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조훈현.. 한국 고수들과 복기하던 때가 그리워요"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입력 2017. 2.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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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바둑]
- 역대 최강 여성기사 루이 인터뷰
54세인 지금도 국가대표, 한국 떠나 중국에서 2번 우승
"나에겐 오직 바둑과 남편뿐.. 韓中 여자리그 교류 힘쓰겠다"

중국이 낳은 세계 최고 여성 프로 기사 루이나이웨이(芮乃偉)와 마주하면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서울에서 12년 8개월이나 기사 생활을 한 덕에 우선 한국말이 능숙하다. 그 기간은 루이 9단 자신에겐 절정기였고, 그녀의 출현에 자극받은 한국 여자 바둑에는 도약기였다. 한국에 여자바둑리그가 생기면서 3년째 연속 '용병'으로 내한한 루이를 지난주 카페 '바둑의 품격'에서 만났다. 어언 쉰넷이 된 그녀는 여전히 여성적이고 상냥했으며 겸손했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2011년 말 한국을 떠나 귀국한 뒤 집(상하이)과 국가대표 기숙사(베이징)를 오가며 살고 있어요. 국가대표 팀에선 10명 안팎의 여자 선수가 훈련합니다. 상하이에선 남편(장주주)과 함께 바둑 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중국 바둑 붐에 힘입어 수강생이 80명쯤 돼요."

―아직도 대표선수라니 놀랍다. 대회 성적은 어떤가.

"중국 복귀 후 마인드스포츠 대회와 건교배 등 2번 우승했어요. 하지만 한국, 중국의 젊은 강자들은 나보다 훨씬 셉니다."

―국제 대회 8회를 포함해 38번 우승한 루이 9단만은 나이를 극복할 줄 알았다.

"젊은 시절엔 끝까지 수읽기가 됐는데 언젠가부터 정밀함이 떨어지고 실수가 잦아졌어요, 마흔 살이 넘으면서부터 그런 증상이 찾아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루이 9단은 혼성 기전을 제패한 최초의 여성 기사였다. 바둑에서 여성 열위(劣位)론을 인정하나?

"안타깝지만 인정해요. 바둑판을 보는 시야와 판단력에서 남성이 우월합니다. 예컨대 조훈현 사범님 같은 남자 강자들은 기보만 보면서도 자유자재로 변화를 찾아내는데 저는 안 됩니다. 물론 이것이 여성들 공통의 약점인지, 제 머리가 나빠서인지 단정할 수는 없어요(웃음)."

―54세 여성 기사의 입장에서 나이와 성별, 어느 쪽의 핸디캡이 더 크다고 생각하나.

"물론 나이죠. 저는 짧게 집중해서 공부하는 타입으로, 젊었을 땐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몰랐어요, 옆의 소음이 들린다는 건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뜻이죠. 이런 변화는 성별 아닌 나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루이를 한국 여자 바둑의 은인이라고 말한다.

"한국 정착 초기에 한국 여자 바둑이 약했던 건 사실이지만, 여건이 좋아 나 아니더라도 지금만큼 성장했을 거예요. 오히려 내 바둑 인생의 절정기를 만들어준 한국에 깊이 감사하고 지냅니다. 한국이 너무 그리워서, 여자리그 출전 여부를 물어올 때마다 바로 수락했어요. 올해도 작년(7승 3패)만큼 하는 게 목표입니다."

―루이 9단에게 바둑이란 무엇인가.

"바둑 둔 지 43년이 흘렀습니다. 내 인생에서 바둑을 뺀다면 딱 하나 남편 장주주만 남습니다. 내겐 그 둘뿐이고 둘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저는 바둑판 앞에 앉아 강자들과 함께할 때 너무도 행복해요. 그 옛날 이창호·조훈현·이세돌 같은 천하 고수들, 여자 꼬마 조혜연 등과 대국하고 장시간 복기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둘 수 있을 때까지 즐기는 기분으로 두려 합니다. 하지만 바둑만 하진 않을 거예요. 여행과 서예 등 취미도 소중합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바둑은 까맣게 잊어요. 서예는 경매에 내놓아 수입액을 자선 단체에 기부할 정도로 솜씨를 인정받습니다(웃음). 한·중 양국 여자 리그 팀 교류 같은 일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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