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다시 민주주의다]악마는 선의에 있다

2017. 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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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선한 사람이란 악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으며,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 존재가 가진 이런 한계를 인정한다면, 선한 사람에 대한 정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미지근한 주장은 악의 번성에 기여할 뿐이라며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단호하게 선을 옹호하고 악을 응징하겠다는 결의만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럴수록 타인의 선의를 의심하거나 그를 ‘악의 조력자’로 몰아 공격하기 쉽다는 데 있다.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C S 루이스는 자신의 선의를 확신할수록 ‘철저하게 악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악마란 ‘타락 천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천사는 구원받지 못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은 나약함 때문이라는 존재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구원자를 소망할 이유가 되지만, 천사는 애초에 타락할 수 없는 선의의 대변인이기에 그렇다. 선의라는 것이 내적으로 단단하게 다지려 노력해야 할 개인적인 과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선의가 앞세워지면 역설적이게도 선의는 줄고 적의는 커진다.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선의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다. 미국 헌법을 주도했던 제임스 매디슨의 그 유명한 말처럼, ‘인간은 천사가 아니고 천사에게 정부를 맡길 수 없다’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동료 시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위협할 수 있는 집단의 출현 가능성 때문에 정부를 만들게 되었고, 그런 정부가 전제정으로 퇴락하지 않도록 입헌적 장치 안에 묶어 둔 것이 민주주의다. 사적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박탈하면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되기에, 그 원인으로서 인간의 이기심을 제거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이기심을 다른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견제하게 하고, 공익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 결과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책임을 묻고자 했다.

요컨대 시민 각자의 권익을 최대화하려는 행위들이 사회 속에서 교차되면서 결과적으로 좀 더 선한 공익적 효과가 실현되는 방법을 찾고자 했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의 사례가 보여 주듯 때로 실패할 수 있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교정하고 사후적으로 개선해 가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 있었던 ‘선한 의지 논란’은 반성적으로 돌아볼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선의 여부가 논쟁이 될 때, 누구의 선의도 악의나 적의로부터 쉽게 희생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뒤 등장한 ‘분노’와 ‘정의감’ 그리고 ‘사랑’ 등의 선한 윤리적 언어들 역시 선한 기운을 북돋지 못했다. 정치에서 선의는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20세기 초 독일의 정치사회학을 대표하는 막스 베버는 정치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죄과 가운데 하나로 ‘자신이 옳기 위해 윤리적 문제를 끌어들이는 일’을 꼽았다. 그것은 누가 더 옳은지를 두고 의견을 양분시킬 뿐, 모순적 요구와 갈등적 상황 속에서 사회적 균형을 만들어 가야 할 정치의 기능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지금 적의와 증오는 한국 사회에 상존하는 최고 위험이다.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거리의 상황도 걱정이고, 탄핵 인용과 자진 하야를 포함해 모든 사안을 두고 격렬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시민들 사이에서 지지 후보를 경계선으로 적대의 감정이 커진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정치에서 싸움과 논쟁은 피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잘 싸우고 잘 논쟁하는 데 있다. 좋은 논쟁은 민주주의의 엔진이지만 그렇지 않은 논쟁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해야 될 논쟁은 누가 더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논쟁은 선의를 독점하고자 윤리적 언어를 이용하는 일이다. 어떤 경우든 논쟁은 ‘내가 대접받기를 원치 않는 방식으로 남을 대접하지 말라’라는 황금률에 기초를 두어야 하며, 반대편의 입장을 규정하는 데 있어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주장을 개진해야 한다. 반대편과의 사이에서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하며, 논의를 해도 결론이 좁혀지지 않거나 오해 때문으로 볼 수 없는 차이가 확인되면 그때는 조정을 시작해야 한다. 논쟁될 수 없는 것으로 싸우거나, 합의할 수 있는 쟁점마저도 갈등적 쟁점으로 만드는 것은 좋은 정치의 역할이 될 수 없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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