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주사기 씹어먹은 사자야, 정신 좀 차려봐!

입력 2017. 2. 26. 21:46 수정 2017. 2. 2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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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실의 전설 ⑫ 나를 놀라게 한 사자 '시무스'
고생 끝 찾아 마취주사 쐈지만 헛방
'이게 뭐냐'는 듯 마취주사 갖고 놀던
사자 '시무스'는 아예 누워버렸다

한참 뒤, 비틀거리며 걷는 시무스
마취주사를 통째로 삼킨 건가?
"이러다 죽겠다"..비상이 걸렸다

[한겨레]

분명히 마취주사가 빗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사자 ‘시무스’는 비틀거렸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황게 사자 프로젝트의 현장 연구원으로 나는 사자에게 (마취제가 달린) 다트를 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가지고 있다. 한번은 사자 30마리에게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 목걸이가 채워진 적도 있었다. 이 말은 지피에스 배터리가 닳으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므로) 다트를 쏠 수 있는 사자가 그만큼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트에 다는 약품에 여러 가지 약을 섞어 쓰는데, 다트에 맞은 사자는 기억상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말인즉슨 (다트를 맞은) 동물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나는 그 말이 100% 정확하다고 보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다트를 여러 번 쐈던 몇몇 동물의 경우 우리의 속임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갈수록 그들을 잡기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무스’(Seamus)라 불리는 사자가 그랬다. 이 글은 시무스를 다섯번째로 사로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삐삐…시무스 출몰!

시무스를 처음 본 건 2004년이었다. 프라이드 연합을 이루고 있는 두 형제 중 한 마리였다.(사자는 수컷을 우두머리로 하는 프라이드라는 무리로 구성되는데, 가끔 두 프라이드 간에 연합이 이뤄진다.) 형제는 자손을 번식하는 데 능한 전형적인 젊은 씨수사자였는데, 나의 동료인 제인이 다트를 쏴 그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형제를 다시 보기까지 2년이 걸렸다. 둘은 우리 연구지역 한가운데로 들어왔고, (다른 무리를 쫓아내고) 영토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시무스의 형제인 ‘조’(Joe)가 다른 사자들과 싸우다 죽을 때까지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가 연구하는 지역을 지배했다. 조가 죽자, 시무스는 그 땅에 붙어있을 수 없었다. 먹잇감이 별로 없는 가시덤불 펼쳐진 지역으로 밀려났고, 거기에서 수년 동안 떠돌았다. 우리는 가끔 시무스를 잡기 위해 오프로드 운전을 감행하면서까지 찾아 나섰지만, 번번이 통나무나 멧돼지가 파놓은 구멍에 차가 처박히고 타이어만 펑크가 나서 시무스를 더 멀리 떨어뜨려 놓았을 뿐이다.

어느 날 사자 위치 수신기를 무의식적으로 시무스의 주파수로 돌렸을 때였다. ‘삐삐’ 소리가 뚜렷하게 헤드폰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무스였다! 난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창문 밖으로 기어 나와 차 지붕 위에 올라간 뒤 더 좋은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찾았다. 다트를 쏘기에 너무 뜨거운 온도였다. 근처에 캠프사이트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해가 어느 정도 지길 기다리면서 작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기 싫었으니까. 나는 두 발의 다트를 조심스럽게 들고 각각의 약품 용량을 확인했고, 바늘은 부러지지 않았는지 재차 확인했다. 신제품 분홍색 다트를 들고 총에 꽉 끼도록 끝까지 장전했다. 총의 가스양이 충분한지, 사자를 유인할 소음기도 잘 작동하는지 시험했다. 모든 게 준비 완료됐다. 하지만 나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렸다.

해 질 무렵이 되자 달구어졌던 낮 공기가 식었다. 우리는 사자가 빠져들 함정을 준비했다. 첫번째 차 지붕 위에 소음기를 설치했다. 소음기에서는 죽어가는 돼지의 비명이 대지를 울릴 참이었다. 나는 커다란 덤불 뒤에 숨겨둔 두번째 차량에서 다트총을 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시무스는 소음기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기론 ‘꽥꽥대는 돼지’는 아니었다.

준비가 끝난 뒤 나는 친구 닉에게 신호를 보냈고 닉은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끔찍한 비명이 초원의 공기를 타고 번지는데, 갑자기 그가 나타났다. 시무스! 거대한 머리가 덤불에서 슬그머니 튀어나오더니, 이내 그는 ‘공짜 식사’가 어딨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서 있던 시무스가 빠른 속도로 뛰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에 이르면 다트를 쏘면 됐다. 그러나 시무스는 갑자기 몸을 떨며 멈췄다. 내 트럭을 본 게 틀림없었다. 꼬리를 심하게 내리치며 으르렁거리던 시무스는 슬금슬금 덤불 속으로 돌아 들어갔다. “제기랄, 또 당했군.” 그러나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무스는 다시 올 거야.’

나는 닉에게 돼지 소리를 끄지 말라고 한 뒤, 차의 시동을 걸었다. 이번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차를 몰고 덤불로 다가갔다. 나는 시무스와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고, 다른 차에서는 돼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자와 나는 점점 가까워졌고, 이제 45미터 정도 남아 있었다. 시무스는 점점 초조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무스가 도망칠 통로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릴 때까지 나는 멈추면 안 됐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더 앞으로 가자. 창밖으로 총을 빼고, 잠금장치를 풀고, 한 발만 짧게 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무스는 몸을 일으키더니,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 아닌가! 다트총의 최대 사거리는 40미터. 놈은 최대 사거리를 아는 듯했다. 왜냐하면 41미터 앞까지 다가오더니 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어슬렁거리며 절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 사자를 관리하는 ‘황게 사자 프로젝트’는 마취주사를 쏘아 사자를 진정시킨 뒤 지피에스 목걸이를 달아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게 기본 업무다. 사냥한 얼룩말을 먹는 사자 무리에 마취총을 겨누고 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이런 상황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됐다. 나는 뭔가 결정을 해야만 했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어쨌든 해보자.” 나는 시무스를 조준하고 있었다. 가슴을 펴고 다트총을 어깨에 붙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트가 사자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실패… 다트는 사자 뒤 풀밭에 떨어졌다. 총소리에 놀란 사자는 몸을 휙 돌렸다. 분홍색 다트가 풀밭에 꽂히는 것을 보자, 약간은 두려운 듯 으르렁거렸다. 사자는 거기로 가더니 발바닥으로 풀밭을 때리고 긁더니 아예 누워버렸다. 그러곤 다트를 씹고 있는 것 아닌가!

바늘이 위를 찔렀다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유일한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자는 10분 동안 그러더니 일어나 자리를 떴다. 그런데 걸어가는 사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닉과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시무스의 뒷다리가 살짝 비틀거렸다. 만약 마취제가 몸속으로 들어갔다면 시무스는 털썩 쓰러질 게 분명했다. 가능한 시나리오를 떠올린 닉과 나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시무스가 다트를 통째로 삼켰다면? 목에 걸리지 않고 제대로 삼켰다면, 그렇게 빨리 약효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려스럽지만 다트의 바늘이 내려가다가 위를 찔러 약이 주입된 거 같았다.

내가 시무스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구나. 재빨리 두번째 다트를 장전했다. 그리고 시무스에게 다가가(반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번엔 접근이 쉬웠다), 다시 다트를 명중시켰다. 20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번에 10분만 기다렸다. 차에서 내려 자고 있는 시무스에게 다가갔다. 턱을 잡고 입을 벌려 내 머리통을 집어넣고 보았다. 정말 결사적으로 다트의 바늘을 찾았다. 그 어딘가 꽂혀 있기를! 그러나… 바늘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도 시무스는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만 평소와 달랐고, 다른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시무스의 눈을 감기고 귀에 귀마개를 꽂고 앞다리를 묶은 뒤 앞다리에서 피를 뽑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기 있네!” 닉이 몇 발짝 떨어진 풀밭에서 처음 쐈던 다트를 찾았다. 뾰족한 바늘이 몇 가닥의 사자 털과 함께 고무 슬리브에 달려 있었다. 시무스가 풀밭에서 그 다트를 ‘죽이려고’ 공격했을 때, 바늘은 시무스의 가슴을 찔렀고 마취제만 주입된 것이었다. 시무스가 스스로 마취주사를 놓은 것이다!

나는 시무스의 목에 달린 낡은 지피에스 목걸이를 떼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지금도 감히 시무스를 잡았다고 말할 수 없다.

글·사진 브렌트 스타펠캄프 황게국립공원 사자 연구원

*미국인 치과의사에게 사냥된 짐바브웨 사자와 그의 친구들을 다룬 ‘세실의 전설’을 이번 회로 마칩니다. 독자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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