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고환율 정책·현 정부 경상 흑자..환율조작 의심 초래

이주영 기자 2017. 2. 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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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역대 정부 환율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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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환율조작국 명단 발표를 앞두고 정부와 수출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로 원화가치가 치솟자 환차손으로 이익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원자재와 제품 수입을 늘려 경상수지 흑자폭을 줄이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다. 반면 일반 가계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환율을 움직여온 게 사실 아니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물가나 확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무역수지는 물론 기업 실적, 물가, 개개인의 소비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도 끊임없이 ‘조작설’에 시달리는 환율,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그동안 어떻게 움직였을까.

■ 환율 조정이냐 조작이냐

한국은 1997년 12월부터 환율 변동폭 제한을 완전히 없앤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움직이지만, 일시적 충격이나 투기세력에 의해 급등락할 가능성도 동시에 있다. 이 때문에 외환당국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장 개입을 한다.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 즉 미세조정이다. 미세조정 방법으로는 정부나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구두개입이나, 직접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거나 팔아서 환율을 조정하는 방안이 있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환율이 너무 위협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쏠릴 때 미세조정으로 변동성을 줄여주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하는 일”이라며 “미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맞춘다는 건 1970~1980년대에나 통하던 얘기”라고 말했다.

근래 한국이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은 이명박(MB) 정부 때의 고환율 정책 탓이 크다. 대선 공약인 연 7%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 촉진이 필요했던 것이다. 보통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의 가격이 내려가 수출 기업에 도움이 된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느 나라도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없다”며 노골적으로 개입했고, 최중경 기재부 1차관도 ‘환율주권론’을 들어 호흡을 맞췄다. 2009년 삼성전자가 사상 처음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한 것도 고환율 정책 덕이 컸다.

부작용도 있었다. 가뜩이나 유가로 인한 물가 급등세가 심각하던 상황에서 쓴 고환율 정책은 물가 불안을 가중시켰다. 한 금융권 인사는 “경제 상황에 따라 정부가 미세조정은 할 수 있지만 당시 경제팀의 노골적인 발언들은 환율조작국 논란을 자초했다는 측면에서 적절치 않았다”고 말했다.

MB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노무현 정부의 저환율 기조 때문에 나오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강만수 장관이 취임하던 2008년 우리나라의 수출은 심각한 수준이었다”며 “노무현 정부의 저환율 정책으로 수출이 타격을 입고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나자 그냥 놔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환율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기간 원·달러 환율은 28%(달러당 평균 1191.85원→929.16원) 떨어졌다. 원화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2008년 무역수지(-132억6741만달러)는 11년 만에 적자를 냈다. 수입 원자재 가격을 낮춰 서민 물가를 안정시키고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겠다는 취지로 저환율 정책을 썼지만 수출에는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 막판인 2007년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려고 환율을 끌어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환율이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하는 국민소득은 커지는 효과가 따른다.

■ “경상수지 흑자는 환율보다 고령화 탓”

박근혜 정부에서도 2014년을 기점으로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어온 달러화를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달러화 가치가 상승했다. 해외투자로 빠져나가는 달러가 늘어난 것도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특히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부총리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 성장률 전망을 참고하지 않겠느냐” “척하면 척이다”라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최 부총리 재임 시절 한은은 기준금리를 네 차례 인하했고,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한국이 환율조작국 후보로 지목되는 주된 요인은 경상수지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302억달러로 미국의 주요 교역국 중 다섯 번째로 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7.9%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세 가지(다른 하나는 ‘GDP 대비 외화순매수액 비중’) 중 두 가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는 환율 효과보다는 다른 요인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동현 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후 통화가치가 가장 많이 오른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며 “최근의 경상수지 흑자는 유가 하락과 수입이 수출보다 더 많이 감소한 데 따른 불황형 흑자이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서 나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 1월 원화의 실질실효환율(물가와 교역량 등을 반영한 환율)은 2010년에 비해 11% 넘게 올랐다. 구조적 요인도 상당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저축률이 높아짐에 따라 (소비가 줄고 수입이 감소해)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는 요인이 있다”며 “국내 고령화 진전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경상수지 확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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