켑틱이 추구하는 '회의주의'를 쉽게 설명하자면.

"스켑틱의 매호 첫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스켑틱은 우리를 미혹하는 것들을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가짜 뉴스, 가짜 정보가 넘치는 상황에서 어떤 사실을 철저히 검증하기 위해 우리가 채택한 방법이 과학이다.

다만 과학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그걸 전제로 해야 한다. 무엇이 더 타당한 논거인지 따지고 무엇이 최선의 사실인가를 찾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스켑틱, 회의주의다."

1992년 스켑틱 미국판을 창간한 심리학자 마이클 셔머는 '회의주의 선언'이라는 기고에서 과학과 회의주의의 접점을 설명한다.

"회의주의자들이 특정 신념에 대해 마음을 닫고 있다는 통념은 회의주의와 과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회의주의자와 과학자들이 꼭 '마음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신념에 마음을 열고 있었지만, 증거가 그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했기에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우주에는 과학자들이 증거에 기반해 연구할 수 있는 적절한 수수께끼들이 이미 충분히 존재하므로,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를 고찰하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다. (…) 회의적이란 말을 '합리적'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 유용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 분야 전공자나 종사자가 아닌 독자에게도 과학적 방법론이 필요할까.

"과학은 사고 패턴 중 하나다. 실험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가령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3년 세금 개혁법이 통과되면 1000달러의 혜택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는 납세자 다수가 50~100달러만 받았다. 부시는 진실을 호도했다. 이런 선동에 속지 않고 정확한 평균값을 알아보는 방법도 과학이다. 모두가 과학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 합류했다. 이전 편집 경력이 없는데. 스켑틱 편집장을 맡게 된 계기는?

스켑틱 한국판과 미국판. 한국판은 미국판보다 판형이 작고 두께가 두껍다. 잡지 느낌이 아닌, 단행본 형태로 제작했다는 게 박 편집장의 설명이다. /신성헌 기자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석유화학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뒤늦게 출판 일을 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 대학원 졸업 후 2014년 3월 바다출판사에 입사했다. 내가 스켑틱 편집장이 될 줄 몰랐다."

-2015년 3월 당시 미국 외 지역 최초 창간으로 화제를 모았다.

"스켑틱이 수출된 건 처음이다. 프랑스, 캐나다에는 그 나라 별도의 스켑틱 잡지가 있다."

-원래 미국판 스켑틱을 구독했나.

"이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바다출판사에 입사해보니 사장님이 스켑틱 한국판을 낼 구상을 하고 있더라. 텍스트가 빼곡한 미국판을 보고 잘 안될 것 같았다.(웃음) 게다가 2014년은 잡지 시장이 죽어가던 때였다. 긴 논의 끝에 셔머와 접촉했고 한국판을 내게 됐다."

-라이센스 계약 단계에서 오간 얘기는.

"셔머는 과학이 발달한 한국에서 혈액형 성격론자가 많고, 일상 곳곳에 풍수지리가 작동하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바다출판사에서 한국판을 알아서 편집하는 것으로 셔머와 계약을 맺었다. 한국판에 관심이 많은 그는 침술, 기(氣)와 같은 내용을 다룰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굉장히 적극적이다."

박 편집장은 스켑틱 한국판 기사가 미국판에 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한 출판사가 한국판 6호의 사주·음양오행 기사에 관심을 보였고 현지에서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판과 미국판의 차이는.

"초기 한국판에는 미국판의 번역본이 주로 실렸다. 커버스토리와 포커스는 별도 구성한다. 미국판 과월호에 실린 글 중 지금 국내 상황에 맞는 내용이면 보충해서 싣기도 한다. 여덟 호를 내면서 국내 필자의 수가 늘었다. 창간호의 커버스토리 시간 여행은 미국판 과월호의 글이고, 당시 흥행한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되는 내용이라서 실었다."

-창간 2년을 앞두고 있다. 정기 구독자 수는 얼마나 되나.

"3000명 규모다. 이 중 3분의 1 정도가 재구독한다. 5000명을 목표로 한다. 창간호는 발간 열흘 만에 매진되며 1만부가 넘게 팔렸다. 매호마다 7000부 이상 팔린다."

-독자의 주요 직업군과 연령대는.

"20대, 30대, 40대가 3분의 1씩 된다. 40대 이상이 가장 많다. 대학교수, 의사, 한의사, 종교인 등 전문직이 다수다. 중고등학생 구독자 수도 꽤 많다. 여성 독자 비율이 3분의 1이 넘는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스켑틱 코너. 과월호가 꾸준히 판매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창간호부터 최신호까지 전편이 주요 자리에 놓여 있다. /신성헌 기자

기자가 만난 미디어 업계 종사자 중에는 스켑틱 구독자가 다수 있었다. 그들은 구독의 이유로 스켑틱 고유의 '비판적 사고'를 꼽는다. 스켑틱의 팬을 자처하는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이 잡지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는 다수가 '헛소리'라고 여길 수 있는 주장에 진지하게 응하는 편집진의 전문성을 높게 산다고 덧붙인다. 박 대표는 4호에 실린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는 29가지 사고 오류 - 회의주의란 무엇인가'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를 내놓는 미디어 업계의 트렌드에 반한다. 장난스런 해설로 유명한 페이스북 페이지 'I Fucking Love Science(IFLS)'는 팔로워 수가 2500만명에 달한다.

"우리가 맡은, 고유 영역이 있다고 여긴다. 스켑틱는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읽는 독자를 염두에 둔다. 연령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여덟 호를 내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을 텐데.

"창간호는 2014년 초부터 꼬박 1년 준비했다. 표지 디자인을 바꿔서 낸 게 30~40개다. 1호가 나왔을 때 판형이 특이하다, 읽기 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행히 창간호의 반응이 좋았다."

-판매 부수가 가장 많은 호는?

"창간호다. 발행 후 한달간 판매 부수가 가장 많았던 건 6호다. 음양오행을 다뤘다. 인공지능을 다룬 3호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판매량이 급증했다."

-스켑틱 한국판의 콘텐츠 중 3개를 추천하자면.

"4, 5, 6호. 6호에서는 스켑틱 미국판 발행인 마이클 셔머와 진화심리학자인 마크 하우저 하버드대 교수가 '과학이 도덕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논쟁한 글이 실렸다. 과학으로 도덕을 판단(?)하는 주제만으로도 파격적인 글이었다.

5호에서 다룬 중력파 이슈는 과학의 쾌거를 보여준 주제였다. 중력파 검출 작업에 직접 참여한 이강영 경상대 물리학과 교수의 글을 싣고, 아인슈타인에서부터 이어오는 중력파 검출의 역사를 자세히 다뤘다.

4호에서는 '젠더의 차이에 대한 과학의 오류'를 다뤘다. 미국판 과월호 중에 페미스트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 편견에게 대한 과학적 증거를 보여주는 글이 있었다. 페미니즘도 과학으로 받아야 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9호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자면.

"커버 스토리는 '우주 여행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다. 영화 스타트렉에 나온 초광속 여행 '워프 드라이브(Warp Drive)'가 실제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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