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일으켜 세운 '코리안 좀비' 정찬성

박구인 기자 2017. 2. 2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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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1726일 만의 복귀전서 1라운드 KO 승 거둔 정찬성
UFC 파이터 정찬성이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코리안 좀비 체육관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샌드백을 때리고 있다. 박구인 기자
정찬성 가족이 둘째 딸 민서 양의 돌을 맞이해 촬영한 기념사진. 페퍼민트스튜디오 강남점 제공

“단순히 훌륭한 파이터 보다는 아내와 두 딸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코리안 좀비 체육관에서 만난 미국종합격투기(UFC) 파이터 정찬성(30)의 표정은 한결 평온했다. 운동선수에게 3년 6개월의 공백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의 때늦은 복귀전이 무모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지난 5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104에서 데니스 버뮤데즈(미국)를 1라운드 KO로 꺾고 1726일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정찬성은 불가능할 것 같은 UFC 복귀전 승리는 가족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올 여름쯤 예정돼 있는 또다른 경기에 앞서 재활과 휴식에 주력하고 있는 정찬성은 무서운 파이터라는 모습이 실감나지 않게 두 딸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아내와 딸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전 재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복귀전 승리의 원동력은 ‘사랑의 힘’이었습니다.”

가족의 힘으로 복귀전 승리한 좀비

정찬성의 별명은 ‘코리안 좀비’다. 맷집이 워낙 센 데다 두려움 없이 상대에게 맞서는 경기 스타일 때문에 붙여졌다. 고교시절 킥복싱을 시작한 정찬성은 경북과학대 이종격투기학과에 진학했고, 국내 대표 파이터로 성장했다.

2011년 UFC에 데뷔한 뒤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3년 8월 조제 알도(브라질)와의 경기에서 어깨 탈구 부상을 당했다. 이후 기나긴 수술과 재활의 시간을 거쳤다. 옥타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올라갈 수 없는 몸상태에 스스로가 화가 났다. 이때 지금의 아내인 박선영(33)씨와 결혼했다. 운동에만 매진한 탓에 ‘사회생활’ ‘인간관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정찬성은 박씨와 만난 뒤 헌신과 사랑의 의미를 알게됐다.

박씨는 “연애를 할때도 느꼈지만 남편이 너무 순수해서 험한 세파에 휩쓸릴까봐 걱정됐다”며 “제 삶을 버려서라도 남편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결혼의 행복을 접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조급함을 버리게 됐다. 그리고 두 딸 은서(3), 민서(2)가 생겼다. 정찬성은 “운동선수로서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곁에 있어 이를 극복했다”고 회상했다.

가장이 된 그는 건강한 몸으로 반드시 옥타곤에 다시 올라설 이유가 생겼다. 아내와 딸들에게 자랑스런 아버지가 돼야한다는 책임감이 그것이다.

하지만 다시 옥타곤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몸은 너무 오래 쉰 탓에 머리로 생각했던 것만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찬성은 두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더 악물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UFC측은 정찬성이 3년이 넘는 공백기를 딛고 승리한 것에 놀라워 하고 있다. 미국 LA타임스는 지난 25일 정찬성을 UFC 페더급 최상위권을 흔들 다크호스로 선정하는 등 그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좀비를 일으켜 세운 아내의 내조

복귀전 당시 박씨는 관중석에서 남편을 지켜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 화제였다. 파이터 남편을 뒀음에도 그의 경기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남편이 이겨서라기 보단 오랜 시간 고생 끝에 재기해서 만감이 교차했어요”라고 당시의 심정을 털어놨다.

박씨는 남편의 꿈인 챔피언 등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한다. 남편의 별명을 내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각종 사무를 모두 도맡아 하고 있다. 남편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꾸며준 것이다.

박씨는 “남편이 챔피언이 될 때까지 힘을 보태야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같은 사람이에요. 이젠 묵묵히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찬성은 “전 운동 빼고 잘하는 게 별로 없는데 아내가 많이 도와줘요”라며 “아내 말을 잘 듣기 위해서라도 챔피언의 꿈을 꼭 이룰 겁니다”라고 다짐했다.

정찬성은 딸 얘기가 나오자 코리안 좀비란 별명이 무색해질 정도로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그의 삶에서 가족은 절대적인 위치로 자리잡았다. 가족의 화목과 사랑을 잊지 않는 한 그의 파이터 전력에서 실패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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