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흥민∙자철∙승규의 3色축구

배진경 2017. 2. 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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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배진경] 스마트폰의 MP3 플레이어 앱을 이용해 음악을 즐겨 듣는다. 앱의 기능은 유용하다. 장르와 아티스트, 심지어 작곡가까지 선별할 수 있도록 구분해 놓아 취향대로 골라 들을 수 있다. 날씨나 기분에 따라 선곡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재미로 따지자면 ‘셔플’ 기능만 한 게 없다. 진행 순서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디 밴드의 노래로 시작해 뮤지컬 앨범을 리핑해 놓은 곡으로 장르가 바뀌는가 하면, 록으로 넘어왔다가 별안간 CCM이 나오는 식이다. 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단숨에 환기할 수 있다.


예측 불가의 변주는 축구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한다. 정해진 행로를 이탈하는 이들에게서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길을 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고유의 걸음’으로 좌표를 찍는 이들이다. 한국축구에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손흥민이 떠오른다. 여전히 ‘진행형’인 그의 성장기와 변곡점을 늘어놓는 건 새삼스러울 정도다. 구자철은 또 어떻고. 그가 처음 제주를 떠나 독일로 향했을 때, 차범근-차두리 부자의 뒤를 이어 분데스리가에서 장수하는 선수가 될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김승규도 마찬가지. 울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안주하는 것보다 일본 J리그를 찍고 또 다른 무대를 꿈꾸는 골키퍼가 되는 길을 택했다. 뻔하지 않아서 재미있다.

세 선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제2의 누구누구’가 되기보다 스스로 온전히 서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다. ‘내가 최고니까(Never Follow)’라는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생각이다. <포포투>가 이들을 차례로 만났다. 영국과 독일, 일본에서 따로 또 같이 실어온 3인의 인터뷰를 옮긴다. 공격수부터 미드필더, 골키퍼로 연결되는 ‘장르’는 일견 예상 가능하지만, 플레이 모드는 ‘셔플’이다!


# ‘제2의 누구’도 아닌 ‘제1의 나’

누구에게나 인생의 롤모델이 있다. 축구선수라면 어린 시절의 우상을 일생의 교본으로 삼기도 하고, 직접 마주하는 선배를 보며 발자취를 따르기도 한다. 자신의 고민이 더해지는 지점에서 곧 성장이 시작된다.

손흥민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선수는 알려진대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테크닉과 골 감각, 경기 열정 모두 배움의 대상이었다. 손흥민은 “호날두의 플레이를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기술을 연마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무회전 프리킥도 그런 고민과 반복된 훈련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발목 힘이 굉장히 좋아야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월드컵 2차 예선(2015년 6월16일)에서 미얀마를 상대로 무회전 프리킥을 성공한 적 있다. 그때의 골맛은 잊을 수 없다.”

반면 구자철은 특정 선수 한두 명을 교본으로 삼지 않았다. “여러 선수들의 영상을 보면서 따라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체득한 경험을 더 신뢰하는 쪽이다. “항상 누군가를 보면서 배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플레이들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김승규는 안정감에서 최고의 신뢰감을 주는 골키퍼들을 따랐다. 에드윈 반 데르 사르와 잔루이지 부폰이다. 신체 조건이 비슷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 “하고 싶어하는 동작들을 잘하는, 안정감 있는 이들”이었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신체적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한 그는 공중볼 캐치에 특별한 자신감을 보인다. “공중볼을 잡으러 나가려면 판단력, 점프력, 위치 선정 모두 중요하다. 크로스 잡는 훈련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 고유의 색깔을 내는 선수가 돼야 한다. 손흥민은 “차범근, 박지성 등 대선배님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호날두를 롤모델로 열심히 훈련 중”이라면서도 “제2의 호날두가 되기보다 제1의 손흥민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경기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든, 경기 외적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든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구자철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그도 어느새 자신보다 더 어린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 “선수로서 자신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 과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 3색(色) 리그-3색 활약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시대다. 그렇다고 해도 구자철과 손흥민, 김승규의 행보를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자철은 분데스리가에서 ‘장수 미드필더’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손흥민은 난다하는 공격수들이 즐비한 프리미어리그에서 꾸준히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김승규는 J리그에서 한국 골키퍼들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중이다.

구자철은 최근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로부터 계약 연장 요청을 받았다. 팀에서 절대적인 신뢰감을 얻고 있다. 2012-13시즌 볼프스부르크에서 임대 이적으로 연을 맺은 이래 아우크스부크르의 ‘탈(脫) 강등’ 역사를 주도했던 에이스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었던 수비수 홍정호는 “이 팀에서 자철이 형은 신(神)적 존재”라고 전하기도 했다. 사령탑이 수 차례 바뀌는 중에도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 팀이 부진한 경기력과 저조한 득점력으로 위기를 겪었을 때도 활약했다. 지난 17일 베르더브레멘전에서는 1골1도움 활약으로 팀의 3-2 역전승에 기여했다. 해결사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크지 않다. “바움 감독 체제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면서 공격적인 지역으로 나갈 수 있는 연결고리를 하고 있다”며 “언제든 득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땐 득점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독일 진출 6시즌째.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얼까. “독일이 집처럼 편안하고 분데스리가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제는 어떤 상대를 만나든, 내 맨투맨이 누구든 내가 상대보다 ‘잘할 수 있다’, ‘이 선수보다 낫다’는 자신감이 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세상. 구자철은 이렇게 정리했다. “TV로 보는 것과 달리 굉장히 몸싸움이 강한 무대다. 피지컬적으로 한국에서 느끼지 못하는 경기를 많이 한다.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적응을 위해 내 자존심을 전부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적응을 마친 지금, 독일은 그와 계속 함께할 무대가 될까? 구자철은 언젠가 “최고 무대로 옮기고 싶다”며 “EPL이 최고”라고 말한 적 있다.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반드시 영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옅어졌다. “예전에는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만약 분데스리가와 EPL에서 비슷한 오퍼가 있다면 아마 분데스리가에 남지 않을까 싶다. 6년 동안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내 생각이다.”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2년차다. 이적 첫해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특유의 패기로 정면 돌파했다. “난 모험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는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시절의 득점 감각을 회복했다. 2년 사이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EPL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뛰다 보니 팀에 융화되는 법, 전술에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고민하고 있다.” 동료들과는 소통을 통한 협업을 고민한다면, 적으로 만나는 상대들을 통해서는 성장을 체감한다. “맨유, 첼시, 아스널 같은 세계 최고 클럽들과 경기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자 기회다. 큰 무대에 뛰면서도 긴장하지 않고 ‘내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배짱이 늘었다. 또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리그컵, FA컵 등 많은 대회를 소화하면서 자기관리하는 요령이 생겼다.”

손흥민은 지난해 9월 EPL 사무국에서 선정한 ‘이달의 선수’가 됐다. 한달 사이 4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주도했고 득점이 없었던 경기에서도 맹활약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수상이라 의미가 컸다. 스스로에게도 큰 격려가 됐다. “토트넘에 와서 가장 기뻤던 순간 중 하나였다”고 했다. “이달의 선수상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팬들과의 약속이자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지난달 29일 시즌 10호골, 11호골을 연달아 터뜨리며 작은 고지를 밟았다.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털어놓는다. “분데스리가 시절에 팀의 주축 선수가 된 후부터는 매 시즌 10골 이상 기록해왔다. 지난 시즌 토트넘으로 이적하면서 이 기록이 잠시 멈췄는데 이번 시즌부터 다시 이어가고 싶다.” 언젠가는 EPL 정상에 오르는 꿈도 꾼다. “득점왕에 도전해보고 싶다. 아시아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두 시즌 째 경험해보면서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진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드는 선수의 출현이 반갑다.


김승규는 지난 시즌 J리그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울산현대 유스 출신으로 10대에 프로 데뷔를 신고하고 울산의 ‘넘버 1’으로 입지를 굳히던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적이었다. 결과적으로 판단의 폭이 넓어졌다. 지난 1년 동안 “축구를 다시 배웠다”고 할 정도다. 골키퍼로서 경험하는 축구 스타일이 달라졌다. “한국에선 킥 위주로 경기를 했는데 일본에선 기본적으로 골키퍼 발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골키퍼의 발기술이 대두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빌드업을 중시하는 현대축구에서 손만큼 발을 잘 쓰는 골키퍼가 높이 평가된다. 빌드업의 시발점이 아니라 ‘방어자’로서 골키퍼 본연의 역할을 생각해도 J리그 스타일은 새로웠다. “일본은 중거리슛이 별로 없다. 만들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둘 다 편하지는 않다. 다양한 팀들을 상대해서 도움이 된다. 어떤 팀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최근 국내 골키퍼들의 일본 이적이 눈에 띄게 늘었다. 김승규를 비롯 김진현, 정성룡, 이범영, 권순태 등 대표급 자원들이 J리그 소속이거나 일본에서 뛰었다. 기본적으로 한국 골키퍼들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편이다. 김승규는 “일본 골키퍼의 수준이 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좋은 골키퍼들이 많지만 한국 선수들을 더 좋게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사실 스타성에 관한 대우나 조건만 생각한다면 울산에 남을 수도 있었다. “울산에서 제시한 조건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축구를 해보고 싶어서 일본으로 왔다. “한국 골키퍼들이 잘하니까 계속 (일본 클럽들이)찾는 것 같다.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는 한데, 여기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선수로서) 업그레이드 되면 그런 아쉬움도 사라지지 않을까.”



# 2018러시아월드컵, 한국축구의 ‘위닝 멘털리티’

서로 다른 리그에서 각각 경쟁하는 이들이지만 늘 하나로 시너지를 내는 순간을 기다린다. 대표팀에서 재회할 때다. 한국축구는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준비하는 중이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을 당연시하는 대중의 기대는 전승, 압승, 쾌승이 아니면 좀처럼 충족되기 어렵다. 최종예선 반환점을 돌기까지 순탄치 않았던 여정에 우려의 시선도 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3월 중국 원정부터 남은 5경기에서는 내용과 결과에서 팬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세 선수의 기대감도 팬들과 다르지 않다. 승부의 세계에서 100%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동안 대표팀을 거쳐간 선배님들이 국제 대회에서 보여준 저력들이 현재까지도 대표팀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손흥민)이다. 구자철은 “우리에게 위닝 멘털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움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우리 선수들은 어떤 고비가 와도 결국 무너지지 않고 이겨낼 것”이라며 동료들에 믿음을 보냈다. 김승규는 “선수들 모두 월드컵에 못 간다는 걸 상상해본 적 없다”고 단언했다. “상상하기도 싫다. 월드컵 (연속) 진출 기록을 깨고 싶지 않다. 올해부터 다시 시작인데 작년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최전방에서 골문 앞까지, 세 선수의 자신감이 아시아를 넘어 러시아로 향하고 있다.

사진=아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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