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 물결, 문학장에 일어난 변화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입력 2017. 2. 2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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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으로 문학 읽기 ⑩] '한국문학(장)의 민주주의와 여성문학 2.0'

가히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2년 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졌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면서, 문화를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평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성균관대 문과대학 CORE사업단이 후원하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도 그 흐름 중 하나다. 한국문학과 민주주의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이 강의는 13일부터 24일까지 평일 열흘 동안 이어진다. 총 10강을 지상중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방탕하고 문란한 '신여성'
② '독립적 존재' 대우 못 받은, 식민지 조선의 '배운 여자들'
③ 70년 전,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여성들
④ 소녀상, 누드, '눈길'과 '귀향'… 위안부가 표현되는 방식
⑤ '교란된' 젠더, 이성애 거부하는 남성과 '남장' 여성의 등장
⑥ '작가' 김승옥은 왜 작품에서 거듭 자기 죄를 고백했을까
⑦ 평단이 혹평한 여성소설 '생의 한가운데', 대중은 열광했다
⑧ "국가가 인준한 1등 시민"인 '군인'과 그 나머지
⑨ 공지영·김인숙·권여선이 기록한 '386세대의 후일담'
⑩ 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 물결, 문학장에 일어난 변화
<끝>

2015년부터 한국사회의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페미니즘' 물결은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갔다. 약자와 소수자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콘텐츠이나, 여성혐오적 발언을 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때 만능 답안이었던 '왜 모든 걸 다큐(볼 때처럼 진지한 태도)로 보느냐'는 항변은 힘을 잃었다. 누군가를 끌어내려 '웃음'과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이 많아진 덕이다.

한국문학장도 이 흐름을 비껴가지 않았다. 오혜진 연구자(성균관대)는 '포스트-아포칼립스와 뉴웨이브: 한국문학(장)의 민주주의와 여성문학 2.0'을 통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지금 이 순간'의 문학이자 '2.0'으로 불리는 여성문학에 대해 발표했다.

◇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의 탄생

과거 영미권 연구에 따르면, 여성 관련 문학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문학인 여류문학(feminine literature),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사람이 쓴 여성문학(female literature), 저자 성별이 어떻든 여성해방적 의식을 내세우는 여성해방문학(feminist literature) 등이다. 또, 페미니스트의 문학은 고발→재해석→해방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2010년대의 '페미니스트 문학'은 이 중 어느 단계까지 와 있을까. 오 연구자는 '여성문학 2.0'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맞은 현재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지난해 11월, 어떤 무리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광장에 나왔다. (사진=김수정 기자)
2010년대, 특히 2014년 이후는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페미니스트'로 명명할 수 있는 이 집단은 '경험'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주체화했다.

전 생애주기에 걸쳐 '여아낙태-된장녀-김치녀-보슬아치-맘충' 등 여성혐오적 멸칭을 경험했고, 세월호 참사와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통해 국가적 안전망이 부재하고 여성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이 실존함을 깨달았으며, 소라넷과 몰카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일상적으로 노출된다는 '공통 경험'을 지녔다는 것이 오 연구자의 설명이다.

오 연구자는 "과거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성행했고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채 촛불집회에 나온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게 2014년 이후 우리의 상황"이라며 "이때의 새 페미니즘 문학을 생각하려면 세대론이 아니라 '경험' 중심으로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공통의 경험으로 우리가 각성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여성소설의 '업데이트'와 남성문인들의 변화

오 연구자는 2010년대 이후 여성작가가 쓴 여성소설은 업데이트되고 소수 남성작가들 사이에서 '성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1995년 '염소를 모는 여자'에서 가출하는 여성을 그렸던 전경린은 2015년 '천사는 여기 머문다'에 실린 단편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에서는 비참한 싱글여성을 사실적으로 다뤘다.

과거 386세대였던 여성이 답답한 현실을 의미하는 '닭장'으로 들어와 갇힌 상태에 있다가, 자신의 표상과도 같은 염소를 만나 그동안 감춰져 있던 야성성을 꺼내 가출한다는 게 '염소를 모는 여자'의 큰 줄기다. 오 연구자는 "90년대 여성작가들은 온갖 이유를 만들어 답답한 집을 나오는 소설을 썼다. 386세대가 90년대를 '본인이 유폐된 시절'이라고 봤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경린의 '염소를 모는 여자'와 '맥도날드 멜랑콜리아'가 수록된 '천사는 여기 머문다'
무언가 기대감을 가지게 했던 1995년 작품과 다르게 2015년작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는 고독사나 성추행 등 재난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싱글 여성을 내세움으로써, 동시대 여성들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공감가게 그린 작품이다.

오 연구자는 "(과거에는) 자기가 잃어버렸던 욕망을 찾아 집을 나왔지만, (현재는) 그대의 자신에게 환멸을 보내며 홀로 된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이라며 "어떤 욕망도 없이 살고 싶지만 채 욕망이 다 없어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주인공은 자기 미래를 디스토피아적으로 상상한다. 현실을 신비화했던 과거와 달리 비참한 싱글여성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것에는 아마 함의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라고 바라봤다.

남성작가들은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상대화하는 시도를 했다. 오 연구자는 "땅 불 바람 물 마음의 서정 말고 항문섹스의 서정과 동성애의 서정과 소수의 서정은 없는 걸까요? 그런 것들은 '히트다 히트' 문학적 이벤트가 될 수밖에 없을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문학이 인권 보고서입니까? 문인이 무슨 인권 활동가입니까?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문학이, 문인이 대체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김현 시인의 '견본 세대2'(2016)를 한 예로 꼽았다.

또 다른 예로 제시된 작품은 정용준의 '개들'(2015)이었다. 오 연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여성혐오적인 묘사들이라고 하는 분도 있더라. 하지만 저는 전통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에 대한 세심한 해부라고 봤다. 전통적 남성성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라 살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젊은 여성작가들이 만들어 낸 독특한 '여성 캐릭터'

왼쪽부터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
최근의 여성작가들 손에서 나온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오 연구자는 특히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2016)의 '양희'를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이라고 밝혔다.

가난하고 볼품없고 대사도 거의 없는 양희의 매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캐릭터"라며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훈계하지 않아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은 양희의 그 민주적인 포지션이 한국문학에서 굉장히 미학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또한,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2016)에 실린 '신짜오, 신짜오'와 '먼 곳에서 온 노래',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2016)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의 특징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 연구자는 "최은영 작가는 전혀 다른 국정, 세대, 나이와 지역을 관통하는 여성연대와 네트워크로 돌파하려고 하는 것 같다. 황정은 작가의 작품은 괴상한 분위기다. 길들여지지 않는 여성주체의 한 형상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시장 역시 발빠르게 새로운 흐름을 수용했다는 것은 김금희, 최은영, 황정은의 소설 표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오 연구자는 "세 작품의 표지가 나왔을 때부터 이미 느낌이 왔다. (출판시장이) 여초라고 판단했구나,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예쁘게 표지를 뽑을 수 없다. 이 문학시장은 누구에게 어필해야 하는가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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