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권의 흙과 문명]살처분은 문명의 수치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2017. 2. 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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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작년 겨울에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지금까지 30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살처분되었다. 2003년에 처음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이래 10년 동안 살처분된 가금류가 모두 합해 2500만 마리인 것에 비교하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숫자임에도 국민들의 반응은 지나치게 침착하다. 오히려 급히 수입된 미국산 흰 달걀이 어떠니 저떠니 하며 저울질하기에 바쁘다. 하도 어마어마한 사건들을 많이 봐온 탓에 감정이 다 말라버린 걸까? 아님,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살기로 작정을 했던지. 일부에서는 우리도 선진국 수준으로 동물복지법을 강화하자며 입법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중들은 오늘도 값싼 고깃집을 찾아 길거리를 헤맨다.

살처분을 도입한 나라들은 나름대로 동물복지법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두 법률이 동시에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가축이 원래 인간의 식품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나 병 걸린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이나 모두 식품의 안전성을 위해서이다. 물론 동물복지의 취지에 따르자면 죽이지 말고 치료해주어야 하지만 그건 돈이 많이 들어서 안 된단다. 팔기 위해 생산한 상품인데 생산비를 웃도는 짓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우리는 때때로 살처분과 같은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면 과연 이래도 될까 하는 고뇌에 휩싸인다. 살처분과 같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산업적 대량생산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석학과 전문가들이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나는 다 필요 없고 딱 한 가지만 해결하면 된다고 본다. 바로 대량생산 문제이다. 대량생산 문제를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막다른 골목에 처한 현대문명의 수명을 어느 정도 연장할 수 있다. 일찍이 인도의 간디는 현대문명의 모든 모순은 대량생산에서 나온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는 영국식 대량생산이 인도의 전통기업을 몰락시키고 마을공동체와 인성마저 파괴하고 있다며 인도 대중들에게 저마다 물레를 돌려 마을과 지역 단위로 자급경제를 이루자고 주장하였다. 간디의 실험은 막강한 영국의 산업자본주의 앞에서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간디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물레 돌리기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사실 제대로 된 동물복지가 실현되고 살처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혁명을 하자는 말과 같다. 먼저 살처분 상황을 피하려면 가축사육환경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 지금 같은 공장식 사육방식을 버리고 가축들이 흙 위에서 마음껏 뛰놀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기술적으로 다양한 사육방식을 마련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공장식은 무조건 버려야 한다. 공장식을 버린다는 것은 규모를 줄이자는 것이고, 이는 곧 경제의 축소를 의미한다. 대규모 생산을 통해 큰 이윤을 내는 것에서 소규모 생산을 통해 작은 이윤으로 만족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육류소비의 축소와 함께 식생활의 다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의 규모는 줄이면서 삶의 질은 높이자는 것인데, 아마도 주류경제학자들은 미친 소리라고 비웃을 것이다. 무한 경쟁시대에 규모를 줄이는 것은 바로 죽음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삶의 질은 경제가 살고 나서의 문제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무한경쟁에 대처하기 위해 끝없이 경제규모를 확장하는 한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나빠질 뿐이다. 몇몇 선진국들이 경제규모를 확장하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가 세계로 확장되던 시절이라 경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구생태계가 무너져 더 이상의 착취와 경쟁은 공멸을 가져올 뿐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 지역 내 또는 지역 간 협력과 유무상통을 통해 소규모 경제단위들이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육류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동물복지를 강화하고 살처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없다. 있다면 국가가 생산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육류섭취로 인해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판에 국민세금으로 육류소비를 부추기는 건 말이 안 된다. 사실 지난 몇 십 년간의 육류소비 증가는 전 시대의 가난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원래 우리 민족이 육식을 하는 민족이 아닌 데다 이젠 고기맛을 충분히 보았으니 건강과 함께 환경을 생각하는 식생활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공장식 축산의 위해성을 금연광고 수준으로 홍보하고 관계 법령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당연히 축사개조를 위한 최소한의 보조는 해주어야 한다. 다음에 정부는 GMO에 오염되지 않은 토착사료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전자조작식품을 가장 많이 먹는데 대부분이 육류를 통해 섭취한다. 이러한 조처들은 가축의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방송국은 싸구려 고깃집에 연예인을 불러들여 한결같은 표정으로 맛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먹방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한다. 사실 방송국이야말로 국민건강을 망치는 주범이다.

살처분은 문명의 수치다. 주기적으로 살처분을 하면서 청정국이니 어쩌니 떠드는 것은 신사복 바지에 똥을 지려놓고 점잔 빼는 것과 같다. 험한 경제환경 탓만 하지 말고 살처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 해야 한다. 큰돈 벌려는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가축을 기르면 나도 살고 너도 살며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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