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시스템 붕괴' 민낯..메르스 겪고도 AI·구제역 다 뚫려
◆ 국가실패 기로에 선 한국 ① ◆
2003년 전 세계적으로 8400여 명을 감염시켰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감염자 '3명', 사망자 '0명'의 성적으로 막으면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 불과 12년 만의 일이었다. 메르스 사태는 단순한 보건정책의 실패가 아닌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정치시스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기존 사회의 경제와 정치 구조를 뒤흔드는 우연한 사건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개념화한다. 전염병은 결정적 분기점의 가장 생생한 사례다.
결정적 분기점에 맞닥뜨린 한국 사회는 현 정부 들어 정치와 경제 전반의 국가시스템의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비포용적 정치 시스템' 탓에 견제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비포용적 제도'들이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상황이다. 달리 표현하면 국가가 문제해결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1월 16일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는 이달 23일 100일째를 맞았지만 언제 끝날지 짐작할 수 없다. 이달 초 구제역까지 퍼지면서 대한민국은 후진국형 가축전염병의 온상이 됐다. 100일 동안 AI로 도살된 가금류가 3300여 만마리, 경제적 피해규모만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도 전염병 그 자체가 아니라 악순환을 반복·생산하는 제도 시스템이 문제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함 속에서 질병을 방치하다 보면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노동시장 구조 역시 들여다보면 비슷한 모순을 안고 있다. 지난 4년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급여 격차는 계속 벌어져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기득권의 이해에만 부합하는 비포용적 제도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국가 실패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한국의 성장은 민간의 생산적 활동을 뒷받침하는 공공과 민간부문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지금은 정부와 입법권자, 이익단체가 거대한 '철의 삼각동맹'을 만들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억압하는 체계"라고 비판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포용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나쁜 법과 관행, 정책들을 시정해야 국가적 대전환기를 극복해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결정적 분기점 : 기존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의 균형을 뒤흔드는 중대 사건과 요인을 말한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을 앗아간 흑사병, 서유럽에 부의 기회를 가져다준 대서양 무역항로 발견, 세계 경제 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산업혁명 등이 꼽힌다. 이런 결정적 분기점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된다.
[기획취재팀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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