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몰락 부르는 5대 한국병

전정홍,김규식,부장원 2017. 2. 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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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실패 기로에 선 한국 ① ◆

"한국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개혁을 통해 포용적(inclusive) 체제를 달성한 국가다."

2012년 10월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서울을 찾은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을 정치·경제 발전의 성공모델로 꼽았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애쓰모글루 교수는 "지리·역사·인종이 아닌 제도가 국가의 성패를 결정한다"며 포용적 제도를 갖춘 국가만이 국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낸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불과 4년여가 흐른 지금, 한국은 '국가 실패' 위기에 몰리고 있다. 탄핵정국이 극단적인 정치적 혼란과 대립으로 이어지고, 일단 표부터 챙기자는 포퓰리즘 입법이 횡행하고, 정치권·기업·노조를 망라하는 기득권층의 담합과 이권 챙기기(지대추구) 풍조가 범람하고 있다. 제도경쟁력 면에서 애쓰모글루 교수가 국가 실패 요인으로 꼽은 '비포용적(extractive) 제도'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도개혁에 실패해 패망의 길을 걸은 중세 베네치아와 고대 로마제국처럼 한때 성공모델로 꼽혔던 한국의 운명도 이대로 내버려두면 급속히 어두워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26일 매일경제가 정치·경제 전문가 10인을 취재한 결과 △갈등을 조장하는 비포용적 정치 체제 △김영란법 등 무분별한 포퓰리즘 입법 △구조조정 실패 등 산업 경쟁력 추락 △문제 해결을 못하면서 국민 부담만 늘리는 정부 △인구절벽에 대비 못한 저출산 정책을 '5대 국가 실패 징후'로 꼽았다.

제도개혁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현재 국가 실패로 치달을 수 있는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애쓰모글루 교수는 기존 사회의 경제와 정치 균형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 '결정적 분기점'에서 제도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국가로 전락한다고 주장했다.

탄핵정국과 반(反)이민·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나라 안팎에서 '퍼펙트 스톰'을 맞은 한국이 결정적 분기점에 서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치권이 국가·국민이 아닌 정파적 이익에 몰두하면서 나라 상황을 극단적 대결 국면으로 끌고 가고, 기업 준조세가 연 16조원을 넘고,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이기주의로 노동개혁이 답보 상태에 빠졌으며, 임금체불액이 지난해 1조4286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비포용적'인 행태가 암세포처럼 번지면서 제도개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가 다시 추격을 재개한 일본과 달리 지금은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을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며 "자본, 노동력만으로 성장이 가능한 후진국과 달리 선진국형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선 제도개혁이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4년 전에도 애쓰모글루 교수는 "한국 체제 내에는 아직 낡은 잔재가 남아 있다"며 규제개혁과 경쟁환경 조성 등을 강하게 주문했다. 하지만 한국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걱정하는 대목은 정치권의 '내 편 챙기기'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상법 개정안 등 포퓰리즘 입법이 사회적인 여과 없이 계속되는 행태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포용적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선 시스템 내에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야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며 "하지만 현실은 정치혼란과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오로지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획일적 평등, 반기업 정책 등 포퓰리즘 정책이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시행에 들어간 김영란법은 시행 직후 요식업계 일자리 3만개를 앗아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달 초 발표한 중소기업청 설문조사에서도 법 시행 이후 중소상공인 매출이 2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자 등의 금품수수나 부정청탁을 막자는 법률이 본래의 목적을 넘어 사회 전반의 소비를 얼어붙게 만든 꼴이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도 반기업정서에 편승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칙 없는 산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서비스업 중심 산업구조로의 재편이 늦어지고 있는 점도 국가 실패의 징후로 꼽혔다. 제조업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며 청년실업률이 치솟고 있지만, 정작 서비스업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서비스업 생산성은 미국의 52.9%에 불과하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 중심 성장 공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비스업 고도화를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와 비경쟁적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신생아 40만명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인구절벽'을 막을 제도적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 실패를 넘어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에 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백약이 무효다.

이와 함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부터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파동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드러난 부실한 대응 시스템과 해마다 반복되는 미세먼지 문제도 국가 실패 징후로 꼽혔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부문장은 "구조개혁은 결국 제도개혁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전정홍 기자 / 김규식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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