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없앤다며 인도 한가운데 화단·벤치,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사진=임주언 기자 2017. 2. 2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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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강남역 앞 설치.. 보행권 침해 우려
서울의 번화가인 서초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 인도 한가운데 27일 화단과 벤치가 들어서 있다. 자칫 걸려 넘어질까 시민들이 신경을 쓰며 걷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7시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퇴근하는 직장인과 저녁 약속을 잡은 시민들이 분주히 갈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빠르게 걷던 한 시민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스마트폰 지도를 보느라 고개를 숙이고 걷던 이들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인도 한가운데 화단과 벤치가 줄지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막상 벤치에 앉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잠시 머문 이들도 통행에 불편을 줄까 눈치를 봤다. 대학원생 정시은(32·여)씨도 오므린 다리를 벤치 쪽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스마트폰 검색을 위해 잠깐 앉은 정씨는 “눈치 보이고 불편하다”며 “괜스레 개수만 많이 만들어 놓은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화단과 벤치 60여개가 설치됐지만 시민 반응은 미지근하다. 굳이 인도 한가운데 설치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전문가들 또한 보행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강남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물 설치로 보고 있다. 강남역 주변은 2호선이 9호선, 신분당선과 연결되는 곳인 데다 술집과 음식점, 학원이 몰려 있어 유동인구가 많다. 직장인 최모(33·여)씨는 “강남역 특성상 저녁 때 술 마시는 사람들이 많은데, 벤치나 화단에 걸려 넘어질 뻔한 사람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고 걱정을 드러냈다.

화·목요일마다 강남역을 찾는다는 손은정(48·여)씨는 “출퇴근 시간 때 화분, 벤치들이 거치적거리고 방해가 된다”며 “넘어질 뻔한 적도 많고 사람들 사이에서 급히 빠져나오려다가 부딪힌 적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버스 승강장이 있는 부근은 길이 더 심하게 막힌다. 10명 이상 줄을 서면 벤치와 화단을 기준으로 한쪽 통로가 막혀버리는 경우도 있다.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민모(26)씨는 “길이 막히면 급하게 반대 통로로 넘어와야 하는데 그러다가 또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친다”며 “아침 저녁시간엔 강남역에 사람이 너무 많은데 (화단이) 차지하는 면적이 지나치게 넓다”고 말했다.

서초구청은 불법노점 방지를 위해 설치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노점 몇 곳을 푸드트럭으로 양성화하고 골목에 지정구역을 만들면서 대로변에 새 노점이 들어서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말인 26일 찾은 10번 출구에 노점은 2곳뿐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시설물 설치에 따로 구 예산을 투입하진 않았다”며 “인도 중앙에 시설물을 설치해 불법노점 진입을 차단하는 동시에 녹색휴식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점방지를 위해 또 다른 방법으로 보행권을 침해하는 건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박진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취지는 이해되지만 결국 노점상과 중재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보행자가 받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보행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명수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휠체어, 유모차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몇 배 더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며 “최근엔 볼라드(차량진입방지용 말뚝)도 개선해 나가는 추세”라고 했다. 김 교수는 “보행로에 새로운 적치물을 설치할 때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점과의 전쟁에 시달리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구의 정책이)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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