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염병하네' 주인공 임애순씨가 겪은 특검 50일

송승환 2017. 2. 2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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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시민들 앞에서 나도 한 마디 할 수 있구나, 이 것이 민주주의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달 10일부터 서울 대치동 대치빌딩의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과 기자실을 청소해 온 임애순(63)씨는 특검팀과 함께 했던 50일 남짓한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 4일 촛불집회 연단에 오른 일을 꼽았다. 지난달 25일 특검에 체포돼 온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에게 “염병하네”라고 세 번 외쳐 유명해진 뒤 임씨는 집회에 참석했다.

임씨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4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사이다’ 발언자로 연단에 올라 “염병하네” 삼창을 다시 외쳤다. 임씨는 “주최 측의 계속되는 요청을 뿌리치다 큰 아들이 ‘내가 손 잡고 같이 가겠다. 온 국민이 원하는데 어머니 용기를 내시라’는 말에 참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27일 오전 일을 마친 임씨는 “정들자 이별이다.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이었다”며 그동안의 소회를 약 두 시간 동안 털어놨다.

◇“임씨는 시위꾼” 가짜 뉴스에 유명세 치러

임씨는 첫 집회 참석 경험에 대해“정말 많은 사람이 나와 축제처럼 함께 하는 분위기에 놀랐다. 여기 모인 모두가 나처럼 없는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만해지고, 우리 아이와 손주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고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참석 이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광주 5ㆍ18 민주화 유공자 가족’이라거나 ‘정의당 당원’이라는 주장이 SNS를 통해 퍼졌다. 급기야 “임씨의 정체가 전문 시위꾼이고 경북 성주에서 ‘사드배치 반대 시위’에 참석했다”거나 “1985년 ‘광주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의 주동자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임씨는 “어떤 방송국 PD가 찾아와 사실 확인까지 요청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렇게 모함까지 하나. 너무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 특검인지도 모르고 찾았던 대치빌딩

서울 봉천동에 40년째 살고 있는 임씨와 특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임씨는 “서울관악고용보험센터에서 ‘일손을 급히 찾는다’고 소개해 가 보니 정문에 경찰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의경이 특검 사무실이라고 이야기해줘 그때 알았다”고 했다.

임씨의 업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특검 사무실이 있는 대치빌딩 17~19층과 기자단이 사용하는 13, 14층을 청소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수레에 쓰레기 봉투를 가득 채워 지하 4층으로 옮겼다. 임씨는 “건물이 오래돼 화장실에서 물이 많이 새 그냥 두면 냄새가 정말 심한 게 어려웠다”며 “특검팀이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아침마다 물기도 닦아내고 박스도 새로 깔아 돕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씨가 대치빌딩 13층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우상조 기자
기자들도 접근이 통제되는 17~19층을 오르내리다 보니 임씨의 눈엔 특검팀의 애환이 그대로 들어왔다.

“어느날 아침엔 한 젊은 남자 검사가 코피가 쏟아져 화장실에 왔더라. 밤새 집에 못 간 모양이더라. 검사ㆍ기자ㆍ의경 모두 내 아들 같아 안타까웠다. 누구 때문에 다들 이렇게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잠시 찌푸려진 임씨의 미간은 이규철 특검보 이야기가 나오자 펴졌다.

“이 대변인은 가까이서 봐도 어찌나 잘 생기고 정중한지. 이 닦다가도 청소하러 들어가면 칫솔을 빼고 90도로 인사를 해요. 팬이야 내가.”

◇특검 수사 기간 연장 무산에 일자리 사라져

임씨는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 무산을 특검 수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으로 꼽았다. 그는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특검 조사 받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도망쳤다. 나라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어른이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이걸 보고 누가 약속을 지키고 살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치빌딩 14층 브리핑실에서시민들이 보낸 꽃바구니를 치우고 있는 임씨. 우상조 기자
28일로 특검 수사기간이 종료하면서 임씨도 대치빌딩을 떠나야 할 처지다. 임씨를 고용한 용역업체가 수사 기간 연장 불발이 전망되자 지난주 “3월 24일까지만 일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임씨는 “수습 기간 3개월도 안 채우고 나가라 하니 화도 났지만 일이 없어졌는데 사람을 더 쓸 수 없다는 업체 입장도 이해는 된다”며 “일이 손에 익을만 하면 그만 둬야하는 삶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임씨는 “얼마전 국회에선 청소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부러워했다. 청소노동자도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않고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참 좋겠다”고 바랐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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