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소신과 변신 사이..시험대 오른 안희정

남승모 기자 입력 2017. 2. 27. 13:45 수정 2017. 2. 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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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로 치솟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지지율이 멈춰 섰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한 안 지사는 같은 충청권 출신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출마 포기와 대연정 제안을 통해 충청과 중도 보수를 대거 흡수하면서 이달 중순 20% 벽을 돌파하는 등 기염을 토했습니다. 특히 전통적 지지층과 괴리된 발언도 서슴지 않는 등 ‘소신’으로 무장한 ‘직업 정치인’임을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안 지사의 거침없는 상승세는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 선의’ 발언 논란을 기점으로 꺾였다는 분석입니다. ‘반어적 표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설사 선의였다고 해도 법을 어긴 만큼 잘못했다는 거다.’ 등등의 해명이 이어졌지만 친정인 더불어민주당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사과’했습니다.

● '우클릭' 논란에 安 "소신"

안희정 지사는 그동안 이른바 우클릭 논란에 시달려 왔습니다. 어차피 민주당 지지층을 놓고 싸워봐야 문재인 전 대표를 이길 수 없는 만큼 중도 보수 쪽으로 지형을 넓혀 승부를 보려는 것 아니냐는 게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민주당 경선이 당원뿐 아니라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완전국민경선 방식으로 치러지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습니다.

안 지사의 발언은 이런 의심을 키우는 근거가 됐습니다. 촛불집회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해 12월, 안 지사는 "대중의 분노로 작두를 타면 한 시대를 폭력의 시대로 만든다"며 냉정한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또 이달 초에는 “다수가 함께 협동해서 정부를 운영해야만 국민들이 원하는 안 싸우는 정치 가능하다.”면서 야권만 묶는 소연정을 넘어 여권까지 함께하는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탄핵 책임론 한가운데 선 새누리당까지 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에 다른 야권 주자들은 물론 같은 친노 뿌리를 가진 문재인 전 대표도 찬성하기 어렵다며 비판에 나섰지만 안 지사는 자신의 주장이야말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 정신이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거친 비판과 비난 속에 ‘민주주의’, ‘협치’에 대한 안 지사의 ‘소신’은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 지지율 정체 속 잇단 '선명성' 발언

하지만 ‘선한 의도’ 발언 논란 이후 안 지사의 발언에서 변화가 감지됐습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다음엔 혁명밖엔 없다”고 한 문재인 전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됐던 지난해 12월, 안 지사는 “탄핵심판 청구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경우에도 헌법의 틀과 질서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발언은 대비를 이뤘고 야권 지지층의 비판이 있긴 했지만 안정감 있는 주자라는 평가도 잇따랐습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난 22일, 안 지사는 같은 질문에 “국민의 상실감을 생각하면 ‘당연히 존중해야죠’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국민의 분노가 사회에서 표현되는 것은 헌법적 권리”라고 말했습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탄핵 기각돼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반면 ‘혁명’을 언급했던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 결과에 대해서 정치인들은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을 하나로 묶어내는 그런 역할들을 정치가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주장이 정반대로 뒤바뀐 셈입니다.

개혁에 대한 안 지사의 발언 강도도 달라졌습니다. 안 지사는 지난 24일 전남에서 "오직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으로 헌법을 유린한 모든 낡은 정치 세력을 일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헌법을 강조하면서 대화와 통합을 얘기하는 것과 정의를 세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좀처럼 사용하지 않던 ‘적폐 청산 ‘, ‘일소’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습니다.

안 지사는 26일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과의 간담회에서도 "국민이 명령한 적폐 청산과 관련해 검찰, 언론, 재벌, 사학, 청와대의 제왕적 권력 체제라고 하는 5개 분야의 대표적 적폐를 어떻게 청산할지도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대청소론’과 닮아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왔습니다.

● '소신' 이미지, 독(毒) 되나

지난 19일 ‘선한 의도’ 발언 논란 이후 안희정 지사의 발언이 변했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중론입니다. 무엇보다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지지율 상승도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안 지사의 지지율이 최근 당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상당폭 빠졌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지사가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해 정치적 상황에 맞춰 자신의 소신을 바꿨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소신’이 반드시 단 한 가지 메시지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같은 소신에서 나온 발언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분에 방점을 뒀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메시지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연정’과 ‘적폐청산’이 상충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적폐청산을 하기 위해서라도 대연정 같은 정치적 협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논리적 모순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치란 진심만 갖고는 되지 않는다는 게 정치 원로들의 가장 오래된 충고 가운데 하나입니다. 직업 정치인을 자처한 안 지사조차도 이런 논란 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걸 보면 정치가 정말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특히나 안 지사가 ‘소신’ 이미지를 앞세워 바람을 탔던 터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더욱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의 ‘소신’이 역경을 견뎌내는 버팀목이 될지, 아니면 정체성 논란의 빌미가 되는 독(毒)이 될지 이번 민주당 경선이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남승모 기자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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