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고 신입생 첫 '입학포기'.."국정교과서 수업 못 받겠다"
[경향신문]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경산 문명고에서 첫 ‘입학 포기’ 사례가 나왔다.
문명고 입학 예정 신입생 학부모 ㄱ씨(48)는 27일 오전 학교 행정실을 찾아가 아들을 입학시키지 않겠다며 등록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ㄱ씨는 지난달 등록금 41만 9320원(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대금)을 학교에 납부한 상태였다. ㄱ씨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것에 반발해 학교 측에‘입학 포기’ 의사를 밝혔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해 줄 것을 문명고가 신청한 이후,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입학 포기나 전학 등의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ㄱ씨는 “(학부모와 학생의) 반발이 심하니까 학교가 연구학교를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버틸 줄은 몰랐다”면서 “아이 역시 교사들이 이 사안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한 발언만 하고 해결 의지가 없다는 데 실망을 많이 했다. 아이가 오히려 입학 포기에 적극적이었다. 검정고시를 보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립학교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하다”면서 “다만 지금도 국정교과서 철회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부모 및 학생들과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문명고 입학생 187명 가운데 처음으로 학교를 이탈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이른바 ‘탈(脫) 문명고’ 움직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현재 복수의 학부모는 학교 측이 국정 역사교과서 도입을 강행할 경우 전학 또는 자퇴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문명고 국정교과서 지정철회 대책위원회’ 30여 명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학교 교문 근처에서 침묵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각 전교조 경북지부와 대구지부를 비롯한 교육단체 등은 문명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강행에 대해 비판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학교 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김명동 전교조 경북지부장은 “지금 이 사태는 이사장 등 ‘교육 모리배’들이 신성한 학교를 개인의 것인양 사기를 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됐다”면서 “다행히 학생들은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내자”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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