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1편 이동국]"1998년, 나는 '과대 포장' 됐다"

최용재 2017. 2.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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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최용재]
사진=중앙포토DB
K리그 역사는 1998년을 '르네상스'로 기록했다. 1983년 시작된 K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황금기. 경기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사상 첫 200만 관중(211만7448명)을 돌파한 영광의 해였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3명의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라이언 킹' 이동국(38·전북 현대), '앙팡테리블' 고종수(39·수원 삼성 코치), 그리고 '테리우스' 안정환(41·MBC 해설위원)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실력과 외모를 모두 갖춘 'K리그 트로이카'라 불리며 소녀팬들을 몰고 다녔다. 2017시즌 K리그 개막을 앞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시즌이다. 본지는 올 시즌 'K리그 개막 특집'으로 1998 트로이카와 만나 인터뷰를 했고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이들과 '어떻게 황금기가 올 수 있었는지' 1998년 추억을 공유했다. 그리고 '다시 부흥기가 올 수 있는지' 2017년 희망을 기약했다.

첫 주자는 이동국이다.

"프랑스월드컵을 위해 공항에 갔을 때 나를 알아보는 포항팬 4명이 있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귀국하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13분이 이동국 인생을 바꿨다. 그는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32분 교체 투입돼 13분을 뛰었다. 이동국은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남기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0-5 참패 속에 발견한 희망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

무명의 선수가 월드컵 13분을 뛰고 돌아오자 '최고 스타'가 돼 있었다.

지난 17일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흐름은 K리그에서 이어졌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한 이동국은 빼어난 실력과 '미소년' 이미지가 더해져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포항은 정규리그 평균 관중이 1997년(5313명)과 비교해 3배 이상(1만7427명) 늘어나는 '이동국 효과'로 뜨거웠다.

◇1998년. 가장 인기 많았고 가장 거만했던 시절

-월드컵 참패에도 K리그 흥행 붐이 일어난 이유는.

"월드컵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피를 흘리면서 뛴 붕대 투혼 등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또 막내인 내가 당돌하게 경기를 뛰는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얻은 것 같다. 월드컵이 끝난 뒤 K리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때가 K리그 최고 절정기였다고 생각을 한다."

-월드컵 귀국 현장은 어땠나.

"프랑스에서는 한국 상황이 어떤지 몰랐다.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길게 하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물어보지 못했다. 공항에서 계란을 맞을 걱정부터 했다. 그런데 와보니 수많은 팬들이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반겨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월드컵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

"식당을 가도 밥 한 그릇을 더 주고 택시를 타도 택시비를 안 받으려고 했다. 유명인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인기가 월드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는 아날로그 시대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선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찾아가서 보는 방법뿐이었다. 경기장에 정말 많은 팬들이 왔다. 포항 숙소에도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모였다. 몇 십 명이 밤을 새면서 내가 아침 먹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때 숙소 관리하시는 분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팬레터를 받을 시대다.

"보통 하루에 300통 정도는 온 것 같다. 많게는 하루에 1000통 이상도 왔다. 포항 우체국에 내 우편물을 관리하는 팀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 소중한 선물이다. 어머님이 그때 편지를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고 있다."

-트로이카 중 누가 인기가 가장 많았나.

"(고)종수 형이 인기가 가장 많았다. 실력적으로 정말 뛰어 났다. 튀고 자신감이 넘쳤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종수 형은 더 큰 스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종수 형과 (안)정환이 형은 광고도 찍고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다. 나는 그런 방면에 끼가 없어 거의 방송은 하지 않았다."

-외모 순위는.

"정환이 형이 당연히 1등이다. 정말 꽃미남이었고 귀공자 이미지였다. 테리우스라는 별명과도 잘 맞았다. 나는 중간이다. 종수 형이 3등이다.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웃음)"

-서로 시기와 질투는 없었나.

"셋이 잘 어울려 다녔다. 휴가 때 만나서 밥도 먹으면서 함께 놀았다. 세 명이 함께 모여 있으면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신인상 경쟁에서 안정환에 이겼다.

"K리그 역대 가장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펼쳤다고 생각을 한다. MVP 경쟁보다 치열했다. 내가 정환이 형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월드컵을 뛰어서 가산점을 얻은 것 같다."

-사상 첫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런 시대를 팬들과 함께 보낸 것은 감사한 일이다. 열정적인 팬들이 많았다. 경기 끝나고 버스가 이동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몰래 승용차를 타고 따로 빠져나가야 할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울산에서 원정 경기를 했는데 팬이 넘쳐 경기장 트랙 앞까지 바리게이트를 쳐서 관중을 앉혔다. 지금은 안전 이유로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다."

-자만하지 않았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누군가 옆에서 충고를 잘 해줬다면 나는 더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이다. 아니 선배들이나 누군가 조언을 해줬을 텐데 인기가 너무 많다 보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만했다. 건방진 행동도 많이 했다. 누구도 내 중심을 잡아줄 수 없었다.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20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 인기를 얻었고 말하는 대로 다 됐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것이다."

◇2017년. 다시 부흥기를 기다린다

-왜 부흥기가 다시 오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팬들은 너무나 쉽게 스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핸드폰으로 어디서나 스타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굳이 경기장에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또 스타도 부족하다."

-스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젊은 스타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젊은 스타들은 해외에 진출한다. 또 과거처럼 과대 포장을 할 수도 없다. 내가 그랬다. 월드컵 다녀오니 내가 가진 실력에 비해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디어들이 축구 신동, 축구 천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줬다. 과대 포장된 면이 있었다. 과한 관심을 받았다. 경기력보다 축구 외적인 선수 마케팅 부분 이슈를 위해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스타가 나오기 위해서는.

"K리그 팬들은 성숙해졌다. 외모와 이미지로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를 보는 수준도 엄청 높다. 경기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리 포장을 잘 한다고 해도 인기를 얻기 힘들다. 경기를 못하면 바로 시선에서 멀어진다. 실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구단과 선수, 미디어가 함께 열심히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선수 마케팅도 필요하다."

-스타로는 한계가 있다고.

"예전에는 특정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왔다. 하지만 지금 응원 문화, 관람 문화가 바뀌었다. 한 두 명의 스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팀 전체를 보러 경기장에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1~2명 스타가 빠졌다고 해서 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정 선수에 빠져 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팀 선수에 매료되는 과정이다. 팀 전체적으로 팬들에게 어필하고 소통해야 한다. 팬들에게 나의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트로이카 후계자 1명을 꼽는다면.

"이재성이다. 실력도 있고 끼도 있다.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스타성을 갖춘 선수다."

◇떠난 형들에게

-트로이카 중 홀로 현역에 남아있다.(고종수 2009년 은퇴, 안정환 2012년 은퇴)

"형들 보다 내가 오래 뛸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박)지성이 보다 오래 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성이 아버님도 언젠가 나에게 '네가 지성이 보다 오래 뛸 줄 몰랐다'고 놀라워 하셨다."

-현역의 고충이 클 것 같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택한 길이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역으로 경기력으로 보여주고 있고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좋아하는 척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못한다. 경기력이 떨어지거나 경기장에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반응이 온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봐주는 건 없다."

-안정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환이 형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 방송에서 좋은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다. 축구로 성공하고 축구 외적으로도 능력과 끼를 보여주고 있다. 정환이 형은 잘 할 거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잘 해냈다."

-고종수에게는 어떤 말을.

"종수 형은 수원 원정에 가거나 할 때 본다. 경기 끝나고 서로 인사를 한다. 연락도 가끔씩 하는 사이다. 형은 지도자 길을 걷고 있다. 성격상 선수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선수들이 형을 잘 따를 것이다. 소통을 잘 하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솔로인 고종수가 안타깝다고.

"종수 형이 독수공방 그만하고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노총각으로 살지 말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가정을 꾸리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종수 형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서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면 형은 몇 살이야?(웃음)"

-인터뷰를 마치며.

"정환이 형, 종수 형과 1998년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다. 언제라도 3명이 함께 만나서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완주=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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