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눈]물러난 캐통령과 버티는 대통령의 나라, 대한민국

박충훈 2017. 2. 2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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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언니와 박대통령, 붙잡아도 떠난 이와 떠밀어도 버티는 이의 정반대 행로
박근혜 대통령과 캐리. 이미지출처 = 연합뉴스, 유튜브


#1
대통령이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말려도 소용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재임 시절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얻었고 미래를 꿈꿨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그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은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음모설을 제기했다. 힘없는 그녀가 자신이 속한 곳의 압박에 못이겨 쫓겨난다고 했다. 그녀가 속했던 조직은 본인의 의지로 일을 관두게 됐음을 알아달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그녀가 하던 일은 미인대회 출신 여성이 맡게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조 대통령만큼은 못하다고, 그녀가 계속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넷에선 하루에도 수 백 개씩 팬들의 그리움 가득 담긴 글이 올라온다. 그녀는 '캐통령'이다.

#2
대통령이 좀체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누군가 음모를 꾸민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재임 시절 수많은 업적을 쌓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건 그녀의 친구가 남긴 분변(糞便) 뿐이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절망을 얻었고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아이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그녀의 은퇴를 두고 드넓은 광장에 서로 으르렁대는 두 세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의견은 분열됐다. 대통합이 아니라 대분열이었다.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힘없는 그녀가 북쪽 나라의 계략에 속은 사람들 때문에 권좌에서 쫓겨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그녀도 덩달아 제발 나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녀가 하던 일은 이제 또 다른 누군가가 맡게 될 것이다. 그 누구는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르다가 뒤돌아선 사람일 수도 있다. 과거에 그녀에게 쓴맛을 본 사람일수도, '선한 의지'로 대화하길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리 못해봤자 원조 대통령만큼 못하겠냐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에선 하루에도 수 만 번씩 그녀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팬들과 그녀가 빨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패를 갈라 싸운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지난 17일 인기 유튜버 캐리가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캐리언니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강혜진(27)씨는 유튜브채널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에서 완구 리뷰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캐통령(캐리+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강씨는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키즈 MCN 사업을 추진하던 권원숙 캐리소프트 대표를 만나 창업 멤버가 됐다.

처음엔 묵묵히 로봇 장난감을 조립하던 그녀는 어느 날부터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목소리를 한톤 높이고 말수를 늘렸다. 캐리언니의 적극적인 활약 덕에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2014년 창업 초기 매출이 월 수십만원에 불과했지만 3년만에 매출 30억 당기 순이익 5억원을 달성했다. NHN엔터 등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대학 졸업 후 행사 사회자를 전전하던 강혜진씨가 인터넷 영상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창조경제'를 꽃피우는 순간이었다.

지난 주 강씨가 물러나고 새로운 캐리언니가 등장한다는 소식이 유튜브 '캐리앤 토이즈' 채널에 나왔을 때 많은 아이들이 울먹였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TV를 등지고 누워 하루종일 운다"는 엄마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그녀의 '자연스럽게 퇴임하기'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캐리가 은퇴를 발표하는 '캐리 앤 토이즈' 채널 개편 영상에는 27일 현재 '좋아요'가 1만개 미만인 반면, '싫어요'는 10만 여개에 이른다. 아이들의 동심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교체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유재석을 무한도전에서 하차시키면서 대충 인사만 하고 끝낸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일각에선 강 씨가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소속사의 눈 밖에 났다는 식의 음모론도 피어났다. 현재 캐리의 빈자리는 2대 캐리가 아닌 '권한대행' 유튜버 '엘리'가 메꾸고 있다. 강씨는 현재 자신의 하차에 대한 숱한 논란에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 대한 해명보다 차분히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걸 택했다. 그녀는 5월중에 KBS에서 방영하는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을 예정이다.


떠날 때가 다가왔지만 캐리언니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탄핵 심판이 2주 앞으로 다가온 박근혜 대통령 얘기다. 캐리처럼 그녀도 논란이 된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불러일으킬 소용돌이의 크기는 확연히 다르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고 최종변론을 포기한 박 대통령을 두고 야권에서는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성화다. 27일 탄핵 심판 최종변론이 있었던 헌재 대심판정에서 국회측 대리인 황정근 변호사는 "박 대통령이 아직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며 "부끄러움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때 제대로 알고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캐리언니의 팬들만큼 야무지게 그녀의 곁을 지킨다. 대통령 대리인단 손범규 변호사는 아예 국민분열을 막기 위해 국회의 탄핵 소추를 각하시켜야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는 매일같이 극우 네티즌이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 경고를 날리는 중이다.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은 삼일절 태극기 집회에서 서울 시민의 절반 가까운 '500만명'이 거리를 가득 메울 것이라고 호언하기도 했다.

캐리언니와 박 대통령 모두 떠나는 시점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미래를 좇는 자와 과거를 감추려는 자의 침묵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 떠나는 자는 꽃길만 걸어도 모자랄 만큼 아쉬움 섞인 응원과 격려가 쏟아진다. 대통령에게 웃으며 떠난 캐통령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이유다.

디지털뉴스본부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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