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와 하루키에서 배우는 '창작의 비밀'

김기철 2017. 2. 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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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말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권진아 옮김, 마음산책 펴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펴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14]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중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이라는 단편소설집이 있다. 1927년에 출간된 하드보일드 초기 작품인 이 소설집에는 인생이라는 링 위에서 싸우다 쓰러진 14명의 남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하루키/사진제공=현대문학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4년 단편소설집을 출간했는데 그 책의 제목 역시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세상과의 싸움에서 카운터블로를 맞고 휘청거리는 남자들이다. 눈치챘겠지만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은 헤밍웨이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작가 서문'에서 하루키는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키의 이야기처럼 하루키와 헤밍웨이는 글쓰기의 방법, 문학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서로 닮았다. 어쩌면 하루키가 헤밍웨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배운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모두 삶에서건 문장에서건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장의 리듬은 삶의 리듬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헤밍웨이/사진제공=마음산책
 <헤밍웨이의 말>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 두 사람은 창작의 비밀을 들려줬다. 글쓰기뿐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1. 창의성은 내적 규율에서 나온다
헤밍웨이와 하루키의 하루는 방학이 시작될 때 초등학생이 그리는 생활계획표처럼 반듯하고 단순하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들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있다. 얽매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생활이 아주 불규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동의 리듬에 따라 밥 먹고 술 마시고 책 읽다가 번개처럼 번뜩이는 영감이 떠오르면 그때 비로소 글을 쓰고 그것이 작품이 되는 것이라고 짐작한다. 실제 작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정오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0.5마일 수영을 하고, 저녁에는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하루키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0㎞를 뛰고 매일 일정한 시간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쓴다.

 "소설이나 단편을 쓸 때면 매일 아침, 가능하면 해가 뜨자마자 글을 씁니다. 방해할 사람도 없고, 날은 서늘하거나 춥고, 와서 글을 쓰다 보면 몸이 더워지죠. 전날 써놓은 글을 읽어봅니다. 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을 때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계속 써나가요. 아직도 신명이 남아 있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지점까지 쓴 다음, 거기서 멈추고 다음 날까지 꾹 참고 살다가 다시 시작합니다."(헤밍웨이 29쪽)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하루 꾸준히 끌어당겨 자꾸자꾸 뒤로 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입니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에 해치울 수는 없습니다."(하루키, 180쪽)

 창의성은 이처럼 반복되는 내적 규율과 리듬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다.

하루키/사진제공=현대문학
2. 매일 적금하듯 결과물을 쌓아 올려라
헤밍웨이와 하루키는 매일 일정한 양만을 쓴다. 헤밍웨이는 오랫동안 매일의 작업을 곰꼼하게 기록했는데 하루의 생산량이 400단어에서 700단어 정도를 유지했다. 최대한 많이 써도 1000단어를 넘지 않았다. 하루키 역시 하루 200자 원고지 20매씩 규칙적으로 쓴다.
 "작가는 우물과 비슷해요. 우물은 작가들만큼이나 여러 종류가 있죠. 중요한 건 우물에 깨끗한 물이 있는 거고, 그러자면 우물이 마르도록 물을 다 퍼내고 다시 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규칙적인 양을 퍼내는 게 낫습니다."(헤밍웨이 36쪽)

 글이 잘 써진다고 무리해서 많은 양을 한꺼번에 써버리지도 않는다. 자제력이 필요한 것이다. 야구 선수들에게 보통 슬럼프는 컨디션이 좋을 때 찾아오는데, 욕심이 앞서 절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쓸 수 있을 때는 그 기세를 몰아 많이 써버린다든지, 써지지 않을 때는 쉰다든지 하면 규칙이 깨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씁니다." (하루키, 150쪽)
헤밍웨이/사진제공=마음산책
 "(글을 멈추면) 아무것도 상처를 줄 수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죠. 여기서 아무것이란 다음 날 다시 글을 시작할 때까지 어떤 것도 그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힘든 일이죠."(헤밍웨이, 29쪽)

3. 만족할 때까지 고쳐라
 소설가 김연수는 에세이집 '소설가의 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쓰기라는 동사가 있다면 그런 뜻이어야만 한다. 누군가 '소설쓰고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먼저 글을 썼고, 지금은 그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시 쓰고 있습니다'라는 뜻이어야 한다." 끊임없이 문자를 고쳐 쓰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라는 얘기다.

 헤밍웨이도 하루 400~700단어를 쓴다고 했지만 이 정도 쓰기 위해서는 연필 7자루를 2번 깎아 써야 한다고 했다. 헤밍웨이의 그 하드보일드는 이처럼 여러 번 다듬은 뒤에 태어난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 마지막 페이지는 서른아홉 번을 다시 쓰고야 만족했죠. "(헤밍웨이, 30쪽)(헤밍웨이, 29쪽)
 "한 문장을 수없이 다시 읽으면서 여운을 확인하고 말의 순서를 바꾸고 세세한 표현을 변경하는 등의 '망치질'을 나는 태생적으로 좋아합니다. 교정지가 새까매지고 책상에 늘어놓은 열 자루 정도의 HB 연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볼 때마다 큰 희열을 느낍니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일이 진짜로 재미있어요. 하염없이 하고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하루키, 164쪽)(헤밍웨이, 29쪽)

4. 주위를 관찰하라
헤밍웨이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서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첫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만약 헤밍웨이가 쿠바 아바나 근처에 살지 않았다면, 그래서 코히마르 항구에 가보지 않았다면 '노인과 바다' 역시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경험'은 소설가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겪었는데 이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

 "분명 불타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건 훈련된 작가에게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순식간에 배우죠. 그 경험이 쓸모 있을지는 생존에 달려 있어요."(헤밍웨이 61쪽)

 하지만 세상 일을 모두 경험할 수는 없다. 관찰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관찰을 멈추면 끝장난 거죠.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알고 있고 보아온 것들이 모인 커다란 저장고로 들어갑니다. "(헤밍웨이, 57쪽)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사진제공=현대문학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점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은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이런 멋진 직업, 이거 말고는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하루키, 140쪽)

5. '빙산의 원칙'을 지켜라
마음 속 저장고에 쌓인 경험과 관찰의 결과물을 바로바로 꺼내서 작품에 활용하고 싶겠지만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억의 저장고 속에서 어떤 기억은 다른 기억과 결합해 살이 붙으면서 구체화되기도 하고 다른 기억들은 자연도태되기도 한다.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할 일은 재빠른 결론을 추출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축적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원재료를 많이 저장해둘 '여지'를 자기 자신 속에 마련해둘 일입니다." (하루키, 122쪽)

 활용되지 않는 기억들이라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억의 퇴적물은 그 무게만으로도 이야기를 한다. 헤밍웨이는 이것을 '빙산의 원칙'이라고 불렀다.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생략하면, 그때는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요. (중략)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의 빙산을 만드는 겁니다."(헤밍웨이, 58~59쪽)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 문체는 빙산의 원칙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지만 독자들은 그 문장 아래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의 말/사진제공=마음산책
6. 체력이 창조적 노동의 원천이다
헤밍웨이와 하루키는 모두 운동광이다. 헤밍웨이는 매일 수영을 했고 또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는 권투선수의 스파링 파트너 일로 돈을 벌었다. 하루키는 매일 일정한 거리를 뛸 뿐 아니라 보스턴마라톤 등에서 풀코스를 여러 차례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다. 그들이 이처럼 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한 몸이 창의성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모든 사람에게 정력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것만이 훌륭한 삶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운동선수가 된 사람은 누구든 몸을 알맞게 유지해야 해요.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거든요. 몸이 둔해지면 마음도 둔해질 수 있어요. 영혼도 둔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야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헤밍웨이, 77쪽)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과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하루키 183쪽)

7. 무엇보다 '즐겨라'
하루키는 글을 써온 지 35년이 넘도록 한 번의 슬럼프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하루키는 "즐겁고 자유롭게 써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즐기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불변의 진리다.

 "'자, 이제부터 뭘 써볼까' 하고 생각을 굴릴 때 정말로 행복합니다. 소설이 안 써져서 고생한 경험은 없습니다. 만일 즐겁지 않다면 애초에 소설을 쓰는 의미 따위는 없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퐁퐁 샘솟듯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키 57쪽)

 헤밍웨이는 인터뷰에서 "글을 쓰는 시간들이 즐거우냐"는 질문을 받자 짧게 대답했다.

"굉장히요."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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