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낯섦'과 싸워야 하는 최강희 감독

손병하 2017. 2. 2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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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낯섦'과 싸워야 하는 최강희 감독



(베스트 일레븐)

익숙한 길을 걸을 땐 편안함을 느낀다. 어느 정도 속도로 걸어야 원하는 시간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지, 보폭은 어느 정도로 해야 거치적거리는 발밑 장애물을 피해갈 수 있는지,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위험물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에 밴 익숙함은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도록 돕는다.

반면 낯선 길을 걸을 땐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온다. 목적지로 가는 과정 속에 발생하는 속도와 보폭과 위험물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걸음도 조심스럽고 긴장하기 마련이다. 누구만 그러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2017 K리그 클래식을 준비하는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도 그런 ‘낯섦’과 마주하고 있다. 늘 걸었던 길의 익숙함과 편안함 대신, 아주 오랜 만에 걷게 돼 낯섦마저 드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해서다. 최 감독이 만나게 된 낯선 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로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직 나라 안에서만 싸워야 하는 것부터 오랜 동반자 없이 홀로 걸어야 하는 일까지, 참 많다.

먼저 전북은 올 시즌 나라 밖에서 싸울 일이 없다. 모든 경기를 국내에서만 소화한다. 지난해 5월 불거진 심판 매수 사건 때문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출전관리기구로부터 징계를 받아 2017 AFC 챔피언스리그(ACL) 출전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이기도 한 전북이 ACL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들의 올 시즌 구상에도 많은 것이 변했다.

2009년 K리그에서 우승하며 ACL 출전권을 얻은 전북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7연 연속 ACL 본선에 올랐다. 7년 동안 매해 나라 안팎을 다니며 수많은 상대와 겨뤘다. 그러나 올해는 그 익숙한 스케줄이 대폭 변경됐다. ACL에 나서지 못하게 되면서 K리그 클래식과 2017 FA컵에만 참가하게 된 것이다. 매해 엄청나게 많은 원정 경기를 소화하고, 스쿼드 이원화 등 여러 문제로 머리가 아팠던 최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수월하게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 듯했다.

그러나 수월한 것만 있지는 않다. ACL 참가 불발로 시즌 구상과 스쿼드 운영에 여유가 생긴 건 사실이지만, 지난 7년 동안 걷지 않았던 길이기에 낯섦이 찾아 왔다. 몸에 밸만큼 자연스러웠던 시즌 초반 스케줄이 통째로 없어지면서, 지금 최 감독과 전북은 새로운 문제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ACL 출전하지 않고 K리그 클래식 개막만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낯설다. ACL 상대도 분석해야 하고, 스쿼드 이원화도 고민해야 하고, ACL 원정 경기와 그에 따른 K리그 클래식 경기도 염두에 둬야 하는데 그런 고민들이 싹 사라졌다. 그런데 그 자리에 새로운 고민이 들어 왔다. K리그 클래식만 준비해야 하는 지금이 상당히 낯설다는 고민이다. 3월에 우리가 치러야 할 경기가 겨우 세 경기 밖에 안 된다.”


혹 최 감독의 고민이 배부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전북은 지난 7년 동안 ACL 개막하는 2워 말부터 K리그 클래식이 문을 여는 3월 초까지 약 한 달 동안 7~8경기를 치렀다. ACL에서만 3~4경기를 치렀고, K리그 클래식에서도 그 정도 수준의 경기를 소화했다. 그래서 최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물론, 프런트까지도 그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몸에 뱄다.

그러나 올 시즌 ACL 출전이 무산되면서 많은 게 꼬였다. 여러 문제가 있겠으나 가장 큰 건 선수들의 준비다. 선수들은 올 시즌 ACL 출전을 위해 일찍부터 몸을 만들었다. 2월에 예정돼 있는 ACL 조별 라운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K리그 클래식 개막보다 훨씬 일찍 컨디션을 끌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ACL 출전이 무산되면서 끌어 올린 컨디션을 쓸 곳이 없어졌다. 이를 K리그 클래식이 개막하는 3월 4일까지 잘 연결해야 하는데, 그 사이 실전이 없어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뿐만 아니다. 최 감독이 2009년 이후 스쿼드를 두텁게 하고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전북이 여러 대회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스쿼드 이원화가 불가피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호화 스쿼드를 갖고도 선수들의 큰 불만 없이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ACL이 사라지면서 경기 수가 대폭 축소돼, 적은 경기 수에서도 호화 스쿼드를 잡음 없이 이끌어야 하는 이제껏 없었던 문제도 고민하게 됐다.

또 있다.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다. 전북은 홈구장 전주 월드컵경기장을 U-20 월드컵이 폐막하는 6월 11일까지 사용할 수 없다. 시즌 전체 일정의 1/3에 달하는 3개월 반을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 치러야 한다. 대체 장소는 전주 종합운동장이다. 이곳도 전북의 홈구장이긴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 경기한 적이 없어 원정 경기나 다름없다. 이는 전북이 시즌 초반 레이스에서 홈구장의 이점을 버리고 경기해야 함을 뜻하는데, 이 역시 최 감독에게는 대단히 낯선 길이다.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었던 ‘축구 인생의 동반자’ 이철근 전 단장의 부재도 최 감독이 감내해야 할 낯섦이다. 2005년 이후 10년 넘게 단장 자리에 머물며 전북을 K리그 리딩 클럽으로 이끌었던 이 전 단장은 지난 2월 초 자진 사퇴했다. 심판 매수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이 전 단장은 최 감독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오늘날의 전북을 만들었는데, 이 전 단장이 물러나면서 최 감독은 외로운 걸음을 걷게 됐다. 앞으로 백승권 신임 단장과 새로운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겠지만, 당분간은 낯선 외로움과 싸워야 한다.

“3월에 세 경기 밖에 치르지 않더라.” 새로운 고민을 떠안은 최 감독이 겪고 있는 낯섦을 아주 잘 대변하는 말이다. 최 감독은 7~8경기를 치렀던 매해 2~3월을 떠올리며, 단 세 경기 밖에 치르지 않는 지금 상황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결국 전북이 올 시즌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K리그 클래식 왕좌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직면한 여러 낯섦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달렸다. 열두 시즌 째(2012년 제외) 전북을 지휘하고 있는 최 감독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제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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