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준의 내 인생의 책] ①어둠 속의 웃음소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경향신문] ㆍ첫 페이지서 쏟아낸 감탄사
대학 시절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샴푸의 요정>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알려진 황인뢰 PD가 연출하고 권인하, 이미연 그리고 송승환씨라는 캐스팅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난 그때 <보디 히트>의 캐서린 터너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제시카 랭처럼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에 빠져 있었으므로 한 남자가 팜므파탈을 만나 사랑과 집착,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야기에 끌린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추억의 드라마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라는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정영목 선생의 번역으로 2016년에 출간된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옛날에 독일 베를린에 알비누스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부유하고, 품위 있고, 행복했다. 하지만 어느 날 어린 애인 때문에 아내를 버렸다. 그는 사랑했으나, 사랑받지는 못했다. 결국 그의 삶은 참담하게 끝이 났다.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이며, 만일 이야기를 해나가는 과정에 이득이나 기쁨이 없었다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한 인간의 삶을 축약한 이야기야 이끼로 장정된 묘비조차 꽉 채우지 못하는 것 아닌가. 늘 환영받는 것은 디테일이다.”
이처럼 나보코프는 첫 페이지부터 소설 전체의 윤곽을 낚아채듯이 묘사하고 있는데 이런 간결함과 독창성이야말로 대가의 솜씨라며 홀로 감탄하던 기억이 난다. 애초에 러시아어로 연재된 작품을 나중에 작가 자신이 영어판으로 다시 쓴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그 모티프를 발전시켜 결국 <롤리타>의 원형이 되었고, 지난날의 추억과 결부되어 내 인생의 책으로 남았다.
<정상준 | 그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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