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베트남도 만드는 '구제역 백신'은 왜?

안준용 기자 2017. 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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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면 허겁지겁 대책.. 사태 잠잠해지면 흐지부지]
2011년 대란 때 "우리도 만들 것".. 6년 흘렀지만 전량 수입에 의존
1년에 900억원 넘게 사오면서 탁상행정에 우물쭈물 결정 미뤄
연구 인력 수의사 9명이 전부
정부가 나서 제조시설 서두르고 주변국과 '공동 백신은행' 필요

우리나라는 왜 태국, 베트남도 생산하는 구제역 백신을 만들지 못해 늘 수입에 의존하는 걸까. 소·돼지 347만마리를 살처분한 구제역 대란(2010년 11월~2011년 4월) 이후 정부는 "구제역 백신을 국산화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연구원 9명이 고작인 '구제역백신연구센터'를 2015년에 만든 것뿐이다.

2011년 당시 정부는 2015년까지 순수 국내 기술로 완제품을 생산해 농가에 백신을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6년이 흐른 지금도 백신 수요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1년에 900억원 넘게 백신 구입 비용으로 쓰면서 왜 국산 백신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제역이 발생하면 부랴부랴 대책을 발표했다가 잠잠해지면 손을 놓고, 결정은 미룬 채 우물쭈물해온 복지부동, 탁상 행정 때문이다.

'백신 코리아' 10년째 제자리걸음

정부가 구제역 백신을 국산화하겠다고 한 것은 백신을 수입에 의존하다간 2010~ 2011년 구제역 대란 때처럼 빠른 속도로 구제역이 확산할 경우, 축산 기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년 4월 구제역이 종식되자 백신 국산화 정책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졌다. 수익성을 따지는 국내 백신 생산 업체 간 공동 컨소시엄 구성이 제대로 안 됐고, 외국 항원 공급 업체는 국내 개별 업체에 기술 이전을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3년 이상 구제역이 잠잠한 사태가 이어지자 정부도 소극적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백신 생산 자체가 구제역 전파 원인이 될 수 있고, 향후 구제역 청정국이 됐을 때 백신 제조 설비가 유휴 시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014년 5월 획득한 청정국 지위는 두 달 뒤 경북 의성에서 구제역이 재발하면서 바로 상실했고, 이후 매년 구제역이 발생했다. 2013년만 해도 "2016년까지 백신 생산 시설을 완공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2020년으로 늦춰졌다. 2015년 경북 김천에 문을 연 구제역백신연구센터가 백신 개발·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연구 인력은 수의사 9명이 전부다. 당초 40명의 연구 인력을 배치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4개 연구실에 2명꼴로 일하고 있다. 센터는 정부의 준비 부족으로 2015년 8월 준공 이후 8개월 넘게 동물 임상시험에 필요한 생물안전등급(BL3, ABL3 등급) 인증을 받지 못해 백신 연구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백신 제조 시설 빨리 만들어라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백신을 개발해 내년쯤 시제품용으로 O형 바이러스 백신 20만~30만 두분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지만, 벌써부터 "외국산 백신보다 효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향후 A형 백신 등 다양한 혈청형의 백신을 차차 개발해나가야 하는데,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는 부실한 백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백신 생산은 결국 가축 질병 안보 관점에서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백신 제조 시설 건립을 서두르고, 연구 개발 인프라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조 시설 건립 전에 인근 국가와 함께 종합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국립항원백신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일본, 중국, 대만과 공동 백신은행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인배 농촌경제연구원 축산실장은 "일단 국내 발생 가능성이 높은 혈청형은 외국 백신 제조사와 항원뱅크 운영 계약을 해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백신 공급처도 다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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